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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人面獸心)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서 나온 말이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하는 짓은 사람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파렴치한 사람을 꾸짖을 때 쓴다. 오늘날에는 어린이나 노약자를 해친 범죄,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 가족을 학대한 사건 등을 두고 “인면수심의 범행”처럼 언론 보도에서 자주 쓰인다.

본래는 한나라 사람들이 북방의 흉노를 ‘예의를 모르는 오랑캐’로 깎아내리며 쓴 말이었다. 특정 민족을 낮추어 보던 화이(華夷) 관념에서 나온 표현이 뒤에 개인의 인성을 비난하는 말로 바뀐 것이다.

중국어에서도 ‘人面獸心’이라고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처음에는 ‘문화가 열리지 않아 예의를 모르는 것’을 뜻했다가 뒤에 ‘사람이 흉포하고 잔인함’을 뜻하게 되었다고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人面獣心(じんめんじゅうしん, にんめんじゅうしん)’이라고 하여 은혜와 인정을 모르는 사람, 곧 ‘사람도 아닌 자(人でなし)’를 욕하는 말로 쓴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人 인 사람 사람
面 면 낯, 얼굴 얼굴, 겉모습
獸 수 짐승 짐승
心 심 마음 마음, 속

‘사람의 얼굴(人面)’과 ‘짐승의 마음(獸心)’을 맞세운 짜임이다.

《한서》 〈흉노전〉의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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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는 《한서》 권94 하 〈흉노전〉 끝의 찬(贊)에서, 흉노와 화친할 것인가 정벌할 것인가를 둘러싼 한나라 조정의 논쟁을 정리하며 이렇게 썼다.[4]

是以春秋內諸夏而外夷狄。夷狄之人貪而好利,被髮左衽,人面獸心。其與中國殊章服,異習俗,飲食不同,言語不通,辟居北垂寒露之野,逐草隨畜,射獵為生,隔以山谷,雍以沙幕,天地所以絕外內也。是故聖王禽獸畜之,不與約誓,不就攻伐;約之則費賂而見欺,攻之則勞師而詔寇。

“그러므로 《춘추》는 여러 하(夏)나라를 안으로 삼고 이적(夷狄)을 밖으로 삼았다. 이적의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이익을 좋아하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니,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지녔다. 그들은 중국과 예복이 다르고 풍속이 다르며, 먹고 마시는 것이 같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북쪽 변방의 찬 이슬 내리는 들에 치우쳐 살며, 풀을 따라 가축을 몰고 활로 사냥하여 살아간다. 산과 골짜기로 막히고 사막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이는 하늘과 땅이 안과 밖을 끊어 놓은 까닭이다. 그래서 성왕은 그들을 짐승처럼 길렀을 뿐 맹약을 맺지도 않고 쳐서 정벌하지도 않았다. 맹약을 맺으면 재물만 쓰고 속임을 당하며, 치면 군대만 지치게 하고 도적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면수심’은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예와 의를 모르는 이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반고는 이어서 흉노는 땅을 갈아 먹을 수도, 백성을 신하로 삼을 수도 없으므로 “오면 응징해 막고, 가면 대비해 지키며”, 의를 사모해 공물을 바치면 예로 대접하는 것이 성왕이 오랑캐를 다스리는 떳떳한 방도라고 결론지었다.[4]

잘못 알려진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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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디지털 다이지센》은 이 말이 《사기(史記)》 〈흉노전〉에서 나왔다고 적었지만,[3] 《사기》 권110 〈흉노열전(匈奴列傳)〉에는 이 말이 보이지 않는다.[5] 같은 코토뱅크의 《일본국어대사전》과 《성어전》은 모두 《한서》 〈흉노전〉을 출전으로 든다.[3][2]

《진서(晉書)》 권78에는 동진의 공엄(孔嚴)이 북쪽에서 투항해 온 무리를 후하게 대접하던 은호(殷浩)에게 “요즘 항복해 온 무리를 보니 모두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이어서 탐욕스럽고 친함이 없어 의리로 감화시키기 어렵다(又觀頃日降附之徒,皆人面獸心,貪而無親,難以義感)”고 간한 말이 있다.[6] 《성어전》은 이 밖에 당나라 오긍(吳兢)의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돌궐 사람들을 두고 한 말,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여진을 두고 한 말을 용례로 들며, 청말 소설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제16회의 “관리라는 자들 가운데 인면수심인 자가 많다”에 이르면 이민족이 아닌 사람 일반을 비난하는 말로 쓰였다고 설명한다.[2] 처음 몇백 년 동안은 주로 이민족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었다가, 차츰 악한 사람을 꾸짖는 말로 넓어진 것이다.

