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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휼지쟁(蚌鷸之爭)은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둘 다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이 다투다가 결국 구경하던 다른 사람에게 득을 주는 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앞뒤를 바꾼 ‘휼방지쟁(鷸蚌之爭)’도 같은 말이다.[1][2]

같은 우화에서 나온 어부지리(漁夫之利)가 제삼자가 얻는 ‘이익’을 가리킨다면, 방휼지쟁은 서로 물고 놓지 않다가 함께 망하는 ‘다툼’ 자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싸우는 당사자들을 경계하는 말로 쓰인다.

중국어에서는 ‘휼방상쟁(鷸蚌相爭)’을 주로 쓰고, 뒤에 “어인득리(漁人得利)”를 붙여 말하기도 한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를 ‘두 쪽이 다투며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반드시 둘 다 다치고 제삼자가 이익을 얻게 됨’으로 푼다.[3] 일본어에서는 ‘鷸蚌の争い(いつぼうのあらそい)’라고 하며, 무익한 다툼으로 제삼자에게 이익을 빼앗기고 함께 쓰러지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 풀이한다.[4]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2〉의 〈조차벌연(趙且伐燕)〉 장에 나온다. 조(趙)나라가 연(燕)나라를 치려 하자 소대(蘇代)가 연나라를 위해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5]

今者臣來,過易水,蚌方出曝,而鷸啄其肉,蚌合而拑其喙。鷸曰:『今日不雨,明日不雨,即有死蚌。』蚌亦謂鷸曰:『今日不出,明日不出,即有死鷸。』兩者不肯相舍,漁者得而并禽之。今趙且伐燕,燕、趙久相支,以弊大眾,臣恐強秦之為漁父也。

“오늘 신이 오면서 역수(易水)를 지나는데, 조개가 막 나와 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도요새가 그 살을 쪼자 조개가 껍데기를 닫아 도요새의 부리를 물었습니다. 도요새가 ‘오늘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죽은 조개가 되겠지’라고 하자, 조개도 ‘오늘 못 빠져나가고 내일도 못 빠져나가면 죽은 도요새가 되겠지’라고 했습니다. 둘이 서로 놓아주지 않는 사이에 고기 잡는 사람이 와서 둘을 한꺼번에 잡았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려 하는데, 연과 조가 오래 버티며 백성을 지치게 하면 강한 진(秦)나라가 그 어부가 될까 두렵습니다.” 혜문왕은 “옳다”며 연나라 치기를 그만두었다.[5]

같은 이야기의 전말과 ‘어부지리’로 이어지는 뜻은 어부지리 문서에 자세하다. 《전국책》의 옛 주석은 이 이야기가 순우곤(淳于髡)의 개와 토끼 이야기(견토지쟁), 진진(陳軫)의 호랑이 다툼 이야기와 겉은 달라도 뜻은 같다고 보았다.[6]

주석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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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석가들은 도요새의 말에 왜 ‘비’가 나오는지를 두고 풀이를 달았다. 송나라 포표(鮑彪)는 도요새를 “하늘에서 비가 오려는 것을 아는 새(知天將雨鳥)”라고 풀었고, 원나라 오사도(吳師道)의 보주는 “도요새는 비가 올 것을 알며, 비가 오면 곧 풀려 떠난다”고 덧붙였다. 반면 송나라 요굉(姚宏)의 주는 비를 맞으면 조개와 도요새가 풀린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며, 송나라 육전(陸佃)이 이 구절을 “今日不兩,明日不兩”으로 적고 ‘兩’을 ‘입을 벌림’으로 풀었다는 설을 소개했다.[5] 이 풀이대로라면 도요새의 말은 ‘네가 오늘도 내일도 입을 벌리지 않으면’이 된다.

네 글자 형태와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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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국 문헌에서는 네 글자로 굳히기보다 ‘蚌鷸’, ‘鷸蚌’을 두 글자로 떼어 쓰는 일이 많았다. 《성어전》은 ‘蚌鷸’을 두 글자 성어로 따로 싣고 《위서(魏書)》 〈소연전(蕭衍傳)〉의 모용소종(慕容紹宗) 〈격양문(檄梁文)〉을 문헌으로 든다.[7] 또 뜻이 같은 말로 다음을 싣는다.[3]

  • 휼방상위(鷸蚌相危): 북제 위수(魏收)의 〈위동위격양문(為東魏檄梁文)〉 “휼방이 서로 해치니 우리는 그 피폐함을 탄다(鷸蚌相危,我乘其弊)”.
  • 휼방상지(鷸蚌相持): 원나라 상중현(尚仲賢)의 잡극 《기영포(氣英布)》, 《성세항언(醒世恆言)》 권8.
  • 휼방상투(鷸蚌相鬥): 청나라 백일거사(百一居士)의 《호천록(壺天錄)》.

