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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역무도(悖逆無道)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슬러 사람다운 데가 없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패역무도하다’ 꼴로도 쓴다.

‘패역(悖逆)’은 도리에 어그러지고 순리를 거스른다는 말이고, ‘무도(無道)’는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두 말을 겹쳐 임금이나 어버이를 거스르는 반역·불효, 또는 사람의 도리를 크게 저버린 짓을 몹시 꾸짖을 때 쓴다. 뜻과 쓰임이 반역죄를 이르던 대역무도(大逆無道)와 가깝다.

중국 고전에서도 ‘悖逆無道’를 그대로 쓰며, ‘悖逆不道(패역부도)’, ‘悖逆亡道’로도 적었다(‘亡’은 ‘無’와 같은 뜻으로 쓰인 글자이다). 일본의 옛 사서에도 이 말이 보인다(아래 ‘여담’ 참고).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悖 패 어그러지다, 거스르다 도리에 어그러짐
逆 역 거스르다 순리를 거스름
無 무 없다 없음
道 도 길, 도리 사람의 도리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한나라 때부터 죄를 꾸짖는 글에 쓰인 말이다.

한나라의 조서와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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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권80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에는 한 원제(元帝)가 아우인 회양왕(淮陽王) 유흠(劉欽)에게 내린 새서(璽書)가 실려 있다. 회양왕의 외숙 장박(張博)이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조정을 헐뜯고 왕을 부추긴 일이 드러나자, 원제는 이렇게 꾸짖었다.

有司奏王,王舅張博數遺王書,非毀政治,謗訕天子,褒舉諸侯,稱引周、湯,以諂惑王,所言尤惡,悖逆無道。王不舉奏而多與金錢,報以好言,罪至不赦。

[2]

“유사가 아뢰기를, 왕의 외숙 장박이 여러 차례 왕에게 편지를 보내 조정의 정치를 헐뜯고 천자를 비방하며 제후들을 추어올리고 주나라와 탕왕을 끌어다 왕에게 아첨하여 미혹하게 하였으니, 그 말이 더욱 악하여 패역무도하다고 한다. 왕은 이를 아뢰지 않고 도리어 금전을 많이 주고 좋은 말로 답하였으니 죄가 용서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원제는 그러나 차마 법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왕을 용서하며 타일렀다.

이보다 앞서 한 문제(文帝) 때 가의(賈誼)가 반역을 꾀하다 귀양길에 죽은 회남왕 유장(劉長)의 아들들을 다시 왕으로 봉하려는 데 반대하며 올린 상소에도 “회남왕의 패역무도함을 천하에 누가 모르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은 《한서》 권48 〈가의전〉에는 “悖逆亡道”로,[3] 가의의 문집 《신서(新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4에는 “悖逆無道”로 실려 있다.[4]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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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悖逆無道’가 4건 있다.[5] 가장 이른 것은 1469년(예종 1년) 기사로, 사헌부 지평 이평(李枰)이 원자가 피접해 있는 곳에 가서 종친을 욕보이고도 용서받은 환관 최해(崔海)가 다시 같은 짓을 저지르자 “패역무도하여 그 죄가 진실로 크다(悖逆無道,罪固大)”며 그를 마음대로 풀어 준 의금부 관원들을 국문하라고 청했다.[6] 임진왜란 중인 1594년(선조 27년)에는 선조가 일본이 스스로 연호를 세우고 ‘해 뜨는 나라 황제’를 칭한 일을 들어 “그 패역무도함이 이와 같다(其悖逆無道如此)”며 일본이 명에 책봉을 청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7] 1610년(광해군 2년) 기사는 의금부가 국문을 청한 죄인 김직재(金直哉)를 “패역무도하다(悖逆無道)”고 소개한다.[8]

잘못 알려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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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목록 가운데에는 패역무도의 출전을 《광해군일기》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나무위키 등). 《광해군일기》에 이 말이 나오는 것은 맞지만, 실록에서도 1469년 《예종실록》이 더 이르고, 말 자체는 이미 《한서》에 실린 한나라 원제의 조서에 쓰였다.

  • 고객 정보를 팔아넘기고도 피해자 탓을 하는 그의 태도는 패역무도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 늙은 부모를 내버리고 재산만 챙긴 자식의 패역무도한 행실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 일본의 옛 사서 《일본후기(日本後紀)》 권8의 와케노 기요마로(和氣淸麻呂) 졸기에는 769년 우사 하치만 신탁 사건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 하치만 신은 “우리나라는 임금과 신하의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도쿄(道鏡)가 패역무도하여 함부로 제위를 넘본다(我國家君臣分定。而道鏡悖逆無道。輙望神器)”고 신탁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9]
  • 《조선왕조실록》 국역문에는 원문의 ‘悖逆不道’를 ‘패역무도’로 옮긴 곳도 있다. 1620년(광해군 12년) 기사의 “如尹純仁悖逆不道之輩”가 그 예이다.[10]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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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역무도(大逆無道): 임금이나 나라에 큰 죄를 지어 도리에 크게 어긋나 있음.
  • 극악무도(極惡無道): 더할 나위 없이 악하고 도리에 완전히 어긋나 있음.
  • 패역부도(悖逆不道): 패역무도와 같은 뜻으로 중국 고전에서 쓰던 꼴.
  •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함.
  • 천인공노(天人共怒):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분노할 만큼 증오스럽거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패역무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C%A8%EC%97%AD%EB%AC%B4%EB%8F%84, 확인날짜=2026-10-12.
  2.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80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회양헌왕 유흠.
  3.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48 〈가의전(賈誼傳)〉.
  4. ↑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4, 한 문제 8년.
  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悖逆無道”,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2.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예종실록》 6권, 예종 1년 6월 10일 임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ha_10106010_001, 확인날짜=2026-10-12.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48권, 선조 27년 2월 2일 신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702002_002, 확인날짜=2026-10-12.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 36권, 광해 2년 12월 22일 계사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b_10212022_003, 확인날짜=2026-10-12.
  9. ↑ 후지와라노 오쓰구(藤原緒嗣) 등, 《일본후기(日本後紀)》 권8, 와케노 기요마로 졸기.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53권, 광해 12년 6월 5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oa_11206005_004,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