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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內憂外患)은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내우’는 나라 안의 걱정, ‘외환’은 외적이 침범해 오는 걱정을 말한다.[2]

본래 국가가 안으로는 반란·정쟁·민심 이반을, 밖으로는 외침을 한꺼번에 겪는 상황을 가리켰다. 지금은 기업이나 단체, 개인이 내부 갈등과 외부 압박을 동시에 받는 처지를 이를 때도 널리 쓴다. “내우외환이 겹치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다”처럼 쓴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 일본어로는 ‘内憂外患(ないゆうがいかん)’이라고 한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이 말의 뿌리를 《관자(管子)》 〈계(戒)〉에서 찾는다. 제나라 환공(桓公)이 궁 밖에서 묵으며 솥에 음식을 차리지 않자, 궁중의 여인들은 “임금이 밖에서 묵으며 솥에 음식을 올리지 않는다면, 안의 근심이 있지 않으면 반드시 밖의 걱정이 있는 것이다(君外舍而不鼎饋,非有內憂,必有外患)”라는 말을 근거로 환공이 원정을 떠날 것을 알아차렸다.[3][4]

‘내우’와 ‘외환’을 맞세운 말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언릉(鄢陵) 전투(기원전 575년) 이야기에도 나온다. 진나라가 정(鄭)나라를 치자 초(楚)나라가 정나라를 구하러 왔고, 진나라 대부들이 싸우자고 할 때 범문자(范文子, 사섭)만은 반대했다. 《춘추좌씨전》은 그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唯聖人能外內無患,自非聖人,外寧必有內憂。盍釋楚以為外懼乎?

[5]

“오직 성인만이 밖과 안에 모두 걱정이 없을 수 있다. 성인이 아니라면 밖이 편안하면 반드시 안의 근심이 생긴다. 어찌 초나라를 놓아두어 밖의 두려움으로 삼지 않는가?” 《국어(國語)》 〈진어(晉語) 6〉에도 범문자가 “오직 성인만이 밖의 걱정도 없고 안의 근심도 없을 수 있다. 성인이 아니라면 치우칠 수밖에 없는데, 밖으로 치우친 것은 그래도 구할 수 있지만 병이 안에서 생기면 어렵다”며 싸움을 말린 이야기가 실려 있다.[6] 진나라는 결국 싸워 크게 이겼지만, 승리에 교만해진 여공(厲公)은 극씨(郤氏) 세 대부를 죽였다가 이듬해 신하들에게 시해되었다. 범문자의 말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병이 더 무섭다는 경계로 자주 인용된다.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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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憂外患’ 네 글자를 붙여 쓴 예는 남송 무렵의 글에서 확인된다. 남송의 장준(張浚)이 올린 상소로 이심전(李心傳)의 《건염이래계년요록(建炎以來繫年要錄)》 권172와 주희(朱熹)가 지은 장준의 행장(《회암집(晦菴集)》 권95 하)에 실린 글에는 “몇 해 뒤면 백성의 힘은 더욱 다하고 재정은 더욱 모자라며 병사는 더욱 늙고 인심은 더욱 떠나, 내우외환이 잇따라 일어날 것(內憂外患相仍而起)”이라는 구절이 있다.[7] 《성어전》은 청말 소설 《얼해화(孽海花)》 제25회의 “이 내우외환이 잇따라 닥치는 때에(當此內憂外患,接踵而來)”를 용례로 들고, 개인이 겪는 안팎의 곤경을 비유하는 예로 청나라 방포(方苞)의 〈형자도희묘지명(兄子道希墓誌銘)〉을 든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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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옹(金宇顒)은 선조 16년(1583)의 〈진언걸퇴소(進言乞退疏)〉에서 동인·서인의 대립으로 조정의 기강이 무너져 “내우외환이 한꺼번에 일어났다(內憂外患。一時竝作)”고 했다.[8] 조헌(趙憲)도 선조 20년(1587)의 상소에서 “내우외환은 참으로 바다를 건너는데 나루가 없는 격”이라고 했다.[9]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인조 2년(1624) 2월 24일 기사에 한 번 나온다. 이괄의 난 직후, 이원익(李元翼)이 도체찰사 자리를 내놓으려 하자 이귀(李貴)가 “지금 내우외환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으니 체찰의 직임을 어찌 가벼이 바꿀 수 있겠습니까(目今內憂外患,尙爾未祛,體察之任,豈可輕遞)”라고 아뢰었다.[10]

《일본국어대사전》은 에도 막부 법령집 《도쿠가와 금령고(徳川禁令考)》에 실린 덴포 9년(1838) 8월의 문서 “내우외환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도 있으니(内憂外患一時に起り立候も御座候間)”를 첫 용례로 든다.[1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內 내 안 나라 안, 내부
憂 우 근심 근심
外 외 밖 나라 밖, 외부
患 환 근심, 재앙 걱정거리, 환난
  • 핵심 인력이 잇따라 떠나는 가운데 대규모 보안 사고까지 터져 회사는 내우외환에 빠졌다.
  • 고려 말은 권문세족의 횡포와 홍건적·왜구의 침입이 겹친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 대한민국 헌법 제76조 제1항은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는 요건의 하나로 “내우·외환·천재·지변”을 든다.[12] 형법 제2편 제2장의 이름도 ‘외환의 죄’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大興洞)은 원래 ‘내환동’이라 불렸다.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때 ‘내곶(內串)’의 ‘串’ 자가 ‘患’ 자로 잘못 적힌 것이라 하며, 주민들이 ‘내우외환’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름을 바꾸기를 원해 2001년 주민 투표를 거쳐 새 이름이 정해졌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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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덮임. 어려운 일이 잇따라 겹침.
  •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은 홀로 오지 않음.
  • 누란지위(累卵之危), 풍전등화(風前燈火): 몹시 위태로운 처지.
  •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이 적에게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처지.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내우외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B4%EC%9A%B0%EC%99%B8%ED%99%98, 확인날짜=2026-09-27.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내우”·“외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B8%ED%99%98,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內憂外患”,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267, 확인날짜=2026-09-27.
  4. ↑ 《관자(管子)》 〈계(戒)〉.
  5.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6년.
  6. ↑ 《국어(國語)》 〈진어(晉語) 6〉.
  7. ↑ 이심전(李心傳), 《건염이래계년요록(建炎以來繫年要錄)》 권172; 주희, 《회암집(晦菴集)》 권95 하.
  8. ↑ 김우옹, 〈진언걸퇴소(進言乞退疏)〉, 《동강집(東岡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원문 검색,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9. ↑ 조헌, 〈진소회잉사직소(陳所懐仍辭職疏)〉, 《중봉집(重峰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원문 검색,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4권, 인조 2년 2월 24일 무신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202024_006, 확인날짜=2026-09-27.
  11.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内憂外患”,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6%85%E6%86%82%E5%A4%96%E6%82%A3, 확인날짜=2026-09-27.
  12. ↑ 대한민국헌법 제76조 제1항,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8C%80%ED%95%9C%EB%AF%BC%EA%B5%AD%ED%97%8C%EB%B2%95, 확인날짜=2026-09-27.
  13. ↑ “수성구 내환洞 ‘대흥동’ 새이름”, 매일신문, 2001-09-11, https://www.imaeil.com/page/view/200109111457489609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