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난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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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난신고(艱難辛苦)는 몹시 힘들고 어려우며 고생스러움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어렵고 괴로운 일을 겹겹이 겪는 것을 말한다.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는 각각 “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 “어려운 일을 당하여 몹시 애씀”을 뜻하는 말로,[2][3] 비슷한 뜻의 두 말을 겹쳐 고생의 정도를 강조했다. 일본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도 이 말을 “같은 뜻의 말을 겹쳐 강조한 표현”이라고 풀이한다.[4] “간난신고 끝에 자리를 잡았다”, “온갖 간난신고를 겪었다”처럼 큰일을 이루기까지의 고생을 돌아볼 때 흔히 쓴다.
일본어에서도 ‘艱難辛苦(かんなんしんく)’라 하며 지금도 널리 쓴다.[4] 중국어에서는 이 네 글자도 쓰지만, 같은 뜻으로 ‘艱難險阻’, ‘備嘗艱苦(온갖 고생을 두루 겪음)’ 같은 말을 흔히 쓴다.[5][6]
간난신고는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艱難’과 ‘辛苦’는 각각 오래된 말이다. 《춘추좌씨전》 희공 28년에는 진 문공(晉文公)을 두고 “진후는 나라 밖에서 19년을 떠돌다 마침내 진나라를 얻었으니, 험하고 막히고 어렵고 괴로운 일을 모두 겪었다(晉侯在外十九年矣,而果得晉國,險阻艱難備嘗之矣)”고 했고,[5] 당나라 한유(韓愈)의 《순종실록(順宗實錄)》에는 순종이 태자 시절 몸소 활과 화살을 들고 군대를 이끌며 “온갖 고생을 두루 겪었다(備嘗辛苦)”는 대목이 있다.[7]
네 글자로 붙여 쓴 예는 송나라 때부터 보인다. 남송의 장구성(張九成)은 《서경》 〈반경(盤庚)〉을 논하면서, 반경이 도읍을 옮길 때 백성이 먼 길을 가며 “어렵고 괴로운 일(艱難辛苦)”을 겪어 원망할 것을 걱정해 먼저 타일렀다고 했다.[8] 주희(朱熹)는 1194년 영종에게 올린 〈행궁편전주차(行宮便殿奏劄)〉에서 경(敬)을 지키고 뜻을 세우는 것이 독서의 근본이라고 한 뒤 “이 몇 마디는 모두 어리석은 신이 평생 학문을 하면서 어렵고 괴롭게 이미 시험해 본 효과(此數語者,皆愚臣平生爲學艱難辛苦已試之效)”라고 했다.[9] 주희의 독서론을 모은 《주자독서법(朱子讀書法)》의 서문도 이 상소를 들어 “이것이 어리석은 신이 평생 간난신고하며 이미 시험해 본 효과라고 곧바로 말했다”고 적었다.[10]
한편 북송 소순(蘇洵)이 구양수의 문장을 평한 〈상구양내한서(上歐陽內翰書)〉의 “느긋하고 편안하여 어렵고 애쓴 티가 없다”는 대목을, 《사학규범(仕學規範)》이나 《산당사고(山堂肆考)》 같은 뒤의 책은 “無艱難辛苦之態”로 인용했다. 그러나 소순의 문집 《가우집(嘉祐集)》과 《송문감(宋文鑑)》 등에 실린 원문은 “無艱難勞苦之態”이다.[11]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艱難辛苦’는 7건 보인다.[12]
- 가장 이른 것은 1419년 제주 자제 문충덕(文忠德)·고득종(高得宗) 등의 상언이다. 이들은 제주 땅이 메말라 “농가에서는 남쪽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어렵고 괴롭게 남보다 백 배의 공을 들여도(服勤南畝,艱難辛苦,百倍其功)” 늘 한 해를 넘길 양식이 없다며, 새로 토지를 잴 때 등급을 더 낮춰 달라고 청했다.[13]
-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의 이왕부(二王府)가 보낸 서신에는 “진영 밖 백 리 안에 군량과 꼴이 다 떨어지고 집도 없으니, 이처럼 어렵고 괴로운 것을 그대도 짐작할 것(如此艱難辛苦,儞可想了)”이라는 구어투의 문장이 있다.[14]
- 1697년 숙종은 세자의 서연에서 글 뜻만 풀지 말고 “여염의 사정과 어렵고 괴로운 형편(閭巷物情,艱難辛苦之狀)”을 거듭 일러 주어 귀에 익게 하라고 당부했다.[15]
- 1740년 홍문관의 남태제(南泰齊) 등은 영조가 개성을 지나는 길에 고려의 흥망을 거울삼으라며 “고려 태조는 간난신고하여 통합의 업을 이루었으나(麗之太祖艱難辛苦,以成統合之業)” 중엽 이후 놀이와 불사에 빠져 나라가 기울었다고 아뢰었다.[16]
주희의 “平生爲學艱難辛苦已試之效”는 조선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은 1650년 〈사소명겸론성학소(辭召命兼論聖學疏)〉에서 이 대목을 그대로 옮겨 효종에게 올렸고,[17] 1801년 송환기(宋煥箕)도 순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같은 대목을 인용했다.[18]
《일본국어대사전》은 1832~1833년의 닌조본(人情本) 《춘색매아예미(春色梅児誉美)》를 첫 용례로 들고,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후쿠옹자전(福翁自伝)》(1899)의 “목구멍만 넘어가면 뜨거움을 잊는다는 말처럼, 간난신고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를 용례로 든다.[4]
