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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절현(伯牙絕絃)은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춘추 시대의 백아(伯牙)가 자기 거문고 소리를 알아듣던 벗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데서 나왔다.[1]

벗을 잃은 깊은 슬픔, 또는 나를 알아주던 사람이 없어져 더는 재주를 펼칠 뜻이 없어진 처지를 나타낼 때 쓴다. 같은 이야기에서 마음이 통하는 벗을 뜻하는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이 말을 ‘지음을 만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로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가장 마음이 통하는 우정을 ‘断琴の交わり(단금의 사귐)’라고 한다.[3]

《열자》와 《여씨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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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가 산을 생각하며 타면 종자기가 “우뚝하기가 태산 같구나”, 물을 생각하며 타면 “넘실거리기가 강물 같구나” 했다는 이야기는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나온다(자세한 내용은 지음 문서 참고).[4] 줄을 끊은 이야기는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4 〈효행람(孝行覽)·본미(本味)〉에 처음 보인다.[5]

鍾子期死,伯牙破琴絕弦,終身不復鼓琴,以為世無足復為鼓琴者。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 평생 다시 타지 않았다. 세상에 다시 거문고를 타 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문고로 옮긴 ‘琴’은 한국의 거문고가 아니라 중국의 칠현금이다.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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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牙絕絃’ 네 글자는 한나라 문헌에 이미 보인다. 《회남자(淮南子)》 〈수무훈(修務訓)〉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권16 〈설총(說叢)〉에는 각각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줄을 끊고 거문고를 부수었으니, 세상에 알아줄 이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鍾子期死而伯牙絕絃破琴,知世莫賞也)”, “……세상에 타 줄 만한 이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知世莫可為鼓也)”라는 구절이 있다.[6][7] 양웅(揚雄)은 〈해난(解難)〉에서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줄을 끊고 거문고를 부수어 뭇사람을 위해 타려 하지 않았다”고 썼고, 후한의 진원(陳元)은 《좌전》을 학관에 세우자는 상소에서 “지극한 음은 뭇사람의 귀에 맞지 않으므로 백아가 줄을 끊었다(至音不合眾聽,故伯牙絕絃)”고 했다.[8][9]

《성어전》이 용례로 드는 것은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비는 전염병으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여러 문인을 한꺼번에 잃은 뒤 “옛날 백아는 종자기 때문에 줄을 끊었고, 공자는 자로 때문에 젓갈을 엎었으니, 지음을 만나기 어려움을 아파하고 제자가 따라오지 못함을 슬퍼한 것이다(昔伯牙絶絃於鍾期,仲尼覆醢于子路,痛知音之難遇,傷門人之莫逮也)”라고 썼다.[2][10] 이 편지는 《문선(文選)》 권42에 〈여오질서(與吳質書)〉로 실려 있다.

당나라 이한(李瀚)이 아이들의 교재로 엮은 《몽구(蒙求)》에도 “향수는 피리 소리를 듣고, 백아는 줄을 끊었다(向秀聞笛,伯牙絕弦)”는 대구가 있다.[11]

