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언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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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언역이(忠言逆耳)는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으로, 바르고 정성스러운 충고일수록 듣기에는 괴로워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보통은 뒤에 ‘행실에 이롭다(利於行)’를 붙여 ‘충언역이이어행(忠言逆耳利於行)’이라고 하며,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良藥苦口利於病)’와 짝을 지어 쓴다. 곧 귀에 거슬리는 말일수록 나를 위한 말이니 새겨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속담 “좋은 약은 입에 쓰다”와 같은 뜻이다.
중국어에서도 ‘忠言逆耳’를 그대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정성스럽고 바른 충고는 흔히 귀에 거슬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로 풀고 가까운 말로 ‘良藥苦口’를 든다.[2] 일본어에서는 ‘忠言耳に逆らう(ちゅうげんみみにさからう)’라고 훈독해 쓴다.[3]
네 글자 그대로의 형태는 《사기(史記)》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온다. 기원전 206년 유방(劉邦)이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도읍 함양에 들어가 진왕 자영(子嬰)의 항복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4]
沛公入秦宮,宮室帷帳狗馬重寶婦女以千數,意欲留居之。樊噲諫沛公出舍,沛公不聽。良曰:「夫秦為無道,故沛公得至此。夫為天下除殘賊,宜縞素為資。今始入秦,即安其樂,此所謂『助桀為虐』。且『忠言逆耳利於行,毒藥苦口利於病』,願沛公聽樊噲言。」沛公乃還軍霸上。
“패공(유방)이 진나라 궁궐에 들어가니 궁실과 휘장, 개와 말, 귀한 보물과 여인이 천을 헤아렸다. 패공은 그대로 머물고 싶어 했다. 번쾌(樊噲)가 궁을 나가 머물라고 간했지만 패공은 듣지 않았다. 장량(張良)이 말했다. ‘진나라가 무도했기에 패공께서 여기까지 오실 수 있었습니다. 천하를 위해 남은 도적을 없애려면 소박함을 바탕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이제 막 진나라에 들어와 곧바로 그 즐거움에 안주하시면, 이것이 이른바 걸왕을 도와 포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또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고 했습니다. 부디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패공은 곧 군대를 돌려 패상(霸上)으로 물러났다.”
장량이 ‘~라고 했다’며 인용한 것으로 보아, 이 말은 이미 당시에 널리 쓰이던 격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어전》은 이 말의 뿌리를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에서 찾는다.[2] 여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5]
夫良藥苦於口,而智者勸而飲之,知其入而已己疾也。忠言拂於耳,而明主聽之,知其可以致功也。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애써 마시니, 들어가면 제 병이 낫는 줄 알기 때문이다.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밝은 임금은 들으니, 그것으로 공을 이룰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거스르다’가 ‘逆’이 아니라 ‘拂(불)’로 되어 있다. 나무위키 등에는 《한비자》의 이 구절을 “忠言逆於耳”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원문은 “忠言拂於耳”이다.
한나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정간(正諫)〉과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은 같은 말을 공자의 말로 전한다. 《설원》에는 “공자가 말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良藥苦於口,利於病;忠言逆於耳,利於行)”라고 되어 있고, 이어서 무왕은 곧은 말을 하는 신하가 있어 번창하고 주왕은 입을 다문 신하들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붙어 있다.[6] 《공자가어》에는 “湯武以諤諤而昌,桀紂以唯唯而亡(탕왕과 무왕은 바른말 하는 신하로 번창했고, 걸왕과 주왕은 ‘예, 예’ 하는 신하로 망했다)”로 되어 있다.[7] 한나라 소제 때의 논쟁을 기록한 《염철론(鹽鐵論)》에서도 현량·문학들이 “약술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며 발언의 무례를 변명한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忠言逆耳’가 21건 나온다.[10] 가장 이른 것은 1398년(태조 7년) 3월의 기사로, 태조 이성계가 동북면에서 돌아온 정도전과 이지란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남은(南誾)에게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경들은 꺼리지 말고 말하라(忠言逆耳,利於行。卿等宜言之無諱)”고 하고, 도승지 이문화(李文和)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은 반드시 대간에게서 나온다. 내 성품이 자못 급해 혹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네가 곁에 있으면서 두려워 말고 말하라”고 일렀다.[11] 1441년(세종 23년)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불교를 숭상하는 세종에게 거듭 상소하면서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12]
1502년(연산군 8년) 홍귀달(洪貴達)은 연산군의 명으로 약으로 사람을 구하는 뜻을 담은 시를 지어 바치면서 “의원이 병을 고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하고 “충직한 말이 귀에 거슬리는 것을 경계로 삼으셔야 한다(忠言逆耳宜爲戒)”는 구절을 넣었다.[13] 홍귀달은 2년 뒤인 1504년 갑자사화 때 화를 입었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忠 | 충 | 충성, 정성 | 정성스럽고 곧은 |
| 言 | 언 | 말 | 말, 충고 |
| 逆 | 역 | 거스르다 | 거슬리다 |
| 耳 | 이 | 귀 | 귀 |
- 코드 리뷰에서 받은 날카로운 지적은 충언역이이다. 기분은 상해도 장애를 막아 준다.
- 모의 해킹 보고서가 드러낸 취약점이 불편하더라도 충언역이로 여기고 고쳐야 한다.
- 쓴소리를 하는 참모를 멀리한 지도자는 충언역이라는 말을 잊은 셈이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충언역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6%A9%EC%96%B8%EC%97%AD%EC%9D%B4,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忠言逆耳”,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513, 확인날짜=2026-09-27.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忠言耳に逆らう”,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BF%A0%E8%A8%80%E8%80%B3%E3%81%AB%E9%80%86%E3%82%89%E3%81%86, 확인날짜=2026-09-27.
- ↑ 사마천,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
- ↑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
- ↑ 유향(劉向), 《설원(說苑)》 권9 〈정간(正諫)〉.
- ↑ 《공자가어(孔子家語)》 권4 〈육본(六本)〉.
- ↑ 환관(桓寬), 《염철론(鹽鐵論)》.
- ↑ 사마천, 《사기》 권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忠言逆耳”(21건),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3권, 태조 7년 3월 20일 정묘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703020_002,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윤11월 24일 정해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311124_001,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홍귀달, 《허백정집(虛白亭集)》 〈임술년 12월 입궐하여 문안하니 약으로 사람을 구하는 뜻으로 근체시를 지어 올리라 하시므로 지어 올리다(壬戌十二月日詣闕問安…製進五首)〉, 확인날짜=2026-09-27.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良薬は口に苦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9%AF%E8%96%AC%E3%81%AF%E5%8F%A3%E3%81%AB%E8%8B%A6%E3%81%97,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