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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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百尺竿頭)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당나라 선승 장사 경잠(長沙景岑)의 게송 “백 자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가라(百尺竿頭須進步)”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어에서는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백척간두의 위기”처럼 더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없는 아슬아슬한 처지를 말할 때 주로 쓴다. 줄여서 ‘간두(竿頭)’라고도 한다.[1]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뜻의 무게가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대개 ‘百尺竿头,更进一步(백 자 장대 끝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간다)’로 이어 말하며,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어도 계속 힘써 더 나아가라는 격려의 말로 쓴다.[2] 일본어의 ‘百尺竿頭(ひゃくしゃくかんとう)’도 도달할 수 있는 극점, 향상의 극치를 비유하며, ‘百尺竿頭一歩を進める’ 꼴로 쓴다.[3] 한국어처럼 ‘위기’의 뜻으로만 쓰는 것은 한국어에서 두드러진 쓰임이다.
당나라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제자인 장사 경잠(長沙景岑, 호 초현대사招賢大師)은 시자를 보내 동문인 회(會) 화상에게 “남전 스님을 뵌 뒤에는 어떠하냐”고 묻게 했다. 회 화상이 잠자코 있다가 “뵙기 전과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답하자, 경잠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952년에 엮인 《조당집(祖堂集)》 권17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百尺竿頭不動人,雖然得入未為真。
百尺竿頭須進步,十方世界是全身。
“백 자 장대 끝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비록 들어가기는 했어도 아직 참된 것이 아니다. 백 자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시방세계가 온몸이 된다.”
깨달음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더라도 거기 머물러 안주하지 말고, 장대 끝에서 허공으로 발을 내딛듯 그 경지마저 놓아 버려야 참된 자유에 이른다는 뜻이다. 같은 대목에서 삼성(三聖) 화상이 “백 자 장대 끝은 묻지 않겠습니다. 백 자 장대 끝에서 어떻게 나아갑니까?” 하고 묻자, 경잠은 “낭주의 산, 예주의 물(朗州山,澧州水)”이라고 답했다.[4]
1004년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0 장사 경잠 조에도 같은 게송이 실렸는데, 대정신수대장경본에는 ‘百尺’이 아니라 ‘百丈’으로 되어 있다.[5] 뒤에 남송의 《무문관(無門關)》(1228)이 제46칙 ‘간두진보(竿頭進步)’로 이 게송을 공안으로 삼으면서 ‘百尺竿頭’ 형태가 널리 퍼졌다.[6]
만당의 시인 오융(吳融)의 칠언율시 〈상인(商人)〉은 “百尺竿頭五兩斜,此生何處不爲家(백 자 돛대 끝에 풍향계 비스듬하니, 이 삶에 어디인들 집 아니랴)”로 시작한다.[7] 여기서 ‘五兩’은 닭 깃털을 매달아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기구로, 한나라 허신(許愼)은 “초나라 사람들은 이를 五兩이라 부른다”고 했다.[8] 시의 ‘竿’은 배의 돛대이고, ‘百尺竿頭’는 떠도는 상인의 배 돛대 꼭대기를 그린 말이다.
나무위키 등에는 백척간두가 오융의 〈상인〉에서 유래했다며 당나라 장대타기의 장대를 설명하는 경우가 있으나, 시에서 읊은 것은 풍향계를 단 배의 돛대이다. 성어로서의 뜻, 곧 ‘아주 높은 경지’나 ‘더 나아갈 데 없는 끝’은 경잠의 게송에서 나왔다.