- 그는 온갖 간난신고 끝에 작은 회사를 업계 선두로 키웠다.
-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기까지 유지보수자들이 겪은 간난신고는 커밋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피란길의 간난신고를 떠올리면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 일본 속담 “간난이 너를 옥으로 만든다(艱難汝を玉にす)”는 한문을 훈독한 말처럼 보이지만 한적(漢籍)에서는 출전이 확인되지 않는다. 《일본국어대사전》은 서양 속담 “역경은 사람을 현명하게 한다”를 옮긴 것으로 보고 1874년 《소학독본(小学読本)》을 첫 용례로 들며, 《고토와자를 아는 사전》도 영어 “Adversity makes a man wise.” 등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한다.[19]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간난신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4%EB%82%9C%EC%8B%A0%EA%B3%A0,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간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4%EB%82%9C,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신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B%A0%EA%B3%A0, 확인날짜=2026-09-28.
- ↑ 4.0 4.1 4.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艱難辛苦”,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9%B1%E9%9B%A3%E8%BE%9B%E8%8B%A6, 확인날짜=2026-09-28.
- ↑ 5.0 5.1 5.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險阻艱難”,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821, 확인날짜=2026-09-28.
- ↑ 6.0 6.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備嘗艱苦”,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6881, 확인날짜=2026-09-28.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備嘗辛苦”,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834, 확인날짜=2026-09-28.
- ↑ 장구성(張九成), 〈반경론 중(盤庚論中)〉, 《횡포집(橫浦集)》 권8.
- ↑ 주희(朱熹), 〈행궁편전주차(行宮便殿奏劄)〉, 1194.
- ↑ 《주자독서법(朱子讀書法)》 서(序), 사고전서본.
- ↑ 소순(蘇洵), 〈상구양내한서(上歐陽內翰書)〉, 《가우집(嘉祐集)》 권12(사고전서본).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艱難辛苦”,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권, 세종 1년 9월 11일 계축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109011_007,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5권, 인조 5년 2월 6일 계묘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502006_004,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4월 25일 갑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2304025_001,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52권, 영조 16년 9월 1일 기사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1609001_004, 확인날짜=2026-09-28.
- ↑ 송시열(宋時烈), 〈사소명겸론성학소(辭召命兼論聖學疏)〉 경인 8월 27일, 《송자대전(宋子大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3권, 순조 1년 12월 11일 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wa_10112011_002, 확인날짜=2026-09-28.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토와자를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艱難汝を玉に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9%B1%E9%9B%A3%E6%B1%9D%E3%82%92%E7%8E%89%E3%81%AB%E3%81%99,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