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무도
더 많은 작업
대역무도(大逆無道)는 임금이나 나라에 큰 죄를 지어 도리에 크게 어긋나 있음, 또는 그런 짓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대역부도(大逆不道)’라고도 한다.[1][2]
‘대역(大逆)’은 임금이나 나라를 해치려 한 큰 반역을, ‘무도(無道)’는 도리가 없음을 말한다. 원래는 한나라 때 임금 시해·반역·종묘 침범 같은 가장 무거운 죄를 가리키던 법률 용어였고, 이런 죄에는 허리를 베는 요참(腰斬)이나 일족을 죽이는 처벌이 따랐다. 지금은 반역뿐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크게 저버린 짓을 강하게 꾸짖는 말로도 쓴다.
중국어에서는 ‘대역부도(大逆不道)’가 일반적인 형태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大逆無道를 大逆不道의 다른 형태로 올리고, “大逆不道는 원래 大逆無道로 썼다”고 설명한다.[3] 일본어에서도 ‘大逆無道(だいぎゃくぶどう·たいぎゃくむどう)’라고 한다.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온다. 진나라 말 항우(項羽)는 초 회왕(懷王)을 의제(義帝)로 받들었다가 강남으로 내쫓고 죽였다. 한왕 2년(기원전 205) 3월, 낙양에 이른 한왕 유방(劉邦)은 신성(新城)의 삼로(三老) 동공(董公)에게서 의제가 죽은 사연을 듣고 웃통을 벗고 크게 곡한 뒤, 사흘 동안 상을 치르고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알렸다.[4]
天下共立義帝,北面事之。今項羽放殺義帝於江南,大逆無道。寡人親為發喪,諸侯皆縞素。悉發關內兵,收三河士,南浮江漢以下,願從諸侯王擊楚之殺義帝者。
“천하가 함께 의제를 세우고 북쪽을 향해 신하로 섬겼다. 그런데 지금 항우가 의제를 강남으로 내쫓아 죽였으니 대역무도하다. 과인이 몸소 상을 치르니 제후들은 모두 흰 상복을 입으라. 관중의 군사를 모두 일으키고 삼하(三河)의 병사를 거두어 장강과 한수를 따라 내려가, 제후왕들과 함께 의제를 죽인 초나라를 치기를 바란다.” 《성어전》은 이 대목을 大逆不道의 전원(典源)으로 든다.[3] 이 격문은 의제의 죽음을 명분으로 삼아 항우와의 싸움을 천하의 정의로운 전쟁으로 내세운 것으로, 뒤에 유방이 광무산(廣武山)에서 항우와 마주 서서 그의 죄 열 가지를 꾸짖을 때도 마지막 열 번째 죄로 “천하가 용납하지 않는 바이니 대역무도하다(天下所不容,大逆無道,罪十也)”를 들었다.[4]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도 같은 격문이 실려 있는데, “放殺義帝江南”(於 없음), “兵皆縞素”(諸侯皆縞素), “悉發關中兵”(關內兵)처럼 몇 글자가 다르다.[5]
한나라 때 大逆無道는 반역죄를 판결하는 공식 죄명으로 쓰였다. 《사기》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에서 회남왕 유안(劉安)의 모반이 드러나자 조왕 팽조(彭祖) 등 43명이 “회남왕 유안은 대역무도함이 심하고 모반이 명백하니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淮南王安甚大逆無道,謀反明白,當伏誅)”고 의논했다.[6] 《사기》 〈유협열전(游俠列傳)〉에서는 협객 곽해(郭解)의 식객이 곽해를 헐뜯은 유생을 죽였는데, 곽해 자신은 그 일을 몰랐다. 그런데도 어사대부 공손홍(公孫弘)은 “곽해가 비록 몰랐다 해도 이 죄는 곽해가 직접 죽인 것보다 무거우니 대역무도에 해당한다(當大逆無道)”고 하여 곽해의 일족을 멸했다.[7] 《한서》 〈경제기(景帝紀)〉에도 아버지를 죽이려 한 아들의 죄를 “大逆無道”로 규정한 조서가 있다.[8]
《한서》에서는 같은 죄명을 ‘大逆不道’로 적은 예가 많다. 선제(宣帝) 때 양운(楊惲)이 원망하는 말을 했다는 죄로 “대역부도로 요참되었다(大逆不道,要斬)”는 기록이 대표적이다.[9] 삼국 시대 위나라가 새 율령을 만들 때는 “말로 범한 죄와 종묘·원릉을 범한 죄를 대역무도라 하여 요참하고 가족을 연좌하되 조부모와 손자에게는 미치지 않게 했다(但以言語及犯宗廟園陵,謂之大逆無道,要斬,家屬從坐,不及祖父母、孫)”고 《진서(晉書)》 〈형법지(刑法志)〉는 전한다.[10]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大逆無道는 3건, 大逆不道는 232건으로, 조선에서도 ‘대역부도’가 훨씬 흔한 형태였다(원문 기준).[11] 大逆無道의 원문 용례 중에는 정유재란 직전의 외교 문답이 있다. 선조 30년(1597) 3월 도원수 권율(權慄)이 올린 장계에는 승려 송운(松雲, 사명당 유정)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주고받은 글이 실려 있는데, 가토가 “5년 전 명나라를 치려 할 때 조선에 선봉이 되고 길을 빌려 달라 했으나 따르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교린이냐”고 따지자 송운은 “우리나라는 예의의 나라로서 명나라와 군신의 의리가 정해졌으니 어찌 일본과 함께 명나라를 치는 대역무도한 짓을 하겠는가(何可與日本同伐大明,作大逆無道乎)”라고 답했다.[12]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 때는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는 상소를 주도한 박태보(朴泰輔)를 숙종이 직접 국문하면서 “원자는 나라의 근본인데 너는 죄인을 위해 절의를 세우려 하면서 원자를 위해서는 걱정하지 않으니 이것이 대역무도가 아니냐(此非大逆無道乎)”고 다그쳤다.[13]
- 사극에서 반역을 꾀한 대신은 “대역무도한 죄인”으로 끌려 나와 국문을 받는다.
- 나라의 기간 통신망을 마비시키려 한 공격을 두고 대역무도한 범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 늙은 부모를 내팽개친 자식의 행태는 대역무도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대역무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C%80%EC%97%AD%EB%AC%B4%EB%8F%84,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대역부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C%80%EC%97%AD%EB%B6%80%EB%8F%84, 확인날짜=2026-10-03.
-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大逆無道”,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445, 확인날짜=2026-10-03.
- ↑ 4.0 4.1 사마천, 《사기》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
- ↑ 반고, 《한서》 권1 상 〈고제기(高帝紀) 상〉.
- ↑ 사마천, 《사기》 권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 ↑ 사마천, 《사기》 권124 〈유협열전(游俠列傳)〉.
- ↑ 반고, 《한서》 권5 〈경제기(景帝紀)〉.
- ↑ 반고, 《한서》 권8 〈선제기(宣帝紀)〉.
- ↑ 방현령 등, 《진서》 권30 〈형법지(刑法志)〉.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大逆不道”,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topSearchWord=%E5%A4%A7%E9%80%86%E4%B8%8D%E9%81%93&type=w,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86권, 선조 30년 3월 30일 경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003030_001,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20권, 숙종 15년 4월 25일 신묘 10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1504025_010, 확인날짜=2026-10-03.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大逆無道”,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4%A7%E9%80%86%E7%84%A1%E9%81%93,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