송나라 유학자들은 이 게송을 학문의 진보에 빗대어 썼다. 사량좌(謝良佐)는 활쏘기를 예로 들어 “모름지기 백 자 장대 끝에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須是百尺竿頭更進始得)”고 했고,[9] 주희(朱熹)도 〈답공중지서(答鞏仲至書)〉에서 “백 자 장대 끝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는 기세(百尺竿頭更進一步之勢)”를 말했다. 《성어전》은 이 주희의 편지를 ‘百尺竿頭,更進一步’의 용례로 든다.[2][10]
한편 송나라 때에도 높은 자리의 위태로움을 가리키는 쓰임이 있었다. 재상 왕흠약(王欽若)이 물러나 항주로 갈 때 진종역(陳從易)은 “천 겹 물결 속을 평안히 지나, 백 자 장대 끝에서 무사히 내려오셨네(千重浪裏平安過,百尺竿頭穩下來)”라는 송별시를 지어 주었다.[11]
| 쓰임 | 뜻 | 예 |
|---|---|---|
| 선종 게송 | 깨달음의 높은 경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함 | 경잠 “百尺竿頭須進步” |
| 중국어·일본어 | 이미 이른 높은 경지, 극점. 더 노력하라는 격려 | 百尺竿頭更進一步 |
| 한국어 | 몹시 위태로운 지경 | “백척간두에 선 나라” |
조선 문헌에서도 두 뜻이 함께 쓰였다. 이황(李滉)은 기대승(奇大升)에게 보낸 편지에서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른 곳을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는 곳(百尺竿頭更進一步處)”이라 했고,[12] 성혼(成渾)도 벗에게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권했다.[13]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원문의 百尺竿頭는 대부분 나라와 백성의 위태로움을 말한다.[14]
- 1621년 장령 박광선(朴光先)은 사직을 청하며 “오늘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이 이미 백척간두에 이르렀다(今日之艱危,已到百尺竿頭)”고 했다.[15]
- 1672년 현종은 큰 흉년을 당해 내린 교서에서 “나랏일이 이미 백척간두에 이르러, 끝없는 내를 건너고 거센 물결 속 새는 배라 해도 그 위태로움을 다 비유하지 못한다(國事已至百尺竿頭,涉川無涯,驚濤漏舟,未足以喩其危)”고 했다.[16]
지금 한국어에서 굳은 뜻은 이 ‘위기’ 쪽이다.
- 랜섬웨어로 백업 서버까지 암호화되자 회사는 백척간두에 선 처지가 되었다.
-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나라 경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다.
- 이미 정상에 오른 선수에게 감독은 “백척간두 진일보”를 주문했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척간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B2%99%EA%B0%84%EB%91%90,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百尺竿頭”(수정본 참고 자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391,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百尺竿頭”,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E%E5%B0%BA%E7%AB%BF%E9%A0%AD-612681, 확인날짜=2026-09-28.
- ↑ 4.0 4.1 정(靜)·균(筠) 편, 《조당집(祖堂集)》 권17 장사(長沙).
- ↑ 도원(道原),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0 호남장사경잠(湖南長沙景岑), CBETA T51n2076.
- ↑ 혜개(慧開), 《무문관(無門關)》 제46칙 간두진보(竿頭進步).
- ↑ 오융(吳融), 〈상인(商人)〉, 《전당시(全唐詩)》 권684.
-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771 주부(舟部) 인용 허신(許愼) 주.
- ↑ 사량좌(謝良佐), 《상채어록(上蔡語錄)》 권2.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百尺竿頭,更進一步”(수정본 참고 자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520, 확인날짜=2026-09-28.
- ↑ 조영치(趙令畤), 《후청록(侯鯖錄)》 권4.
- ↑ 이황(李滉), 〈답기명언 논사단칠정 제2서(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퇴계집(退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44A_0160_010_0050, 확인날짜=2026-09-28.
- ↑ 성혼(成渾), 〈이몽응 제신에게 보내다〉, 《우계집(牛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198A_0090_010_0050,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百尺竿頭”,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58권, 광해 13년 9월 15일 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a_11309015_002,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 3월 6일 임자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ra_11303006_001, 확인날짜=2026-09-28.
- ↑ 이황(李滉), 〈차응림 김주(次應霖 金澍)〉, 《퇴계집(退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44A_0500_010_0470,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