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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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自暴自棄)는 절망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보지 아니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줄여서 ‘자기(自棄)’, ‘자포(自暴)’, ‘포기(暴棄)’라고도 한다.[1]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거듭 실패하여 희망을 잃고, 스스로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는 상태를 가리킨다. “자포자기에 빠지다”, “자포자기하다”, “자포자기한 심정” 같은 형태로 많이 쓴다. ‘暴’는 여기서 ‘포’로 읽으며 ‘해치다, 함부로 하다’의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준말로 ‘포기(暴棄)’도 싣고 있다.[2] 이는 하려던 일을 그만둔다는 뜻의 ‘포기(抛棄)’와 소리만 같은 다른 말이다.
중국어에서도 ‘自暴自棄(zì bào zì qì)’, 일본어에서도 ‘自暴自棄(じぼうじき)’라고 쓰며 뜻도 거의 같다. 일본어에서는 ‘暴’를 ‘ぼう’로 읽는다.[3]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서 나온 말이다.[4][5]
孟子曰:「自暴者,不可與有言也;自棄者,不可與有爲也。言非禮義,謂之自暴也;吾身不能居仁由義,謂之自棄也。仁,人之安宅也;義,人之正路也。曠安宅而弗居,舍正路而不由,哀哉!」
“맹자가 말했다.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과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스스로를 버리는 사람과는 더불어 일할 수 없다. 말로 예의를 헐뜯는 것을 자포(自暴)라 하고, 내 몸은 인(仁)에 머물고 의(義)를 따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 한다.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의 바른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니, 슬프도다!’”[5]
남송 주희(朱熹)는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 ‘暴’를 ‘해침(害)’, ‘非’를 ‘헐뜯음(毀)’으로 풀었다. 자포하는 사람은 예의가 아름다운 줄 모르고 헐뜯으므로 함께 말해도 믿지 않고, 자기하는 사람은 인의가 아름다운 줄은 알지만 게으름에 빠져 스스로 해낼 수 없다고 단정하므로 함께 일해도 힘쓰지 않는다는 것이다.[6]
곧 맹자가 말한 ‘자포’와 ‘자기’는 두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나는 예의를 비웃고 헐뜯는 사람, 다른 하나는 “나 같은 사람은 인의를 행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손을 놓는 사람이다. 맹자는 인과 의가 사람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보았으므로, 이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을 ‘스스로를 해치고 버리는 일’이라 부른 것이다.
‘自暴自棄’라는 네 글자 형태는 북송 정이(程頤)의 글과 남송 주희의 강학에서 굳었다. 정이는 《역전(易傳)》의 혁괘(革卦) 상육(上六) 풀이에서 공자가 말한 “바뀌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下愚)”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7]
語其性則皆善也,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所謂下愚有二焉:自暴也,自棄也。
“본성으로 말하면 모두 선하지만, 재질로 말하면 바뀌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이른바 하우(下愚)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자포와 자기이다.” 정이는 이어서 사람이 선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차츰 나아질 수 있지만, 자포하는 사람은 믿지 않고 거부하며 자기하는 사람은 하지 않고 끊어 버리므로 성인과 함께 살아도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7] 주희는 《논어집주(論語集注)》 〈양화(陽貨)〉의 “오직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唯上知與下愚不移)” 장에 이 말을 인용하면서 “下愚有二焉:自暴自棄也”라고 네 글자를 이어 적었다.[8]
《성어전》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18의 “공자와 맹자의 타고난 자질은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곧 자포자기하는 사람이다(若有人云孔孟天資不可及,便知此人自暴自棄)”를 용례로 든다.[4] 성현이 되는 길을 스스로 막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맹자와 송나라 유학자들에게 자포자기는 ‘도덕적 노력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예의를 헐뜯거나,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하는 태도를 가리켰다. 《성어전》도 이 말이 본래 “말과 행동이 인의에 어긋남”을 가리켰다가, 뒤에 “스스로 타락하여 나아지려 하지 않음”을 뜻하게 되었다고 풀이한다.[4]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실패나 절망 때문에 의욕을 잃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신을 내버려 두는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쓴다.[1] 일본어의 ‘自暴自棄’도 불만이나 실망 때문에 자포자기가 되어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 것(やけ)을 가리킨다.[3]
