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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衆口難防)은 뭇사람의 말을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오늘날에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떠들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습을 가리킬 때 주로 쓴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다”, “의견이 중구난방이다”처럼 쓰며, 회의나 토론이 정리되지 않고 제각각 말만 쏟아지는 상황을 꼬집는 말이다.

그러나 옛 한문에서 衆口難防은 글자 그대로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 어렵다’, 곧 ‘여론과 비판은 억누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조선 문헌에서는 주로 잘못을 저지른 관리를 두고 “소문이 파다하여 뭇사람의 입을 막을 수 없다”고 탄핵하는 문맥에서 썼다(아래 ‘뜻의 변화’). 이 뜻의 뿌리는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이 냇물을 막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한 주나라 소공(召公)의 간언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衆 중 무리, 많다 뭇사람
口 구 입 입, 말
難 난 어렵다 어렵다
防 방 막다 막다

‘衆’은 흔히 ‘眾’으로도 쓴다.

네 글자 형태가 곧바로 나오는 출전은 없지만, 뜻의 뿌리로 흔히 드는 것은 《국어(國語)》 〈주어 상(周語上)〉의 ‘소공간여왕미방(召公諫厲王弭謗)’ 이야기이다. 주나라 여왕(厲王)이 포학하여 백성이 비방하자, 왕은 위(衛)나라 무당을 시켜 비방하는 자를 감시하게 하고 고발되면 죽였다. 백성은 감히 말하지 못하고 길에서 눈짓으로만 뜻을 주고받았다. 왕이 기뻐하며 “내가 비방을 그치게 했다”고 하자 소공(《국어》에는 邵公)이 말했다.

是障之也。防民之口,甚於防川。川壅而潰,傷人必多,民亦如之。是故為川者決之使導,為民者宣之使言。

[2]

“이는 막아 놓은 것일 뿐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냇물이 막혔다가 터지면 반드시 많은 사람이 다치는데, 백성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냇물을 다스리는 사람은 물길을 터서 흐르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마음껏 말하게 합니다.”

왕은 듣지 않았고,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한 지 3년 만에 왕은 체(彘) 땅으로 쫓겨났다.[2] 《사기(史記)》 권4 〈주본기(周本紀)〉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렸는데, 여기서는 ‘냇물(川)’ 대신 ‘물(水)’을 써서 “防民之口,甚於防水”라고 했다. 《사기》는 이어 소공과 주공(周公) 두 재상이 정사를 맡은 것을 ‘공화(共和)’라 불렀고, 공화 14년에 여왕이 체에서 죽었다고 적었다.[3]

《춘추좌씨전》 선공(宣公) 2년 조에 실린 송나라 화원(華元)의 일화도 함께 소개되곤 한다. 정나라와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 온 화원이 성 쌓는 일을 감독하자, 일꾼들이 “눈은 툭 튀어나오고 배는 불룩한 것이, 갑옷을 버리고 돌아왔네”라고 노래하며 놀렸다. 화원이 수레에 함께 탄 이를 시켜 “소에게는 가죽이 있고 코뿔소도 아직 많으니, 갑옷 좀 버린들 어떠냐”고 받아치게 했으나, 일꾼들이 “가죽이야 있다 쳐도 붉은 옻은 어쩔 테냐”고 되받자 화원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4]

去之,夫其口眾我寡。

[4]

“가자. 저들은 입이 많고 나는 적다.”

나무위키 등에는 화원이 여왕의 고사를 잘 알고 있어서 사람들의 입을 막기 어렵다고 여겼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좌전》 원문에는 여왕의 고사에 관한 언급이 없고 화원은 말싸움에서 밀려 자리를 피했을 뿐이다.[4]

네 글자 형태

편집 원본 편집

衆口難防이라는 네 글자는 이 고전들보다 훨씬 뒤에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1644년 명나라 태자를 자처한 사람이 나타나 진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이른바 북태자 사건) “일을 대충 마무리하면 뭇사람의 입은 막기 어렵고, 믿을 만한 역사는 두려운 것이다(若草草完事,眾口難防。信史可畏也)”라고 한 상소가 《갑신조사소기(甲申朝事小紀)》·《열세편(閱世編)》 등 명청 교체기의 기록에 전하고,[5] 청나라 조익(趙翼)의 시에도 보인다.[6] 오늘날 중국어에서는 众口难防보다 ‘여러 사람의 입맛을 다 맞추기 어렵다’는 뜻의 중구난조(眾口難調)가 훨씬 널리 쓰인다.[7]

