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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대천(不俱戴天)은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같이 살 수 없을 만큼 큰 원한을 가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흔히 ‘불구대천의 원수’,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의 꼴로 쓴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의 “父之讎,弗與共戴天”에서 나왔다.

‘戴天’은 하늘을 머리에 인다는 말로,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으니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옛 복수의 예법에서 나와, 지금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깊은 원한이나 그런 원수를 가리킨다.

‘불공대천’과 ‘불구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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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은 ‘불공대천(不共戴天)’을 기본 표제어로 삼고, 불구대천을 그와 같은 말로 풀이한다. 불공대천의 비슷한 말로는 ‘대천지수’, ‘대천지원수’도 올라 있다.[2]

옛 한문에서 쓰인 형태는 ‘함께 공(共)’을 쓴 不共戴天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不共戴天을 표제어로 삼는다.[3]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不共戴天은 237건 보이지만 ‘함께 구(俱)’를 쓴 不俱戴天은 한 건도 없고,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도 不共戴天 199건, 不俱戴天 0건이다.[4][5] 반면 일본어에서는 ‘不倶戴天(ふぐたいてん)’이 표준 형태로, “不倶戴天の敵(불구대천의 적)”처럼 쓴다.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말이 《예기》 구절을 “倶に天を戴かず(함께 하늘을 이지 않는다)”로 훈독한 데서 나왔다고 설명하고, 가부키 대본(1871)을 첫 용례로 든다.[6] 오늘날 한국어에서 흔히 쓰는 불구대천도 이 일본어 형태와 글자가 같아, 근대 이후에 퍼진 형태로 보인다. 중국어에서는 지금도 ‘不共戴天(bù gòng dài tiān)’이라고 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不 불 아니다 ~하지 않다
俱 구 함께, 모두 함께
戴 대 이다, 받들다 머리 위에 이다
天 천 하늘 하늘, 이 세상

《예기》 〈곡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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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 〈곡례 상〉은 원수의 친소에 따라 복수의 태도를 달리 정했다.[7]

父之讎,弗與共戴天。兄弟之讎,不反兵。交遊之讎,不同國。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지 않는다. 형제의 원수는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돌아가지 않는다. 벗의 원수와는 같은 나라에 살지 않는다.”[7] 《성어전》은 ‘不反兵’을 원수를 만나면 집에 돌아가 무기를 가져올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싸운다는 뜻으로 풀이한다.[3] 아버지의 원수는 반드시 죽여야 하고, 형제의 원수는 늘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만나는 대로 쳐야 하며, 벗의 원수는 적어도 같은 나라에 살지 않을 만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는 같은 생각이 문답으로 실려 있다. 자하(子夏)가 “부모의 원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거적 위에서 자고 방패를 베며, 벼슬하지 않고, 그와 천하를 함께하지 않는다. 저자나 조정에서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돌아가지 않고 싸운다(寢苫枕干,不仕,弗與共天下也;遇諸市朝,不反兵而鬭)”고 답했다.[8] 《성어전》은 이 말이 본래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유가의 예법이었다가 뒤에 깊은 원한을 비유하는 성어가 되었다고 설명한다.[3]

네 글자로 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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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전》은 네 글자 不共戴天의 용례로 《신당서(新唐書)》 〈허원전(許遠傳)〉, 《주자어류(朱子語類)》, 《원사(元史)》,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58회 등을 든다. 《삼국지연의》에서 마초(馬超)는 아버지와 아우를 죽인 조조를 향해 “내 아버지와 아우를 해쳤으니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할 원수(不共戴天之讎)”라고 외친다.[3]

《예기》의 불구대천은 개인의 복수, 특히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 자식의 의무를 말한 것이었다. 조선 초의 실록에서는 이것이 임금과 나라에 대한 신하의 의리로 넓혀졌다. 실록 원문에서 가장 이른 1395년 간관의 상소는 고려 왕실의 후손 왕우(王瑀) 부자가 반역을 꾀하려 한다며 “신하 된 자가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할 원수(臣子所不共戴天之讎也)”라고 했고,[9] 태종 때 민무구·민무질 형제를 탄핵한 상소들도 되풀이하여 “역적은 신하가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할 원수”라고 했다.[10] 역적은 온 나라 신하 모두의 원수라는 논리이다.

  • 두 회사는 특허 소송을 십 년 넘게 이어 오며 불구대천의 경쟁자가 되었다.
  • 한때 동료였던 두 해커 집단은 내부 정보 유출 사건 이후 불구대천지원수가 되었다.
  • 옛사람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불구대천의 원수라 하여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여겼다.
  • 권근(權近)의 〈우인효자군만전(優人孝子君萬傳)〉은 1389년 진주(晉州)의 광대 군자(君子)가 밤에 범에게 물려 가자, 그 아들 군만(君萬)이 활과 화살을 들고 산에 들어가 화살 한 대로 범을 쏘아 죽이고 배를 갈라 아버지의 유해를 거두어 장사 지냈다는 이야기이다. 권근은 같은 무렵 고성(固城)에서 아들 일곱이나 있으면서 아버지를 범에게 잃고도 원수를 갚지 못한 집안과 견주며 일곱 아들의 잘못을 열 가지로 따졌는데, 그 여덟째로 “부모의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지 않는다(父母之讎,不共戴天)”는 도리를 들었다.[11]
  •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에 따르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속 바쇼 잡기(続芭蕉雑記)〉에서 이 말을 ‘不具退転’이라고 적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으로 썼다. 사전은 이를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의 ‘불퇴전(不退転)’과 헷갈린 것으로 본다.[6]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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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공대천(不共戴天): 불구대천과 같은 말. 표준국어대사전의 기본 표제어이다.[2]
  • 대천지수, 대천지원수: 불공대천과 비슷한 말.[2]
  •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히게 한 원수. ‘하늘을 함께 인다’는 불구대천과는 말의 짜임이 다르다.[12]
  • 세불양립(勢不兩立): 형세가 둘이 함께 설 수 없음. 《성어전》은 불공대천이 사람 사이의 원한에, 세불양립이 적대하는 양쪽에 쓰인다고 구별한다.[3]
  •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수화불용(水火不容): 서로 용납하지 못함.[3]
  • 반대 의미: 불념구악(不念舊惡): 지난날의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음. 언귀어호(言歸於好): 다시 사이좋게 지냄.[3]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불구대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8%EA%B5%AC%EB%8C%80%EC%B2%9C, 확인날짜=2026-09-28.
  2. ↑ 2.0 2.1 2.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불공대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8%EA%B3%B5%EB%8C%80%EC%B2%9C,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3.2 3.3 3.4 3.5 3.6 3.7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不共戴天”,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1, 확인날짜=2026-09-28.
  4.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不共戴天”·“不俱戴天”,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5.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문집총간 원문 검색 “不共戴天”·“不俱戴天”,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6. ↑ 6.0 6.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不倶戴天”,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D%E5%80%B6%E6%88%B4%E5%A4%A9, 확인날짜=2026-09-28.
  7. ↑ 7.0 7.1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
  8. ↑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4월 26일 기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404026_001, 확인날짜=2026-09-28.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4권, 태종 7년 11월 2일 임자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711002_003, 확인날짜=2026-09-28.
  11. ↑ 권근(權近), 〈우인효자군만전(優人孝子君萬傳)〉, 《양촌집(陽村集)》 권2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036A_0240_020_0020, 확인날짜=2026-09-28.
  1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철천지원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A0%EC%B2%9C%EC%A7%80%EC%9B%90%EC%88%98,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