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IT 위키
더 많은 작업
고립무원(孤立無援)은 고립되어 구원을 받을 데가 없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고립(孤立)’은 홀로 따로 떨어져 있다는 말이고, ‘무원(無援)’은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원래는 성이나 군대가 포위되어 원군을 기대할 수 없는 형세를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였고, 조정에서 편들어 줄 사람 없이 외로운 처지를 하소연할 때도 쓰였다. 오늘날에는 국제 관계에서 동맹 없이 홀로 남은 나라, 조직 안에서 지지자 없이 버티는 사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취약 계층 등을 두루 가리킨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형태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홀로 일을 하며 남의 도움이 없음”으로 풀이하고 ‘고립무조(孤立無助)’라고도 한다고 적는다.[2] 일본어에서도 ‘孤立無援(こりつむえん)’이라고 한다.[3]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며, 글자 뜻이 그대로 모여 굳은 말이다. 이른 용례로는 다음이 있다.
- 《후한서》: 남조 송의 범엽(范曄)이 엮은 《후한서(後漢書)》 권47 〈반량열전(班梁列傳)〉의 반초(班超) 전기에 이미 네 글자가 보인다. 영평(永平) 18년(75) 명제가 죽자 언기(焉耆)가 그 틈을 타 서역도호 진목(陳睦)을 공격해 죽였고, 소륵(疏勒)에 있던 반초는 “고립무원한 가운데 구자(龜茲)·고묵(姑墨)이 여러 차례 군사를 내어 소륵을 쳤다(超孤立無援,而龜茲、姑墨數發兵攻疏勒)”. 반초는 반탁성(盤橐城)을 지키며 소륵 왕 충(忠)과 서로 머리와 꼬리가 되어, 적은 군사로 한 해 넘게 버텼다.[4] 성이 적에게 둘러싸여 구원을 기대할 수 없는 형세라는, 이 말의 원래 쓰임을 잘 보여 주는 예이다.
- 당나라: 제영(齊映)의 〈논어사대무방표(論御史臺誣謗表)〉에 어사대의 모함을 받은 처지를 두고 “신은 고립무원하여 공무를 행하고 직분을 받들 뿐이니, 오직 성스러운 임금께서 위에 계시기에 끝내 억울한 일은 없으리라 여기지만, 모함이 날로 깊어지면 어머니라도 흔들릴까 두렵다(臣孤立無援,行公奉職,惟聖盟在上,微臣必不及冤,但恐誣構日深,慈母亦當動聽)”는 구절이 있다.[5] 마지막 구절은 증삼(曾參)의 어머니도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거듭 듣자 베틀의 북을 던지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빌린 표현으로 보인다.
- 북송: 소철(蘇轍)은 〈시황론(始皇論)〉에서, 진나라가 봉건을 하지 않아 “고립무원하게 되어 2대 만에 망했다”고 이사(李斯)를 탓하는 논자들을 반박했다.[6]
- 《요사》: 《요사(遼史)》 권34 〈병위지(兵衛志)〉는 거란군이 적지에 들어가면 성과 성 사이를 끊어 “곳곳의 주성을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해 고립무원하게 만든다(使隨處州城隔絕不通,孤立無援)”고 적었다.[7]
- 소설: 《성어전》은 《삼국지연의》 제47회에서 방통(龐統)이 조조에게 강동의 호걸들을 설득해 항복시키면 “주유가 고립무원하여 반드시 승상에게 사로잡힐 것”이라고 한 대목, 《동주열국지》 제5회 등을 용례로 든다.[2]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야노 류케이(矢野龍渓)의 정치 소설 《경국미담(經國美談)》(1883~1884)을 첫 용례로 든다.[3]
- 성현(成俔)은 〈정료설(庭蓼說)〉에서 어진 인재가 조정에 있으면 뜻 맞는 짝이 드물어 “고립무원”하게 되고, 한번 뜻을 얻지 못하면 기미를 보고 떠나 버린다고 했다.[8]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는 선조 27년(1594)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정현룡(鄭見龍)의 장계가 이른 예이다. 두만강 일대 여진 부락 가운데 힘센 우두머리들이 잇달아 죽어 “고립무원”해진 반란 세력이 임진왜란을 틈타 다시 일어났다고 보고했다.[9]
- 인조 7년(1629) 김류(金瑬)는 사직 차자에서 “신은 본래 고립무원하여 믿는 것은 성명(聖明)뿐(臣本孤立無援,所恃者聖明)”이라고 했다. 이 글은 그의 문집 《북저집(北渚集)》에도 실려 있다.[10]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孤 | 고 | 외롭다 | 홀로 |
| 立 | 립 | 서다 | 서 있다, 처하다 |
| 無 | 무 | 없다 | 없다 |
| 援 | 원 | 돕다, 당기다 | 구원, 도움 |
- 공급망이 끊기고 협력사마저 등을 돌리자 그 회사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 폐쇄망에 남은 구형 서버는 패치도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립무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 홀로 사는 노인이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지역 돌봄망을 넓혀야 한다.
- 고종 16년(1879)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영중추부사 이유원(李裕元)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 조약을 맺어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라고 권하며,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터키가 영국·오스트리아의 개입으로 위기를 넘긴 일을 들어 “만약 터키가 고립무원이었다면 러시아가 이미 이익을 독차지했을 것(向使土國孤立無援,俄人已獨亨其利)”이라고 했다.[11]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립무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B%A6%BD%EB%AC%B4%EC%9B%90,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孤立無援”,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325,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孤立無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D%A4%E7%AB%8B%E7%84%A1%E6%8F%B4, 확인날짜=2026-09-26.
- ↑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47 〈반량열전(班梁列傳)〉.
- ↑ 제영, 〈논어사대무방표(論御史臺誣謗表)〉, 《전당문(全唐文)》 권450.
- ↑ 소철, 〈시황론(始皇論)〉.
- ↑ 《요사(遼史)》 권34 〈병위지(兵衛志) 상〉.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성현, 《허백당문집(虛白堂文集)》 권12 〈정료설(庭蓼說)〉,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72A_0350_010_0040,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56권, 선조 27년 10월 11일 을묘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710011_002,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21권, 인조 7년 7월 18일 신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707018_002,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16권, 고종 16년 7월 9일 신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1607009_001,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