- 고려 말 이색(李穡)은 〈저정기(樗亭記)〉에서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뜻있는 사람은 위를 본받을 뿐이니,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不可以自暴自棄)”고 했고, 〈자경잠(自儆箴)〉은 “힘쓰고 힘쓸지어다. 자포자기란 대체 무엇이냐(勉之哉勉之哉。自暴自棄。是何物邪)”로 끝맺었다.[9][10] 맹자와 정이가 말한 ‘성현의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16건이 있다. 태종 9년(1409) 삼관(三館)은 선비들의 공부 방식을 고쳐 달라고 건의하며, 이렇게 하면 “게으른 자도 스스로 깨우칠 것이니 어찌 자포자기하여 나라에서 교육하는 아름다운 뜻을 저버리겠는가(安有自暴自棄,以負國家敎育之美意哉)”라고 했다.[11]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自 | 자 | 스스로 | 스스로, 자기를 |
| 暴 | 포(폭) | 사납다, 해치다 | 해치다, 함부로 대하다 |
| 自 | 자 | 스스로 | 스스로, 자기를 |
| 棄 | 기 | 버리다 | 버리다 |
- 중국어: ‘自暴自棄’. 《성어전》은 비슷한 말로 ‘自甘墮落’, ‘妄自菲薄’, ‘自輕自賤’을, 반대말로 ‘自強不息’, ‘力爭上游’, ‘奮發圖強’을 든다. 또 ‘妄自菲薄’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데, ‘自暴自棄’는 행동으로 자신을 버리고 타락하는 데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4] 《홍루몽》 제48회, 《경화연》 제22회 등 소설에도 나온다.[4]
- 일본어: ‘自暴自棄’.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응영본 논어초(応永本論語抄)》(1420) 〈양화〉 편의 “下愚と云に二あり。自暴自棄也(하우라 하는 것에 둘이 있다. 자포자기이다)”를 든다.[3] 주희가 《논어집주》 〈양화〉에 인용한 정이의 말을 그대로 풀이한 것이다. 근대에는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암야행로(暗夜行路)》 등에 쓰였다.[3]
- 서비스가 연이어 해킹당하자 운영팀은 자포자기에 빠졌지만, 팀장은 원인을 하나씩 찾아 막아 나가자고 다독였다.
- 한두 번 코딩 테스트에 떨어졌다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보자.
- 그는 사업에 실패한 뒤 한동안 자포자기한 채 지냈다.
- 조선 초 김시습(金時習)은 〈천형(天形)〉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요, 자포자기하는 것은 하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存心養性爲敬天。自暴自棄爲慢天)”라고 했다.[12]
- 자기(自棄), 자포(自暴), 포기(暴棄): 자포자기의 준말.[1]
- 망자비박(妄自菲薄): 함부로 자신을 낮추어 봄.
- 반대 의미: 자강불식(自強不息):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음. 《주역》 건괘 〈상전〉의 “군자는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君子以自強不息)”에서 나온 말.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자포자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90%ED%8F%AC%EC%9E%90%EA%B8%B0,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포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F%AC%EA%B8%B0,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3.3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自暴自棄”,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7%AA%E6%9A%B4%E8%87%AA%E6%A3%84,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4.2 4.3 4.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自暴自棄”,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51, 확인날짜=2026-09-27.
- ↑ 5.0 5.1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
- ↑ 주희(朱熹), 《맹자집주(孟子集注)》 〈이루 상(離婁上)〉.
- ↑ 7.0 7.1 정이(程頤), 《이천역전(伊川易傳)》 혁괘(革卦) 상육(上六). 《근사록(近思錄)》 권1에도 실려 있다.
- ↑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注)》 〈양화(陽貨)〉.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 《목은문고(牧隱文藁)》 권5 〈저정기(樗亭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470_010_0030,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 《목은문고(牧隱文藁)》 권12 〈자경잠(自儆箴)〉,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540_020_0050,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 9월 4일 계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909004_003,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시습, 《매월당집(梅月堂集)》 문집 권17 〈천형 제일(天形第一)〉,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9A_020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