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승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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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승박덕(才勝薄德)은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적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재승덕박(才勝德薄)’을 기본 표제어로 올리고 재승박덕을 비슷한 말로 둔다.[1][2]
머리가 좋고 솜씨가 뛰어나지만 사람됨이 그에 미치지 못해, 재주를 남을 깔보거나 해치는 데 쓰는 사람을 평할 때 쓴다. “재승박덕하다”처럼 형용사로도 쓴다.[3] 재능이 있다는 칭찬과 인품이 모자라다는 비판이 한 말에 함께 들어 있어서, 뛰어난 인물이 스스로 화를 부른 경우를 두고 흔히 쓰인다.
뿌리는 북송 사마광(司馬光)의 “재주가 덕을 이기면 소인(才勝德謂之小人)”이라는 말이다. 다만 ‘재승박덕’이라는 네 글자는 중국 고전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조선 문헌에는 ‘재승덕박(才勝德薄)’이 보인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과 일본 코토뱅크에도 두 형태 모두 표제어가 없다.
사마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시작하는 권1 주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년) 조에서 진(晉)나라 권신 지백(智伯) 요(瑤)의 멸망을 다루었다. 지선자(智宣子)가 요를 후계로 세우려 하자 일족인 지과(智果)는 “요가 남보다 나은 점이 다섯 가지이고 못한 점이 하나”라며 반대했다. 수염이 아름답고 키가 크며, 활쏘기와 말 다루기에 힘이 넘치고, 기예를 두루 갖추었으며, 글재주와 말솜씨가 좋고, 굳세고 과감하지만 몹시 어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다섯 가지 나은 점으로 남을 업신여기며 어질지 못한 짓을 하면 누가 그를 견디겠는가. 요를 세우면 지씨 종족은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4]
지백은 결국 한(韓)·위(魏)에게서 땅을 빼앗고 조(趙)의 진양(晉陽)을 물로 공격하다가, 세 집안이 손을 잡고 반격하자 일족이 몰살되었다. 사마광은 이 일 끝에 다음과 같이 평했다.[4]
臣光曰:智伯之亡也,才勝德也。夫才與德異,而世俗莫之能辨,通謂之賢,此其所以失人也。夫聰察強毅之謂才,正直中和之謂德。才者,德之資也;德者,才之帥也。……是故才德全盡謂之聖人,才德兼亡謂之愚人,德勝才謂之君子,才勝德謂之小人。
“지백이 망한 것은 재주가 덕을 이겼기 때문이다. 재주와 덕은 다른데 세상은 이를 가려내지 못하고 다 같이 ‘어질다’고 부르니, 이 때문에 사람을 잘못 쓴다. 총명하고 굳센 것을 재주라 하고, 바르고 치우침이 없는 것을 덕이라 한다. 재주는 덕의 밑천이고, 덕은 재주의 장수이다. …… 재주와 덕을 모두 갖추면 성인, 둘 다 없으면 어리석은 사람, 덕이 재주를 이기면 군자, 재주가 덕을 이기면 소인이라 한다.” 사마광은 이어서 사람을 쓸 때 성인이나 군자를 얻지 못하면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을 쓰라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짓을 하려 해도 꾀와 힘이 모자라지만, 소인은 “범에 날개를 단 격”이어서 해가 크다는 것이다.[4]
이 논평은 뒤에 《통감기사본말》, 진덕수의 《서산독서기》 등에 그대로 옮겨졌고, “덕이 재주를 이기면 군자, 재주가 덕을 이기면 소인”은 인재를 논할 때 두루 인용되는 말이 되었다.[5]
조선 문헌에서는 사마광의 말을 줄인 ‘재승덕박(才勝德薄)’이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3건이 있으며 모두 연산군 2년(1496)의 기록이다.[6] 그해 1월 20일 연산군은 조지서(趙之瑞)를 두고 “내 생각에 재주가 덕보다 앞선다(予意以謂才勝德薄)”고 했다.[7] 조지서는 연산군이 세자일 때 서연관(書筵官)으로 그를 가르친 인물이다. 같은 해 7월 6일에는 사당 건립에 반대하는 대간을 연산군이 “재승덕박한 사람”이라고 깎아내린 일을 대사헌 이육(李陸) 등이 따지는 차자가 실려 있다.[8]
《승정원일기》에도 이 말이 이어진다. 1850년(철종 1) 경연에서 《자치통감》의 지백 대목을 강론하던 신하는 “지백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사나우며 재승덕박하다(才勝德薄)”고 풀이했다.[9] 이덕무(李德懋)는 청나라 문인 이조원(李調元)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성탄(金聖嘆)이 어떤 인물이냐고 물으며 “재승덕박한 사람 같은데 끝내 무슨 죄로 처형되었느냐”고 했다.[10]
‘재승박덕’은 ‘재주는 앞서고 덕은 엷다’로 읽히도록 뒤 두 글자의 순서를 바꾼 형태이다. 이 순서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원문과 한문 전적에서 확인되지 않아, 한국어에서 뒤에 굳은 형태로 보인다.
- 실력은 뛰어나지만 동료의 코드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기만 하는 그는 재승박덕하다는 평을 들었다.
- 역사 속 재승박덕한 인물들은 재주 때문에 쓰였다가 바로 그 재주 때문에 무너지곤 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재승덕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AC%EC%8A%B9%EB%8D%95%EB%B0%95,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재승박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AC%EC%8A%B9%EB%B0%95%EB%8D%95,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재승박덕하다”,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9E%AC%EC%8A%B9%EB%B0%95%EB%8D%95, 확인날짜=2026-10-03.
- ↑ 4.0 4.1 4.2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 〈주기(周紀) 1〉 위열왕 23년.
- ↑ 원추(袁樞),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 권1 상; 진덕수(眞德秀), 《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 권1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才勝德薄”,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12권, 연산군 2년 1월 20일 기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0201020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16권, 연산군 2년 7월 6일 신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0207006_002,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철종 1년 1월 27일 경신, https://sjw.history.go.kr/id/SJW-J01010270-02300, 확인날짜=2026-10-03.
- ↑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19 〈이우촌 조원(李雨邨調元)〉.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재덕겸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AC%EB%8D%95%EA%B2%B8%EB%B9%84,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