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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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모개(朝令暮改)는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다시 고친다는 뜻으로, 법령이나 방침을 자꾸 바꾸어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한(漢)나라 조조(晁錯)가 문제(文帝)에게 올린 글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나 조직의 정책·규정이 짧은 사이에 거듭 바뀌어 따르는 사람들이 혼란을 겪을 때 쓴다. 신문의 정치·경제 기사에서 정책의 일관성 부족을 비판하는 말로 자주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조령석개(朝令夕改)’를 같은 말로 올린다.[1] 한국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조변석개(朝變夕改)’도 쓰는데, 이 말은 정책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나 계획이 자주 바뀌는 데에도 두루 쓴다.
중국어에서는 ‘朝令夕改’가 표준적인 형태이고,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이것을 표제어로 삼고 ‘朝令暮改’를 같은 말로 올린다.[2] 일본어에서는 ‘朝令暮改(ちょうれいぼかい)’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888년 구가 가쓰난(陸羯南)의 〈정사가의 자격(政事家の資格)〉을 든다.[3]
《한서(漢書)》 권24 상 〈식화지(食貨志)〉에 실린 조조의 상소에 나온다.[4] 문제 때 조조는 곡식을 귀하게 여겨 농민을 살려야 한다며, 백성이 곡식을 바치면 벼슬(작위)을 주거나 죄를 면해 주자고 건의했다. 이 글은 뒤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2] 그 가운데 농민의 고단한 처지를 그린 대목은 다음과 같다.
今農夫五口之家,其服役者不下二人,其能耕者不過百畝,百畝之收不過百石。春耕夏耘,秋穫冬臧,伐薪樵,治官府,給繇役;春不得避風塵,夏不得避暑熱,秋不得避陰雨,冬不得避寒凍,四時之間亡日休息;又私自送往迎來,弔死問疾,養孤長幼在其中。勤苦如此,尚復被水旱之災,急政暴虐,賦斂不時,朝令而暮改。當具有者半賈而賣,亡者取倍稱之息,於是有賣田宅鬻子孫以償責者矣。
“지금 다섯 식구 농가에서 부역에 나가는 사람이 둘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갈 수 있는 땅은 백 묘를 넘지 못하며, 백 묘의 수확은 백 석을 넘지 못합니다. 봄에 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며, 땔나무를 하고 관청 일을 하고 요역에 나갑니다. 봄에는 바람과 먼지를, 여름에는 더위를, 가을에는 궂은비를,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지 못해 사철 하루도 쉴 날이 없습니다. 또 사사로이 손님을 보내고 맞으며,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문병하고, 고아를 기르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이토록 고생하는데도 다시 홍수와 가뭄의 재앙을 입고, 정사는 급하고 가혹하며, 세금을 때 없이 거두고, 아침에 영을 내렸다가 저녁에 고칩니다. 그러니 가진 사람은 반값에 팔아 치우고, 없는 사람은 갑절의 이자로 빚을 내어, 마침내 논밭과 집을 팔고 자식과 손자까지 팔아 빚을 갚는 사람이 생깁니다.”[4]
원문의 ‘朝令而暮改’가 줄어 ‘朝令暮改’가 되었다. 《성어전》은 ‘急政暴虐’의 ‘虐’을 ‘賦’로 바로잡은 교감본을 따른다.[2] 한편 후한 순열(荀悅)이 《한서》를 줄여 엮은 《한기(漢紀)》 권7 〈효문황제기 상(孝文皇帝紀上)〉은 같은 상소를 옮기면서 이 대목을 “정사는 급하고 세금은 가혹하여, 아침에 영을 내리면 저녁에 거두어 간다(急政暴賦,朝令暮得)”로 적었다.[5] 이 글자를 따르면 조조가 비판한 것은 법령이 자꾸 바뀌는 일이 아니라 아침에 내린 징수령을 그날 저녁까지 채우라고 몰아붙이는 가혹한 수탈이 된다. 성어 ‘조령모개’는 《한서》의 ‘改’ 자를 따라 굳어진 것이다. 조조의 건의는 받아들여져 백성이 변방에 곡식을 바치면 작위를 주는 제도가 시행되었다.[4] 조조는 뒤에 경제(景帝) 때 제후국의 영지를 깎자는 삭번책(削藩策)을 밀어붙이다가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처형되었다.[6]
