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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지위(累卵之危)는 층층이 쌓아 놓은 알처럼 몹시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형편을 비유하는 한자성어이다. ‘누란지세(累卵之勢)’, ‘위여누란(危如累卵)’이라고도 한다.[1][2]

알은 하나만 놓아도 구르기 쉬운데, 그것을 여러 개 포개 쌓으면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져 모두 깨진다. 누란지위는 이런 모습에 빗대어, 나라나 조직이 곧 무너질 듯한 위기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주로 국운, 정권, 회사의 존립처럼 규모가 큰 대상의 ‘형세’가 위태로울 때 쓴다.

중국어에서는 ‘위여누란(危如累卵)’ 형태로 흔히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이를 주표제어로 두고 ‘累卵之危’, ‘危於累卵’, ‘危猶累卵’ 등을 같은 말로 싣는다.[3] 일본어에서는 ‘累卵(るいらん)’ 또는 ‘累卵の危うき’라고 한다.[4]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이 《사기》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나온다고 설명한다. 《성어전》은 더 이른 《한비자》 〈십과(十過)〉를 말의 근원으로 보고, 《전국책》과 《사기》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3]

《한비자》 〈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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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과〉는 나라를 망치는 열 가지 잘못을 들고 사례로 풀이한 편이다. 마지막 잘못인 ‘나라가 작으면서 무례한 것(國小無禮)’의 사례로 조(曹)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망명 중이던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조나라를 지날 때, 조나라 임금은 그의 갈비뼈가 통뼈라는 소문을 듣고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는 무례를 저질렀다. 신하 숙첨(叔瞻)과 이부기(釐負羈)가 간했지만 듣지 않았고, 중이는 뒤에 진나라 임금(진 문공)이 된 지 3년 만에 조나라를 쳤다. 한비는 이렇게 평한다.[5]

故曹,小國也,而迫於晉、楚之間,其君之危猶累卵也,而以無禮蒞之,此所以絶世也。

“조나라는 작은 나라로 진(晉)과 초(楚) 사이에 끼어 있어 그 임금의 위태로움이 쌓아 놓은 알과 같았는데, 무례하게 굴었으니 이것이 대가 끊긴 까닭이다.”

《사기》 〈범저채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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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널리 소개되는 이야기다. 위(魏)나라 사람 범저(范雎, ‘범수’라고도 읽는다)는 중대부 수가(須賈)를 섬기다가 제나라와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아 재상 위제(魏齊)에게 모진 매질을 당하고, 죽은 척하여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는 정안평(鄭安平)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며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었고, 마침 위나라에 사신으로 온 진(秦)나라의 왕계(王稽)를 따라 몰래 진나라로 들어갔다. 왕계는 진 소왕(昭王)에게 그를 이렇게 천거했다.[6]

魏有張祿先生,天下辯士也。曰『秦王之國危於累卵,得臣則安。然不可以書傳也』。臣故載來。

“위나라에 장록 선생이 있는데 천하의 변사입니다. 그가 ‘진왕의 나라는 쌓아 놓은 알보다 위태롭지만 저를 얻으면 편안해질 것이다. 다만 글로는 전할 수 없다’고 하기에 수레에 태워 데려왔습니다.”

당시 진나라는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와 그 동생 양후(穰侯) 등 외척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 범저는 뒤에 소왕의 신임을 얻어 재상에 올랐다.

그 밖의 이른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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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책》 〈조책(趙策)〉에서 소진(蘇秦)은 주보(主父)를 죽인 이태(李兌)에게 “그대가 천하에 서 있는 것이 쌓은 알보다 위태롭다(君之立於天下,危於累卵)”고 말한다.[7]
  • 한나라 매승(枚乘)은 반란을 꾀하던 오왕(吳王) 유비(劉濞)에게 올린 글에서 “하려는 대로 하면 쌓은 알보다 위태롭고(危於累卵)… 쌓은 알의 위태로움(累卵之危)을 타려 한다”고 경고했다. 네 글자 ‘累卵之危’가 보이는 이른 예다(《한서》에는 ‘累’가 같은 뜻의 ‘絫’로 적혀 있다).[8]
  • 《성어전》은 ‘累卵之危’의 용례로 유향(劉向)의 〈극간용외척봉사(極諫用外戚封事)〉에 나오는 “아래에 태산 같은 편안함이 있으면 위에 누란의 위태로움이 있다(如下有泰山之安,則上有累卵之危)”를 든다.[9][10]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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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危如累卵’이 16건, ‘累卵之危’가 10건 나온다.

  • 태종 11년(1411) 하륜(河崙)은 상소에서, 고려 말 태조 이성계가 당시 임금의 시기를 받아 “위태롭기가 쌓은 알과 같았다(危如累卵)”고 썼다.[11]
  • 예종 1년(1469) 익대공신에게 내린 교서에 “누란의 위기에 이미 닥쳤다(已迫累卵之危機)”는 구절이 있다.[12]
  •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은 사직을 청하며 “우리나라가 바야흐로 누란의 위태로움에 있다(我國方有累卵之危)”고 아뢰었다.[1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累 루(누) 묶다, 포개다 층층이 쌓다
卵 란(난) 알 알
之 지 ~의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危 위 위태하다 위태로움
  • 주요 거래처가 잇달아 계약을 끊으면서 회사는 누란지위에 놓였다.
  • 백업도 이중화도 없는 단일 서버에 전사 업무를 올려 둔 것은 누란지위나 다름없다.
  • 외적이 국경을 넘어오자 나라의 운명은 누란지위에 처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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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란지세(累卵之勢), 위여누란(危如累卵): 같은 뜻이다.
  •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움.
  • 위기일발(危機一髮): 머리털 하나 차이로 위험이 닥친 절박한 순간. 《성어전》은 ‘위여누란’이 형세의 위험을, ‘천균일발(千鈞一髮)’이 눈앞의 긴박한 위급을 강조한다고 구별한다.[3]
  • 일촉즉발(一觸卽發):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듯한 긴장 상태.
  • 초미지급(焦眉之急):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매우 급함.
  • 백척간두(百尺竿頭): 백 자 높이 장대 끝에 선 것처럼 몹시 위태로운 지경.
  • 반대 의미: 안여태산(安如泰山), 안여반석(安如磐石): 태산이나 너럭바위처럼 든든하고 안정됨. 《성어전》이 반대말로 든다.[3]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누란지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8%84%EB%9E%80%EC%A7%80%EC%9C%84,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위여누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84%EC%97%AC%EB%88%84%EB%9E%80,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3.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危如累卵”,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60, 확인날짜=2026-09-26.
  4.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累卵”,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B4%AF%E5%8D%B5, 확인날짜=2026-09-26.
  5. ↑ 《한비자》 〈십과(十過)〉.
  6. ↑ 사마천, 《사기》 권79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7. ↑ 《전국책》 〈조책 1(趙策一)〉.
  8. ↑ 반고, 《한서》 권51 〈가추매로전(賈鄒枚路傳)〉 매승; 《문선》 권39 〈상서간오왕(上書諫吳王)〉.
  9.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累卵之危”,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91, 확인날짜=2026-09-26.
  10. ↑ 반고, 《한서》 권36 〈초원왕전(楚元王傳)〉.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2권, 태종 11년 7월 2일 신유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107002_005, 확인날짜=2026-09-26.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예종실록》 5권, 예종 1년 5월 20일 계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ha_10105020_001, 확인날짜=2026-09-26.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51권, 선조 27년 5월 28일 을사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705028_004,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