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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破竹之勢)는 대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으로, 적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기세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진서(晉書)》 〈두예전(杜預傳)〉에서 나온 말이다.[1]

대나무는 처음 몇 마디에 칼이 들어가면 나머지는 저절로 갈라진다. 이처럼 한번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이 밀고 나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전쟁뿐 아니라 스포츠의 연승, 기업의 급성장, 선거의 돌풍 등에 두루 쓴다.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랐다”, “파죽지세의 상승세”처럼 쓴다.

중국어에서는 ‘세여파죽(勢如破竹)’을 더 흔히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이 형태를 표제어로 올린다.[2] 일본어에서는 ‘破竹(はちく)の勢(いきお)い’라고 한다.[3]

두예의 오나라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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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끝 무렵인 280년, 진(晉)나라는 여러 갈래로 군사를 내어 오(吳)나라를 쳤다. 진남대장군 두예(杜預)는 형주 방면을 맡아 오나라 도독 손흠(孫歆)을 사로잡고 강릉(江陵)을 함락했다. 그러자 원수(沅水)·상수(湘水) 이남에서 교주·광주에 이르기까지 오나라의 주와 군이 모두 소문만 듣고 항복해 왔다. 이때 열린 군사 회의의 장면이 《진서》 권34 〈두예전〉에 실려 있다.[4]

時眾軍會議,或曰:「百年之寇,未可盡克。今向暑,水潦方降,疾疫將起,宜俟來冬,更為大舉。」預曰:「昔樂毅藉濟西一戰以並強齊,今兵威已振,譬如破竹,數節之後,皆迎刃而解,無復著手處也。」遂指授群帥,徑造秣陵。所過城邑,莫不束手。議者乃以書謝之。

“그때 여러 장수가 모여 의논했는데, 어떤 이가 말했다. ‘백 년 묵은 도적을 한꺼번에 다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와 큰물이 지고 돌림병이 돌 것이니, 다가올 겨울을 기다려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예가 말했다. ‘옛날 악의(樂毅)는 제수(濟水) 서쪽의 한 번 싸움을 발판으로 강한 제나라를 아울렀다. 지금 우리 군의 위세가 이미 떨쳤으니, 비유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몇 마디만 쪼개면 그 뒤로는 모두 칼날을 대기만 해도 갈라져서 다시 손댈 곳이 없을 것이다.’ 마침내 여러 장수에게 계책을 일러 주고 곧장 말릉(秣陵, 오나라 도읍 건업)으로 나아가니, 지나는 성과 고을마다 손을 묶고 항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반대했던 이들은 글을 보내 사과했다.”

‘백 년 묵은 도적’은 손권이 나라를 세운 뒤 거의 백 년을 버틴 오나라를 가리킨다.[2] 원문에는 ‘譬如破竹(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으로 되어 있고, ‘破竹之勢’라는 네 글자는 아직 없다. 같은 대목의 ‘迎刃而解(칼날을 대기만 하면 갈라진다)’도 뒤에 “일이 쉽게 풀린다”는 뜻의 성어 ‘영인이해’가 되었다.[2]

네 글자 ‘破竹之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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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형태는 남북조 말의 역사를 다룬 사서에 보인다. 《주서(周書)》 권6 〈무제기(武帝紀) 하〉에서 북주의 무제는 북제를 치러 나서며 “진주(晉州)는 본래 고환(高歡)이 일어난 땅이라 중요한 곳이니, 지금 치면 저들이 반드시 구원하러 올 것이다. 우리가 군을 엄히 하여 기다리면 반드시 이길 것이고, 그런 뒤에 파죽지세를 타고 북을 울리며 동쪽으로 나아가면(然後乘破竹之勢,鼓行而東) 그 소굴을 끝까지 뒤질 수 있다”고 했다.[5] 같은 말은 《북사(北史)》 권10에도 실려 있고,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86에는 당나라 건국 때 “파죽지세는 놓쳐서는 안 된다(破竹之勢,不可失也)”라는 말이 나온다.[2]

일본에서는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겐케이(元慶) 2년(878) 4월 28일 조의 “속히 파죽지세를 펼쳐, 엎지른 물의 후회를 남기지 말라(速施破竹之勢、勿貽反水之悔)”가 《일본국어대사전》이 드는 첫 용례이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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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破竹之勢’가 20건 나온다.

  • 세조 13년(1467) 8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던 도총사 이준(李浚)과 장수들에게 세조는 어찰을 내려 “경들이 이미 파죽지세를 타고 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卿等已乘破竹之勢, 予何有言)”라며 공을 치하했다.[6]
  • 임진왜란 초기에 선조가 김성일(金誠一)을 경상좌도 관찰사로 삼으며 내린 교서에는 일본군이 “파죽지세를 이루어 조령을 평지처럼 넘고 한강을 도랑물처럼 건넜다(成破竹之勢。踰鳥嶺如坦道。涉漢水如行潦)”는 구절이 있다.[7]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破 파 깨뜨리다 쪼갬
竹 죽 대나무 대나무
之 지 ~의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勢 세 형세, 기세 막을 수 없는 기세
  • 새 서비스는 출시 석 달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기며 파죽지세로 시장을 넓혔다.
  • 첫 고객사 도입이 성공하자 나머지 계열사 전환은 파죽지세로 이어졌다.
  • 그 팀은 조별 리그부터 파죽지세의 연승을 달리며 결승에 올랐다.
  • 두예는 학식이 넓어 조정과 민간에서 ‘두무고(杜武庫)’, 곧 “무엇이든 다 갖춘 무기고”라고 불렸다.[4]
  • 두예는 《춘추좌씨전》 연구로도 이름이 높았다. 두예가 왕제(王濟)는 말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고 화교(和嶠)는 돈을 모으는 버릇이 있다고 하자, 진 무제가 “경은 무슨 버릇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두예는 “신은 《좌전》 버릇이 있습니다(臣有《左傳》癖)”라고 답했다.[4] 그가 지은 《춘추경전집해(春秋經傳集解)》는 뒤에 《좌전》의 대표적인 주석으로 읽혔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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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여파죽(勢如破竹): 기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듯함. 중국어에서 흔히 쓰는 형태.
  • 영인이해(迎刃而解): 칼날을 대기만 하면 갈라짐. 일이 쉽게 풀림. 같은 대목에서 나온 말.
  • 승승장구(乘勝長驅):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계속 몰아침.
  • 일사천리(一瀉千里): 강물이 빨리 흘러 천 리를 감. 일이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를 탄 기세. 이미 시작해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형세.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파죽지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C%8C%EC%A3%BD%EC%A7%80%EC%84%B8,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破竹之勢”,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28,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破竹の勢い”,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A0%B4%E7%AB%B9%E3%81%AE%E5%8B%A2%E3%81%84,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방현령(房玄齡) 등, 《진서(晉書)》 권34 〈두예전(杜預傳)〉.
  5. ↑ 영호덕분(令狐德棻) 등, 《주서(周書)》 권6 〈제기(帝紀) 제6 무제(武帝) 하〉.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43권, 세조 13년 8월 6일 기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11308006_003, 확인날짜=2026-09-27.
  7. ↑ 〈경상좌도 관찰사에 제수하는 교서(除慶尙左道觀察使敎書)〉, 《학봉집(鶴峯集)》 부록 권4,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10A_0200_010_023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