중국 문헌에서는 일찍부터 ‘朝令夕改’ 형태가 많이 쓰였다. 《구당서(舊唐書)》 〈유공작전(柳公綽傳)〉에는 장경 원년(821) 하삭 지역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행영의 장수들을 임명하는 일이 아침에 영을 내리면 저녁에 바뀌어 역마가 줄지어 오갔다(補授行營諸將,朝令夕改,驛騎相望)”는 구절이 있다. 당나라 원진(元稹)의 제서(制書)에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 번거로움(朝令夕改之煩)”이라는 표현이 있다.[2] ‘朝令暮改’ 형태는 남송 엽소옹(葉紹翁)의 《사조문견록(四朝聞見錄)》에 “군정·재정·전제·염법처럼 나라의 근본에 관계된 일을 제멋대로 바꾸어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니 사람들이 따를 바를 모른다”는 대목이 보인다.[2]
조선 문헌에서도 ‘朝令夕改’ 형태가 주로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朝令暮改’는 검색되지 않고(국역문에만 보인다), ‘朝令夕改’가 7건 나온다. 가장 이른 것은 1476년 《성종실록》에 실린 글로, 세조가 의정부서사제를 없앤 뒤 정사가 여러 문에서 나와 “법의 폐지와 제정이 서로 어긋나고 아침에 영을 내리면 저녁에 고쳐 따를 바를 모른다(法之廢立,彼此矛盾,朝令夕改,莫適所從)”고 비판했다.[8] 네 글자 ‘朝令暮改’는 《승정원일기》 영조 10년(1734) 경연 기사에서 “두세 가지로 덕을 바꾸는 것은 임금이 경계할 바이니,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면 백성이 믿지 않는다(朝令暮改,民不信之)”는 말로 한 번 보인다.[9]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朝令暮改’가 검색되지 않고 ‘朝令夕改’(최현, 장흥효, 안방준, 윤선거 등)와 ‘朝變夕改’(김종수, 정약용 등)가 보인다.[10] 오늘날 한국어에서 네 글자 ‘조령모개’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근대 이후로 보인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朝 | 조 | 아침 | 아침에 |
| 令 | 령 | 명령, 명령하다 | 영을 내리다 |
| 暮 | 모 | 저물다, 저녁 | 저녁에 |
| 改 | 개 | 고치다 | 고치다, 바꾸다 |
- 입시 제도가 조령모개로 바뀌는 바람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크다.
- 보안 정책을 분기마다 조령모개식으로 바꾸면 현업 부서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변경 이력과 적용 시점을 분명히 공지해야 한다.
- 회사의 재택근무 지침이 조령모개여서 직원들 불만이 쌓였다.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조령모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1%B0%EB%A0%B9%EB%AA%A8%EA%B0%9C,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朝令夕改”,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32,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朝令暮改”,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C%9D%E4%BB%A4%E6%9A%AE%E6%94%B9,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4.2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24 상 〈식화지(食貨志)〉.
- ↑ 순열(荀悅), 《한기(漢紀)》 권7 〈효문황제기 상(孝文皇帝紀上)〉.
- ↑ 사마천, 《사기(史記)》 권101 〈원앙·조조 열전(袁盎鼂錯列傳)〉.
- ↑ 사마천, 《사기(史記)》 권30 〈평준서(平準書)〉.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15일 정사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0705015_007,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10년 7월 3일 병자, https://sjw.history.go.kr/id/SJW-F10070030-01800,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종합DB, 한국문집총간 원문 검색 “朝令夕改”·“朝變夕改”·“朝令暮改”,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