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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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橫說竪說)은 조리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이는 것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표준국어대사전은 같은 뜻의 말로 ‘횡수설거(橫豎說去)’, ‘횡수설화’를 함께 든다.[1][2]
글자 그대로는 “가로로도 말하고 세로로도 말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어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게 되는대로 떠드는 것, 술에 취하거나 당황해서 두서없이 말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말로 쓴다.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선종(禪宗)에서 “이리저리 여러 방식으로 풀어 말한다”는 뜻으로 쓰였고,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지금도 그 뜻이 이어진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橫說豎說’를 “여러 방면으로 논하고 거듭 비유를 들어 풀이함”으로 풀고,[3] 일본어 사전 《디지털 대사천》도 ‘横説竪説(おうせつじゅせつ)’을 “자유자재로 늘어놓아 말함, 종횡으로 설명함”으로 풀이한다.[4] 한·중·일에서 같은 한자로 쓰면서 뜻이 거의 반대가 된 대표적인 성어이다.
이 말이 처음 보이는 것은 당나라 선승 황벽 희운(黃檗希運)의 설법을 실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이다. 희운은 행각하는 승려들이 남의 말만 주워 담는 것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夫出家人須知有從上來事分。且如四祖下牛頭融大師,橫說竪說,猶未知向上關棙子。有此眼腦,方辨得邪正宗黨。
“출가한 사람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본분의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사조(四祖) 문하의 우두 법융(牛頭法融) 대사는 가로로 말하고 세로로 말했으나, 아직 한 걸음 위로 나아가는 관문의 빗장을 알지 못하였다. 이런 안목이 있어야 비로소 바른 종지와 삿된 무리를 가려낼 수 있다.”[5] 여기서 횡설수설은 온갖 방식으로 막힘없이 법을 설하는 솜씨를 말한다. 다만 희운은 그것만으로는 아직 핵심에 이르지 못했다고 덧붙였으니, 처음부터 말재주와 깨달음을 구별하는 맥락에서 쓰인 셈이다.
《성어전》은 이 구절이 《경덕전등록》 권8에 있다고 적고 있으나, 황벽 희운의 장은 권9에 실려 있다.[5][3]
《경덕전등록》(1004)보다 앞선 오대의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도 이 말을 즐겨 썼다. 그는 한 제자가 “옛말에 ‘우두는 가로로 말하고 세로로 말했으나 향상의 관문 빗장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는데, 향상의 관문 빗장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동산과 서령이 푸르다”고 답했고, 설법에서는 “너희가 가로로 말하고 세로로 말하도록 놓아두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도 입을 막지 않는다 해도, 말하지 못하게 하면 또 어찌하겠느냐(放爾橫說竪說,從朝至暮無人塞爾口;不放爾說,又作麼生)”고 하였다.[6] 희운의 말이 이미 선림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고려 말 한국에서도 이 말은 칭찬이었다. 《고려사》 〈정몽주전〉에 따르면, 1367년 무렵 정몽주가 성균관에서 경서를 강의하자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풀이를 의심했으나 뒤에 호병문(胡炳文)의 《사서통(四書通)》을 얻어 보니 모두 들어맞았다. 이에 이색(李穡)은 그를 크게 칭찬했다.
夢周論理,橫說竪說,無非當理。
“정몽주는 이치를 논함에 가로로 말하든 세로로 말하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를 ‘동방 이학(理學)의 시조’로 추대했다.[9] 조선 후기의 신익황(申益愰)도 “횡설수설 네 글자는 이치를 말하기에 딱 좋다. 이치는 어디에나 그러하므로 가로로 말하지 않으면 그 큼을 볼 수 없고, 언제나 그러하므로 세로로 말하지 않으면 그 오램을 볼 수 없다”고 풀이했다.[10]
조선 중기 이후 조정의 공방 속에서 이 말은 점점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말”이라는 뜻으로 기울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橫說竪說’이 10건 나오는데,[11] 1650년의 한 상소가 장현광(張顯光)이 이기(理氣)를 “가로로 말하고 세로로 말해 천만 마디에 이르도록 끝까지 논했다(極論理氣,橫說竪說,無慮累千萬言)”고 한 것처럼 본래 뜻으로 쓴 예도 있지만,[12] 상대의 상소를 깎아내리는 말로 쓴 예가 더 많다. 1654년의 한 계사(啓辭)는 문제가 된 상소를 두고 “처음과 끝의 말이 크게 어긋나고, 이러쿵저러쿵한 것이 모두 괴상하고 망령되다(首尾措語,大相紕繆,橫說竪說,都是怪妄)”고 했고,[13] 1794년 정조는 서유화(徐有和)의 공초가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아 긴요하지도 않은 조목까지 끌어들였다(橫說竪說,拖及於沒緊不干之條件)”고 꾸짖었다.[14] 1881년 대사간 이원일(李源逸)은 상소에서 김평묵(金平默)의 편지를 “종이 가득 떠벌리며 가로세로 늘어놓아(滿紙張皇,橫竪說去) … 전혀 조리가 없다(全無倫脊)”고 공격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의 ‘횡수설거’가 바로 이 꼴이다.[15]
이렇게 보면 ‘조리 없이 떠든다’는 뜻은 근대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조선 조정에서 상대의 장황한 말을 비난하는 데 쓰이면서 차츰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무위키 등에는 이 말의 원래 뜻이 불경을 가로세로로 외울 만큼 통달했다는 ‘무불통지(無不通知)’였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선종 문헌에서의 뜻은 여러 방식으로 풀어 말한다는 것이며, 희운의 원문은 오히려 그렇게 말해도 핵심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는 맥락이다.[5]