명나라 소설의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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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등에 소개된 줄거리, 곧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고 이듬해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백아가 찾아와 보니 종자기는 병으로 이미 죽었고, 백아가 무덤 앞에서 마지막 곡을 탄 뒤 거문고를 버렸다는 이야기는 《열자》나 《여씨춘추》에 없는 내용이다. 이것은 명나라 풍몽룡(馮夢龍)의 소설집 《경세통언(警世通言)》(1624) 권1 〈유백아솔금사지음(俞伯牙摔琴謝知音)〉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에서 백아는 진(晉)나라 상대부 ‘유백아(俞伯牙)’로, 종자기는 나무꾼으로 나오며, 둘은 한양(漢陽) 강가에서 만나 의형제를 맺고 이듬해 중추절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 이듬해 백아는 종자기의 무덤 앞에서 거문고를 탄 뒤 “요금을 부수니 봉황 꼬리 차갑구나, 자기가 없으니 누구를 위해 타리오(摔碎瑤琴鳳尾寒,子期不在對誰彈)”라며 거문고를 내던져 부순다.[1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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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인들은 벗이나 스승, 가까운 친척을 잃었을 때 제문과 편지에서 이 고사를 즐겨 썼다. 김창흡(金昌翕)은 “옛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줄을 끊고 거문고를 부수어 평생 타지 않았다(昔鍾子期死。伯牙絶絃破琴。終身不鼓)”고 쓰며 그 괴로운 마음을 슬퍼했고,[13] 이하곤(李夏坤)은 벗 군산(君山)의 죽음을 듣고 한동안 시를 짓지 못하다가 “이것이 바로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줄을 끊은 뜻(此正子期死而伯牙絶絃之意也)”이라는 제목 머리글을 붙여 시 세 수를 남겼다.[14] 한국 문헌에서는 ‘絕’의 이체자 ‘絶’로 쓴 ‘伯牙絶絃’이 흔하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伯 백 맏, 우두머리 사람 이름 ‘백아’의 첫 글자
牙 아 어금니 사람 이름 ‘백아’의 둘째 글자
絕 절 끊다 줄을 끊다
絃 현 악기의 줄 거문고 줄
  • 20년 동안 함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이끌던 동료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백아절현의 심정으로 저장소를 보관 처리했다.
  • 평생의 벗을 잃은 노시인은 백아절현하듯 붓을 꺾었다.
  • 힙합 듀오 리쌍은 2009년 1월 정규 5집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냈다. 타이틀곡 〈챔피언〉은 2008년 1월 세상을 떠난 권투 선수 최요삼을 추모하는 곡이다.[15]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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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
  • 고산유수(高山流水): 높은 산과 흐르는 물. 뛰어난 음악, 또는 지음만이 알아듣는 음악.
  • 파금절현(破琴絕絃):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음. 《여씨춘추》·《회남자》의 표현.
  • 운근성풍(運斤成風): 도끼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킴. 장석(匠石)이 짝을 이루던 영(郢) 사람이 죽자 도끼질을 그만두었다는 《장자》 〈서무귀〉의 이야기로, 양웅·조선 문인들이 백아의 고사와 나란히 썼다.
  • 관포지교(管鮑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아절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95%84%EC%A0%88%ED%98%84,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伯牙絕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6189, 확인날짜=2026-09-27.
  3.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断琴の交わり”,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6%AD%E7%90%B4%E3%81%AE%E4%BA%A4%E3%82%8F%E3%82%8A, 확인날짜=2026-09-27.
  4. ↑ 《열자(列子)》 〈탕문(湯問)〉.
  5. ↑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4 〈효행람(孝行覽)·본미(本味)〉.
  6. ↑ 《회남자(淮南子)》 〈수무훈(修務訓)〉.
  7. ↑ 유향(劉向), 《설원(說苑)》 권16 〈설총(說叢)〉.
  8. ↑ 양웅(揚雄), 〈해난(解難)〉.
  9. ↑ 《후한서(後漢書)》 〈진원전(陳元傳)〉.
  10.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21 〈위서(魏書)·왕찬전(王粲傳)〉.
  11. ↑ 이한(李瀚), 《몽구(蒙求)》.
  12. ↑ 풍몽룡(馮夢龍), 《경세통언(警世通言)》 권1 〈유백아솔금사지음(俞伯牙摔琴謝知音)〉.
  13.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창흡, 《삼연집(三淵集)》 〈증유군사지청풍서(贈兪君四之淸風序)〉,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39A_0590_010_0090, 확인날짜=2026-09-27.
  14.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하곤, 《두타초(頭陀草)》 〈자문군산지사(自聞君山之死)……〉,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79A_0010_020_0060, 확인날짜=2026-09-27.
  15. ↑ “리쌍 ‘챔피언’”, 충청타임즈, 2009-01-08, 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134381,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