‘鷸蚌之爭’이라는 네 글자는 청나라 이후의 문헌에서 보이고,[8] 한국어 표제어인 ‘蚌鷸之爭’의 순서로는 옛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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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일찍부터 ‘방휼’이 두 세력의 소모적인 대치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당나라에서 고변(高駢)을 대신해 지은 글에서 주변 장수들과의 불화를 “매미들이 다투어 울고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헐뜯는다(蜩螗競噪。蚌鷸相譏)”고 표현했다.[9]
  • 고려의 김구(金坵)는 1216년 거란 유민이 침입했을 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버틴 형세를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버티는 것 같다(若蚌鷸之相持)”고 썼다.[10]
  • 김시습(金時習)은 〈독좌씨춘추(讀左氏春秋)〉에서 춘추 시대 제후들의 끝없는 싸움을 “조개와 도요새처럼 버티니 끝을 기약할 수 없다(蚌鷸相持未可期)”는 구절로 시작했다.[11]
  •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중종 24년(1529)의 상소가 조정이 두 갈래로 나뉘어 “방휼의 형세(蚌鷸之勢)”를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12] 선조 37년(1604) 승정원은 임진왜란을 “8년 동안의 휼방의 버팀(八年鷸蚌之持)”이라고 불렀다.[13]

일본어 ‘鷸蚌の争い’의 첫 용례로 《일본국어대사전》은 미야케 세쓰레이(三宅雪嶺)의 《위악추일본인(偽悪醜日本人)》(1891)의 “방휼의 다툼이 끝내 어부의 이익이 됨을 어찌하랴(鷸蚌の争遂に漁夫の利となるを如何せん)”를 든다.[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蚌 방 조개 껍데기가 둘인 큰 조개
鷸 휼 도요새 도요새
之 지 ~의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爭 쟁 다투다 다툼
  • 두 부서가 예산을 두고 방휼지쟁을 벌이는 사이 프로젝트 일정만 반년 넘게 밀렸다.
  •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라이선스 문제로 두 진영으로 갈라져 방휼지쟁을 벌이자, 사용자들은 상용 제품으로 옮겨 갔다.
  • 여야가 방휼지쟁에 빠져 있는 동안 민생 법안은 하나도 처리되지 못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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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지리(漁夫之利): 같은 우화에서 나온 말로,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애쓰지 않고 가로챈 이익.
  • 견토지쟁(犬兔之爭): 개와 토끼의 다툼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의 싸움에 제삼자가 이익을 봄.[14]
  • 어인득리(漁人得利): 어부가 이익을 얻음. 중국어에서 휼방상쟁 뒤에 이어 말한다.[3]
  • 오월동주(吳越同舟):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도 이해가 맞으면 협력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방휼지쟁”,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A9%ED%9C%BC%EC%A7%80%EC%9F%81,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휼방지쟁”,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C%BC%EB%B0%A9%EC%A7%80%EC%9F%81,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鷸蚌相爭”,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471,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鷸蚌の争い”,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7%B8%E8%9A%8C%E3%81%AE%E4%BA%89%E3%81%84, 확인날짜=2026-09-26.
  5. ↑ 5.0 5.1 5.2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2〉 “조차벌연(趙且伐燕)”.
  6. ↑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3〉 “제욕벌위(齊欲伐魏)”의 주석.
  7.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蚌鷸”,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9611, 확인날짜=2026-09-26.
  8. ↑ 오광성(吳廣成), 《서하서사(西夏書事)》 권42; 서계여(徐繼畬), 《영환지략(瀛寰志略)》 〈아세아 동남양 각도〉.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최치원,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소구 상공(蕭遘相公)〉 제2,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01A_0110_010_0070, 확인날짜=2026-09-26.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구, 《지포집(止浦集)》 〈상좌주김상국 양경 사전의발계(上座主金相國良鏡謝傳衣鉢啓)〉,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07A_004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6.
  11.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시습, 《매월당집(梅月堂集)》 〈독좌씨춘추(讀左氏春秋)〉,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9A_0070_150_0050, 확인날짜=2026-09-26.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66권, 중종 24년 10월 16일 무인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2410016_005, 확인날짜=2026-09-26.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77권, 선조 37년 8월 29일 정미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708029_007, 확인날짜=2026-09-26.
  1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견토지쟁”,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2%AC%ED%86%A0%EC%A7%80%EC%9F%81,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