한국에서는 17세기 전반부터 용례가 보인다. 《승정원일기》에는 1640년 대간이 병자호란 때 적을 막지 못한 김자점(金自點)을 강화 유수로 다시 쓰려는 명을 거두라고 하면서 “새 명이 한번 내리자 저자가 놀라고 거리가 떠들썩하니, 사람의 마음은 속일 수 없고 뭇사람의 입은 막기 어렵습니다(人心難誣,衆口難防)”라고 아뢴 기록이 있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는 5건이 보이며, 가장 이른 것은 1702년 충주 유학 최세일(崔世一)이 과거 시험관의 친척들이 급제자를 독차지했다고 고발한 상소의 “나라 안에 말이 파다하여 뭇사람의 입을 막기 어렵게 되자(國言狼藉,衆口難防)”이다.[9][10] 정약용(丁若鏞)도 《목민심서》에서 서원(書員)이 몰래 재결(災結)을 빼돌리는 일은 본래 비밀스럽지만, 재결을 나누어 주는 날 모든 사람의 눈앞에 드러내면 “뭇사람의 입은 막기 어려워 끝내 관에 알려지게 된다(衆口難防。終有徹官之理)”며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11]

조선 문헌의 衆口難防은 모두 ‘여론은 억누를 수 없다’는 원래 뜻이다. 부정을 저지른 쪽이 아무리 덮으려 해도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경고로 쓰였고, ‘십목난엄(十目難掩)’, ‘공의난알(公議難遏)’처럼 비슷한 짜임의 말과 나란히 쓰는 일이 많았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떠든다’는 쪽으로 뜻이 옮겨 가, 무질서하게 제각각 떠드는 모습을 가리키게 되었다.[1]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말과 떠드는 소리에 관한 것이다.[1] “옷차림이 중구난방이다”, “지역마다 풍습이 중구난방이다”처럼 말과 상관없이 ‘제각각이다’, ‘통일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쓰는 것은 사전의 뜻에서 벗어난 쓰임이므로, 이런 자리에는 ‘제각각’, ‘각양각색’, ‘들쭉날쭉’ 등을 쓰는 편이 정확하다.

  • 회의에서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바람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 장애가 나자 여러 부서가 메신저에 중구난방으로 원인을 추측해 올려 혼란만 커졌다. 대응 창구를 하나로 정해 두어야 한다.
  • 이번 인사를 두고 소문이 파다하니, 옛말대로 중구난방이라 사람들 입을 막을 길이 없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중구삭금(衆口鑠金):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뜻으로, 여론의 힘이 큼을 이르는 말.[12] 《국어》 〈주어 하〉의 속담 “衆心成城,衆口鑠金”에서 나왔으며, 《성어전》은 여럿이 한목소리를 내면 그릇된 것도 옳은 것처럼 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13]
  • 방민지구 심어방천(防民之口,甚於防川):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위험하다.[14]
  • 중국어 중구난조(眾口難調): 여러 사람의 입맛을 다 맞추기 어려움. 여러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려움.
  • 갑론을박(甲論乙駁): 여러 사람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상대편의 주장을 반박함.
  • 횡설수설(橫說竪說):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임.
  • 지리멸렬(支離滅裂):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중구난방”,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4%91%EA%B5%AC%EB%82%9C%EB%B0%A9, 확인날짜=2026-09-28.
  2. ↑ 2.0 2.1 《국어(國語)》 권1 〈주어 상(周語上)〉.
  3.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4 〈주본기(周本紀)〉.
  4. ↑ 4.0 4.1 4.2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
  5. ↑ 《갑신조사소기(甲申朝事小紀)》; 엽몽주(葉夢珠), 《열세편(閱世編)》.
  6. ↑ 조익(趙翼), 《구북집(甌北集)》 권22.
  7.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眾口難調”,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642, 확인날짜=2026-09-28.
  8.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인조 18년 윤1월 3일, https://sjw.history.go.kr/id/SJW-A18011030-00500, 확인날짜=2026-09-28.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7권, 숙종 28년 8월 19일 무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2808019_001, 확인날짜=2026-09-28.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衆口難防”,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11. ↑ 정약용(丁若鏞), 《목민심서(牧民心書)》 호전(戶典) 〈세법(稅法)〉,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5집 정법집 권1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1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중구삭금”,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4%91%EA%B5%AC%EC%82%AD%EA%B8%88, 확인날짜=2026-09-28.
  13.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眾口鑠金”,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15, 확인날짜=2026-09-28.
  14.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防民之口,甚於防川”,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4625,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