자승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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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自繩自縛)은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기 자신이 옭혀 곤란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불교에서는 제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움을 만드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1]
스스로 한 약속, 스스로 세운 규칙, 스스로 내뱉은 말이 도리어 자기 행동을 묶어 버려 꼼짝 못 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남을 옭아매려고 만든 장치에 자기가 걸려드는 경우에도 쓴다. 정치나 협상에서 강경한 발언을 해 놓고 물러설 수 없게 된 경우,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정작 자기가 그 규정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이다.
일본어에서도 ‘自縄自縛(じじょうじばく)’라고 쓰며, 자기 마음가짐이나 언동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괴로워하는 것을 뜻한다.[2] 중국어에서는 이 말보다 ‘작견자박(作繭自縛, 누에가 고치를 지어 스스로를 묶는다)’을 주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에는 ‘自繩自縛’이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3]
자승자박은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줄에 스스로 묶인다는 비유가 굳은 말이다. 이 비유는 불교 문헌에서 먼저 자리 잡았다. 북송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9에 남조 양나라 보지(寶誌) 화상의 작품으로 실린 〈십사과송(十四科頌)〉에는 “성문(聲聞)은 법에 집착하여 좌선하니, 누에가 실을 토해 스스로를 묶는 것과 같다(聲聞執法坐禪,如蠶吐絲自縛)”는 구절이 있다.[3] 불성은 본래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데 이를 밖에서 구하려 애쓰는 것은 누에가 고치를 지어 스스로 갇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성어전》은 이 구절을 중국어 ‘作繭自縛’의 어원으로 본다.[3] 표준국어대사전이 자승자박의 불교적 뜻을 “제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움을 만듦”으로 따로 싣는 것도 이런 쓰임과 통한다.[1]
‘自繩自縛’이라는 네 글자는 확인한 범위에서 중국의 옛 문헌에 드물다. 한역 불전과 선종 문헌을 모은 CBETA에서는 명말 청초 통용(通容)이 엮은 선종 등사(燈史) 《오등엄통(五燈嚴統)》 권22의 “멀쩡한 살을 도려내 상처를 내는 격이요, 스스로 줄을 꼬아 스스로를 묶는 격이다(好肉剜瘡,自繩自縛)”가 확인된다.[4] 선종 조사들이 스승에게 해탈법을 구한 일을 두고, 본래 묶인 적이 없는데 스스로 묶었다고 본 것이다.
이보다 이른 예는 조선 초 김시습(金時習)의 시에 있다. 1518년에 엮인 시문 선집 《속동문선(續東文選)》 권4에 실린 김시습의 〈만흥(謾興)〉 네 수 가운데 넷째 수는 다음과 같다.[5]
頭邊歲月一鳥過。人生百歲能幾何。騰騰兀兀是誰過。自繩自縛如蠶蛾。
“머리맡의 세월은 새 한 마리 스쳐 가듯 하니, 인생 백 년이 얼마나 되랴. 멍하니 넋 놓고 지내는 것은 누구의 허물인가. 스스로 줄을 꼬아 스스로 묶으니 누에나방 같구나.” 누에가 제 실로 고치를 짓는 불교의 비유를 그대로 이어받아, 세상일에 스스로 얽매이는 삶을 돌아본 구절이다.
자승자박의 유래로 《한서(漢書)》 권92 〈유협전(游俠傳)〉의 원섭(原涉) 이야기가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전한 말 협객 원섭의 종이 시장에서 고기를 사다가 백정과 말다툼 끝에 그를 칼로 다치게 하고 달아났다. 새로 부임한 무릉(茂陵)의 임시 현령 윤공(尹公)은 인사를 오지 않은 원섭에게 노해 관리를 보내 그를 죽이려 했는데, 원섭의 벗인 호걸들이 “원섭이 웃통을 벗고 스스로 몸을 묶고, 화살로 귀를 꿰고 관아 문에 나아가 사죄하게 하면(使肉袒自縛,箭貫耳,詣廷門謝罪) 그대의 위엄도 족히 설 것”이라고 설득했다.[6]
그러나 이 대목에 나오는 것은 ‘自縛’ 두 글자이고, 죄인이 스스로 몸을 묶어 항복하거나 벌을 청하는 예법을 말한 것이다. ‘자기 줄로 자기를 묶는다’는 네 글자 성어나 그 비유는 여기에 없다. 나무위키 등에서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종이 백정을 “죽였다”, 윤공을 “태수”라고 적은 경우가 있으나, 원문은 “백정을 다치게 했다(斫傷屠者)”, “무릉의 임시 현령(茂陵守令)”이다.[6]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自 | 자 | 스스로, 자기 | 자기의 |
| 繩 | 승 | 줄, 새끼 | 줄, 노끈 |
| 自 | 자 | 스스로, 자기 | 자기를 |
| 縛 | 박 | 묶다, 얽다 | 묶다, 옭아매다 |
- 중국어: ‘作繭自縛(zuò jiǎn zì fù)’. 《성어전》은 청나라 심복(沈復)의 《부생육기(浮生六記)》를 용례로 들고, ‘作法自斃(제가 만든 법에 제가 죽음)’와 비교해 ‘作法自斃’는 해를 입거나 망하는 데, ‘作繭自縛’은 곤경에 빠지는 데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3] 남송 육유(陸游)의 시 〈서탄(書歎)〉에도 “인생은 봄누에와 같아, 고치를 지어 스스로를 휘감는다(人生如春蠶,作繭自纏裹)”는 구절이 있다.[3]
- 일본어: ‘自縄自縛’.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나가이 가후(永井荷風)의 《지옥의 꽃(地獄の花)》(1902)을 든다.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郎)의 《어떤 여자(或る女)》(1919), 하니야 유타카(埴谷雄高)의 《사령(死霊)》에도 쓰였다.[2]
- 영어: 스스로 곤경을 만든다는 뜻으로 ‘shoot oneself in the foot(제 발등을 쏘다)’, 셰익스피어 《햄릿》 3막 4장의 대사에서 나온 ‘hoist with one's own petard(제가 설치한 폭약에 날아가다)’ 같은 표현이 있다.
- 모든 배포에 임원 세 명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을 만든 보안팀은, 긴급 패치조차 제때 내보내지 못하는 자승자박에 빠졌다.
- 경쟁사를 견제하려고 만든 특허 조항이 자사 신제품의 발목을 잡았으니 자승자박이다.
-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언한 탓에 그는 협상에서 자승자박의 처지가 되었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자승자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90%EC%8A%B9%EC%9E%90%EB%B0%95,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自縄自縛”,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7%AA%E7%B8%84%E8%87%AA%E7%B8%9B,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3.3 3.4 3.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作繭自縛”,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642, 확인날짜=2026-09-27.
- ↑ 통용(通容) 편, 《오등엄통(五燈嚴統)》 권22, CBETA X1568.
- ↑ 《속동문선(續東文選)》 권4, 김시습 〈만흥(謾興)〉 제4수.
- ↑ 6.0 6.1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92 〈유협전(游俠傳)·원섭(原涉)〉.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자가당착”,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90%EA%B0%80%EB%8B%B9%EC%B0%A9,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작법자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91%EB%B2%95%EC%9E%90%ED%8F%9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