《성어전》은 비슷한 말인 ‘의관금수(衣冠禽獸)’와 견주어, 인면수심은 성품이 흉악하고 마음씨가 독한 데에, 의관금수는 행실이 비열한 데에 초점이 있다고 구별한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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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人面獸心’이 80건 나온다.[7] 가장 이른 1421년(세종 3) 기사는 조선 사람의 말이 아니라, 일본 규슈의 전 총관 원도진(源道鎭)이 의정부에 보낸 편지이다. 그는 류큐 상선을 습격한 대마도의 해적을 두고 “대마도의 도적은 인면수심이라 교화나 법령으로 다스리기 어렵다(夫對馬之賊,人面獸心,難以敎化、法令制之)”고 했다.[8] 조선 신하의 말로는 1423년(세종 5) 이조판서 허조(許稠)가 여진 추장 양목탑올(楊木塔兀)을 두고 “인면수심이고 용맹하기 짝이 없어 한번 격노하면 제어하기 매우 어렵다(人面獸心,驍勇無比,一有激怒,制之甚難)”고 한 것이 이르다.[9] 조선 초기의 용례도 대부분 왜구나 여진처럼 국경 밖의 무리를 가리켰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붙잡혀 간 강항(姜沆)은 〈섭란사적(涉亂事迹)〉에서 1598년 새해를 맞은 일본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려 귀신을 쫓고 등불을 켜 해를 지키는 모습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의 풍속과 자못 비슷하다고 적은 뒤, “그 사람들이 인면수심인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恨其人人面獸心耳)”라고 덧붙였다.[10]

  • 노인들의 연금 계좌를 노린 피싱 조직의 인면수심 범행에 공분이 일었다.
  • 자신을 키워 준 은사를 속여 재산을 가로챈 인면수심의 행태가 드러났다.
  • 에밀 졸라(Émile Zola)의 장편소설 《인간 짐승(La Bête humaine)》(1890)은 중국어로 《人面獸心》이라는 제목으로 옮겨져 나왔다.[11][12]
  • 일본에서는 《태평기(太平記)》(14세기 후반)에 이미 쓰였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지옥변(地獄変)〉(1918)에는 그림 때문에 부모 자식의 정도 잊은 화가를 두고 사람들이 “인면수심의 악당”이라 욕했다는 대목이 있다.[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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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관금수(衣冠禽獸): 옷을 갖춰 입은 짐승이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점잖으나 행실이 짐승 같은 사람.[2]
  • 낭심구폐(狼心狗肺): 이리의 마음과 개의 허파라는 뜻으로, 마음씨가 흉악하고 은혜를 모름.
  •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음.
  • 우리말 표현: ‘인두겁을 쓰다’, ‘짐승만도 못하다’.
  • 반대 의미: 면악심선(面惡心善): 얼굴은 험상궂으나 마음씨는 착함.[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인면수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8%EB%A9%B4%EC%88%98%EC%8B%AC, 확인날짜=2026-10-01.
  2.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人面獸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29, 확인날짜=2026-10-01.
  3. ↑ 3.0 3.1 3.2 3.3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人面獣心”,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A%BA%E9%9D%A2%E7%8D%A3%E5%BF%83, 확인날짜=2026-10-01.
  4. ↑ 4.0 4.1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94 하 〈흉노전(匈奴傳) 하〉 찬(贊).
  5. ↑ 사마천, 《사기(史記)》 권110 〈흉노열전(匈奴列傳)〉.
  6. ↑ 《진서(晉書)》 권78 〈공유전(孔愉傳)〉 부 공엄(孔嚴).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人面獸心”(80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4권, 세종 3년 11월 6일 을축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311006_006, 확인날짜=2026-10-01.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 8월 2일 경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508002_001, 확인날짜=2026-10-01.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강항, 《수은집(睡隱集)》 〈섭란사적(涉亂事迹)〉, 자료ID ITKC_MO_0287A_0060_010_005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287A_0060_010_0050, 확인날짜=2026-10-01.
  11. ↑ “人面獸心”(左拉 著), 博客來, https://www.books.com.tw/products/0010902083, 확인날짜=2026-10-01.
  12. ↑ “人面兽心”(左拉 著, 漓江出版社), 豆瓣读书, https://m.douban.com/book/subject/2295170/,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