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탄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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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탄지간(氷炭之間)은 얼음과 숯의 사이라는 뜻으로, 서로 맞지 않아 화합하지 못하는 관계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얼음은 숯불을 만나면 녹고, 숯불은 얼음을 만나면 꺼진다. 이처럼 성질이 정반대여서 한자리에 둘 수 없는 두 사람이나 두 세력의 사이를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으며, 같은 비유를 담은 ‘빙탄(氷炭)’과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 올라 있다.[2] 뜻은 견원지간(犬猿之間)과 비슷하지만, 견원지간이 서로 미워하며 다투는 사이를 말한다면 빙탄지간은 본바탕부터 달라 어울릴 수 없다는 쪽에 무게가 있다.
중국어에서는 이 네 글자 형태가 드물고, 보통 ‘冰炭不相容’, ‘勢如冰炭’처럼 말한다. 일본어에서는 ‘氷炭相容れず(ひょうたんあいいれず)’라고 한다.[3]
얼음과 숯을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의 비유로 쓴 이른 예는 《한비자(韓非子)》 〈현학(顯學)〉의 “얼음과 숯은 한 그릇에 오래 두지 못한다(冰炭不同器而久)”는 구절이다.[4] 한나라 동방삭(東方朔)이 굴원을 기려 지은 〈칠간(七諫)〉의 〈자비(自悲)〉에도 다음 구절이 있다.[5][3]
冰炭不可以相並兮,吾固知乎命之不長。
“얼음과 숯은 함께 나란히 할 수 없으니, 나는 본디 내 목숨이 길지 못할 줄 알았노라.” 후한 왕일(王逸)은 이 구절에 “얼음은 숯을 보면 녹고 숯은 얼음을 얻으면 꺼지니, 충성스러운 신하와 아첨하는 신하가 한곳에 있을 수 없어 서로 해치는 것을 비유했다(言冰見炭則消,炭得冰則滅,以喻忠佞不可並處,則相傷害)”고 주를 달았다.[6] 빙탄지간이 충신과 간신,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의 사이를 가리키는 데 자주 쓰인 것도 이 해석과 이어진다. 이 비유의 자세한 갈래는 빙탄불상용 문서에서 다룬다.
나무위키 등에는 빙탄지간이 〈칠간〉의 이 구절에서 나왔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얼음과 숯’의 비유가 나오는 출처일 뿐 ‘氷炭之間’이라는 네 글자가 들어 있지는 않다.
‘氷炭之間’이라는 형태는 중국 문헌에서는 드물다. 명나라 서삼중(徐三重)의 《채근록(採芹錄)》에 바른 신하가 정치를 바로잡으려다 미움과 원한을 사는 처지를 두고 “홀로 풍파와 빙탄의 사이에 서 있다(孑立風波氷炭之間)”는 표현이 보이는 정도이다.[7]
이 형태는 조선 후기 문헌에서 훨씬 자주 보이며, 대개 서로 용납하지 않는 붕당 사이를 가리켰다.
- 17세기 이지렴(李之濂, 1628~1691)은 민대수(閔大受)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을 삼가라는 충고는 “당시 사람들의 빙탄 같은 사이(時輩氷炭之間)”에나 해당할 일이지 같은 무리의 선비끼리 꺼릴 일은 아니라고 했다.[8]
- 1728년(영조 4) 영조는 신하들과 선조 때의 대북·소북을 이야기하며 “그때는 비록 빙탄의 사이 같았지만(雖如冰炭之間) 등용한 일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9]
- 1793년(정조 17) 한성부 우윤 조진관(趙鎭寬)은 아버지 조엄(趙曮)의 억울함을 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며 “의리를 빙탄의 사이에서 가려 주셨다(判義理於氷炭之間)”고 상소했다.[10]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氷炭之間’은 이 한 건이 검색된다.
- 두 부서가 빙탄지간이 되면, 장애가 났을 때 서로 상대의 로그부터 의심하느라 원인 분석이 늦어진다.
- 성격도 생각도 정반대인 두 사람은 오랫동안 빙탄지간으로 지냈다.
- 조선 후기 문인들은 서로 다른 당파의 사이를 흔히 빙탄지간에 빗대었다.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빙탄지간”,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B%B9%99%ED%83%84%EC%A7%80%EA%B0%84, 확인날짜=2026-10-01.
- ↑ 2.0 2.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빙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9%99%ED%83%84, 확인날짜=2026-10-01.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氷炭相容れ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B0%B7%E7%82%AD%E7%9B%B8%E5%AE%B9%E3%82%8C%E3%81%9A, 확인날짜=2026-10-01.
- ↑ 《한비자(韓非子)》 〈현학(顯學)〉.
- ↑ 동방삭(東方朔), 〈칠간(七諫)·자비(自悲)〉, 《초사(楚辭)》.
- ↑ 왕일(王逸) 주, 홍흥조(洪興祖) 보주, 《초사보주(楚辭補註)》 권13 〈칠간〉.
- ↑ 서삼중(徐三重), 《채근록(採芹錄)》.
- ↑ 이지렴(李之濂), 〈여민대수(與閔大受)〉, 《치암집(恥菴集)》 권5,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899A_0060_010_0040,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4년 8월 28일 병오, https://sjw.history.go.kr/id/SJW-F04080280-03800,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37권, 정조 17년 4월 16일 무인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1704016_006,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