- 중국어에서 ‘橫說豎說’는 지금도 여러 방식으로 되풀이해 설명한다는 뜻이다.[16] 한국어의 횡설수설에 해당하는 말로는 ‘語無倫次(말에 차례가 없음)’, ‘胡說八道(터무니없는 소리를 늘어놓음)’를 쓴다. 《성어전》은 ‘語無倫次’의 출전으로 소식(蘇軾)의 《동파지림(東坡志林)》 권2를 든다.[17]
- 일본어의 ‘横説竪説’도 자유자재로 설명한다는 좋은 뜻이다.[4] 나무위키 등에는 일본어의 횡설수설이 한국어와 비슷한 뜻이라는 설명이 있으나, 일본어 사전의 풀이는 이와 다르다. 두서없는 말을 가리킬 때 일본어에서는 흔히 ‘支離滅裂(しりめつれつ)な話’라고 한다.[18]
- 장애 원인을 묻는 질문에 담당자는 횡설수설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 술에 취한 그는 밤새 횡설수설했다.
- 발표 자료 없이 무대에 오른 연사는 요점을 놓치고 횡설수설하다가 시간을 다 써 버렸다.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횡설수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A%A1%EC%84%A4%EC%88%98%EC%84%A4,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횡수설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A%A1%EC%88%98%EC%84%A4%EA%B1%B0,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橫說豎說”(참고어),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134, 확인날짜=2026-09-28.
- ↑ 4.0 4.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横説竪説”,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8%AA%E8%AA%AC%E7%AB%AA%E8%AA%AC, 확인날짜=2026-09-28.
- ↑ 5.0 5.1 5.2 도원(道原),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홍주 황벽산 희운 선사(洪州黃檗山希運禪師)〉, CBETA T2076, https://cbetaonline.dila.edu.tw/T2076_009, 확인날짜=2026-09-28. 대정신수대장경 입력본에는 ‘橫說堅說’로 되어 있으나, 《운문광록》 등 이 구절을 인용한 문헌은 ‘橫說竪說’로 적는다.
- ↑ 수견(守堅) 엮음,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真禪師廣錄)》 권상, CBETA T1988, https://cbetaonline.dila.edu.tw/T1988_001, 확인날짜=2026-09-28.
- ↑ 여정덕(黎靖德) 엮음,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14.
- ↑ 왕수인(王守仁), 《전습록(傳習錄)》.
- ↑ 《고려사(高麗史)》 권117 〈열전(列傳) 30〉 정몽주(鄭夢周).
- ↑ 신익황(申益愰), 〈이(理)〉, 《극재집(克齋集)》 권8,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469A_0090_010_002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69A_0090_010_0020,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橫說竪說”,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4권, 효종 1년 5월 1일 계축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qa_10105001_004,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13권, 효종 5년 7월 4일 신묘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qa_10507004_002,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40권, 정조 18년 8월 26일 경진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1808026_004,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18권, 고종 18년 윤7월 22일 임자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1807122_003, 확인날짜=2026-09-28.
- ↑ 《한전(漢典)》, “横说竖说”, https://www.zdic.net/hans/%E6%A8%AA%E8%AF%B4%E7%AB%96%E8%AF%B4, 확인날짜=2026-09-28.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語無倫次”,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84, 확인날짜=2026-09-28.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支離滅裂”,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4%AF%E9%9B%A2%E6%BB%85%E8%A3%82,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2권, 영조 즉위년 12월 18일 정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0012018_002, 확인날짜=2026-09-28.
- ↑ 참고: 신승렬, “정말로 횡설수설하는 <동아일보> ‘횡설수설’”, 오마이뉴스, 2003-09-25,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45107,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리멸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7%80%EB%A6%AC%EB%A9%B8%EB%A0%AC,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