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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百家爭鳴)은 많은 학자나 문화인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여 논쟁하고 토론하는 일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원래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저마다 학설을 펼치며 다투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1956년 중국 공산당이 내건 문화 정책 구호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여러 사람이나 집단이 한 가지 문제를 두고 제각기 의견을 내놓아 활발하게 토론하는 상황을 두고 쓴다. 학계의 논쟁뿐 아니라 정책 토론, 업계의 기술 경쟁, 인터넷의 여론처럼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모든 장면에 쓰인다. 긍정적으로는 자유로운 토론과 다양성을, 부정적으로는 의견만 무성하고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 자유로운 논쟁과 토론이라는 일반적인 뜻 외에, 「2」 1956년 중국 공산당이 내세운 구호라는 뜻을 따로 싣는다.[1] 중국어에서는 ‘百家争鸣(bǎi jiā zhēng míng)’, 일본어에서는 ‘百家争鳴(ひゃっかそうめい)’라고 하며 뜻은 같다. 표준 발음은 [백까쟁명]이다.[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百 백 일백 온갖, 수많은
家 가 집 학파, 일가를 이룬 학자(諸子百家의 家)
爭 쟁 다투다 다투다, 겨루다
鳴 명 울다 소리 내다, 주장을 펴다

제자백가와 ‘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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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는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사상가와 학파를 한데 이르는 ‘제자백가’에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는 제자(諸子)를 유가·도가·음양가·법가 등 열 갈래로 나누고, 이들이 “벌 떼처럼 한꺼번에 일어나 저마다 한쪽 끝을 끌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높였다(蠭出並作,各引一端,崇其所善)”고 평했다.[2]

그러나 네 글자 ‘百家爭鳴’은 옛 문헌에서 드물다. 청나라 때 문헌에서 “백여 년 뒤 백가가 다투어 울어 성인의 가르침이 거의 꺼질 뻔했다(百餘年後百家爭鳴,聖教幾熄)”(《행로성전(幸魯盛典)》)처럼 쓴 예가 보이는 정도이다.[3] 일본의 《세계대백과사전》은 청대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에 “제자가 다투어 울었다(諸子爭鳴)”, 《사고전서총목》 잡가류 해제에 “쇠한 주나라 말기에 백씨가 다투어 울었다(衰周之季,百氏爭鳴)”는 표현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런 말이 전국 시대 사상계의 활기를 나타내던 표현이었다고 설명한다.[4]

20세기 전반 중국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전국 시대 사상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리쭝우(李宗吾)는 《후흑총화(厚黑叢話)》에서 “전국 시대는 백가쟁명하여 학술이 가장 발달한 시대(戰國時候,百家爭鳴,是學術最發達時代)”라고 썼다.[5]

1956년의 ‘쌍백’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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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毛澤東)은 1956년 5월 최고국무회의에서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문화 정책의 방침으로 제기했고,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과학·문화 부문 회의의 강연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4] 두 구호를 합쳐 ‘쌍백(雙百)’ 방침이라고 한다. 백화제방은 온갖 꽃이 한꺼번에 피듯 문학·예술에서 여러 형식과 풍격을 허용한다는 뜻이고, 백가쟁명은 학술에서 여러 학파가 자유롭게 논쟁하도록 한다는 뜻이었다.

1957년 봄 공산당이 정풍 운동을 벌이며 당 밖의 비판을 청하자 지식인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공산당은 1957년 6월 8일 《인민일보》 사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這是為什麼?)〉를 시작으로 비판자들을 ‘우파’로 몰아 탄압하는 반우파 투쟁으로 돌아섰다.[6][4] 이 때문에 ‘쌍백’ 운동은 흔히 반우파 투쟁과 함께 언급된다. 《세계대백과사전》은 이후 ‘쌍백’이 현대화 정책을 위한 구호로 다시 제창되었다고 적는다.[4] 표준국어대사전도 문화 혁명 때 사라졌다가 1976년 이후 문예·학술 분야에서 다시 장려되었다고 풀이한다.[1]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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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百家爭鳴’이 확인되지 않는다.[7] 한국어에 널리 퍼진 것은 1956년 이후로 보인다.

옛 문헌 번역에는 번역어로 쓰인 예가 있다. 홍직필(洪直弼)의 편지 국역본은 청나라 학계를 두고 “사람들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하면서 시끄럽게 떠든다”, “학술이 무너져 분열되어 백가쟁명하는 때”라고 옮겼지만, 원문은 각각 ‘喙喙爭鳴(부리마다 다투어 운다)’, ‘百喙爭鳴(백 개의 부리가 다투어 운다)’이다.[8][9]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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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어: ‘百家争鳴’.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1956년 가메이 가쓰이치로(亀井勝一郎)의 글을 초출로 들어, 일본어에서도 1956년 중국의 구호를 계기로 쓰이게 된 말임을 보여 준다.[10]
  • 중국어: 대만 교육부 《성어전》 수정본 참고 자료는 “춘추전국 시대에 여러 사상 유파와 학설이 잇따라 나와 서로 논전하여 학술이 번영한 것을 후세에 ‘百家爭鳴’이라 불렀다”고 풀이한다.[11] 지금 중국어에서는 ‘百花齐放,百家争鸣’을 한데 묶어 쓰는 경우가 많다.
  • 차세대 암호 표준을 두고 학계와 업계의 백가쟁명이 이어지고 있다.
  • 생성형 인공지능 규제 방안을 두고 백가쟁명식 토론이 벌어졌지만, 정작 합의된 기준은 나오지 않았다.
  • 전국 시대는 제자백가가 백가쟁명을 벌이던 중국 사상의 황금기였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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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제방(百花齊放): 온갖 꽃이 한꺼번에 핌. 여러 형식의 예술이 함께 발전함의 비유.
  • 제자백가(諸子百家):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사상가와 학파.
  • 갑론을박(甲論乙駁):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남의 주장을 반박함.
  •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러 사람의 말을 막기 어려움.
  1.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가쟁명”,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A%B0%80%EC%9F%81%EB%AA%85, 확인날짜=2026-09-28.
  2.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30 〈예문지(藝文志)〉 제자략(諸子略).
  3. ↑ 공육기(孔毓圻) 등 편, 《행로성전(幸魯盛典)》 권14.
  4. ↑ 4.0 4.1 4.2 4.3 《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 “百家争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E%E5%AE%B6%E4%BA%89%E9%B3%B4, 확인날짜=2026-09-28.
  5. ↑ 리쭝우(李宗吾), 《후흑총화(厚黑叢話)》 권5.
  6. ↑ “1957年6月8日毛泽东亲自起草‘反右’文件”, 北京法院网·北京普法网, https://www.bj148.org/wh/lssdjt/202006/t20200608_1573858.html, 확인날짜=2026-09-28.
  7.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원문 검색 “百家爭鳴”,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8. ↑ 홍직필(洪直弼), 〈답이치서(答李稺舒)〉, 《매산집(梅山集)》 권15,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609A_0150_010_0330, 확인날짜=2026-09-28.
  9. ↑ 홍직필(洪直弼), 〈답강경이(答姜儆而)〉, 《매산집(梅山集)》 권1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609A_0190_010_0210, 확인날짜=2026-09-28.
  10.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百家争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E%E5%AE%B6%E4%BA%89%E9%B3%B4, 확인날짜=2026-09-28.
  11.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수정본 참고 자료, “百家爭鳴”,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087,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