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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가왈부(曰可曰否)는 어떤 일에 대하여 옳거니 옳지 아니하거니 하고 말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같은 뜻으로 ‘왈가불가(曰可不可)’라고도 하고, 고유어로는 ‘가타부타’와 뜻이 비슷하다.[1][2]

어떤 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남의 집안일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다”, “이미 결정된 일을 두고 더 왈가왈부하지 말자”처럼, 끼어들어 따질 자격이 없거나 따져 봐야 소용없다는 문맥에서 부정문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조정에서 여러 신하가 저마다 옳다, 그르다 의견을 내어 올바른 결론에 이르는 공론(公論)의 과정을 가리키는 좋은 뜻으로 자주 쓰였다(아래 뜻의 변화).

중국 문헌에서는 드물게 보이고 조선 문헌에 훨씬 많이 보이는 말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과 일본어 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曰 왈 가로되, 말하다 ~라고 말하다
可 가 옳다, 좋다 옳다
曰 왈 가로되, 말하다 ~라고 말하다
否 부 아니다 옳지 않다

‘옳다고(可) 말하고(曰), 옳지 않다고(否) 말한다(曰)’는 짜임이다. ‘曰’은 ‘日(날 일)’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가로획이 짧고 넓적한 다른 글자이다. ‘否’는 여기서 ‘부’로 읽는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며, ‘가(可)’와 ‘부(否)’를 말한다는 뜻을 그대로 네 글자로 만든 말이다.

배경: 가부를 아뢰는 신하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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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뜻에 대해 신하가 옳고 그름을 아뢰어야 한다는 생각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 20년의 안자(晏子) 말에 뚜렷하다. 제나라 경공이 “양구거(梁丘據)만이 나와 조화를 이룬다”고 하자, 안자는 그것은 조화(和)가 아니라 같음(同)일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君所謂可而有否焉,臣獻其否以成其可;君所謂否而有可焉,臣獻其可以去其否。是以政平而不干,民無爭心。

[4]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에 옳지 않은 점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지 않은 점을 아뢰어 옳은 것을 이루고, 임금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에 옳은 점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은 점을 아뢰어 옳지 않은 것을 없앤다. 그래서 정치가 고르고 어긋나지 않으며 백성에게 다투는 마음이 없다.” 뒤에 신하의 이런 도리를 ‘헌가체부(獻可替否)’라 일렀고, 《후한서》 권74의 이현(李賢) 주는 이 말의 근거로 안자의 이 대목을 인용한다.[5]

중국 문헌의 드문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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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可曰否’라는 네 글자는 북송 말~남송 초의 글에 드물게 보인다. 갈승중(葛勝仲)은 어느 추밀사의 묘지명에서 그가 조정에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며 임금의 모자람을 채우고 틈을 메웠다(曰可曰否,獻替彌縫)”고 기렸다.[6] 이소기(李昭玘)는 조보지(晁補之)가 이공린(李公麟)의 〈연사도(蓮社圖)〉를 바탕으로 옛 명필들을 모아 화공 맹중녕(孟仲寜)에게 새로 그리게 하면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일일이 지시한 일을 “曰可曰否,如左如右”라고 적었다.[7]

조선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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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16세기부터 조정의 논의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曰可曰否’가 51건 보이며,[8] 가장 이른 것은 중종 5년(1510)의 기사이다. 경연에 드는 신하들이 조정이 화합하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상소를 올리자 중종은 이렇게 답했다.

且以爲朝廷不和,此可驚駭。雖宰相、臺諫異言,曰可曰否,庸何傷乎?

[9]

“또 조정이 화합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는 놀랄 만하다. 재상과 대간이 말을 달리하여 옳다 하고 그르다 한들 무엇이 해롭겠는가?”

중종 11년(1516)에는 폐조(연산군 대)의 죄인들을 풀어 주는 문제를 두고 “이런 큰일은 옳다 그르다 하는 논의를 임금이 직접 듣게 하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겠는가(況此大事,曰可曰否,使上親聞其議,有何不可)”라고 했다.[10] 이보다 앞서 성종 20년(1489)의 대사간 안호(安瑚) 등의 차자에는 “인사를 맡은 관청이 옳다 하고 옳지 않다 한다(銓曹曰可曰不可)”는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11]

문집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였다. 이언적(李彦迪)은 1541년의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에서 말을 들을 때는 다름을 꺼리지 말고 “옳다 하고 그르다 하여 가부가 서로 보완되어 이치에 맞기를 힘써야 한다(曰可曰否。可否相濟而務合於理)”고 했고,[12] 신광한(申光漢)은 대사간으로 올린 차자에서 대신들이 “옳다 그르다 하는 뜻이 없이(無曰可曰否之意)” 예예 하는 습관에 젖었다고 비판했다.[13]

동학의 교조 최제우(崔濟愚)도 《동경대전(東經大全)》 〈수덕문(修德文)〉에서 믿음(信)을 설명하며 “말하는 가운데 옳다 하고 그르다 하니,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물리쳐 다시 생각해 마음을 정하라(言之其中,曰可曰否;取可退否,再思心定)”고 했다.[14]

위의 용례에서 보듯 조선 문헌의 왈가왈부는 대부분 ‘여러 사람이 가부를 논해 옳은 결론을 찾는 것’, 곧 공론을 가리키는 긍정적인 말이었다. 중종이 “옳다 그르다 한들 무엇이 해롭겠는가”라고 한 것도 조정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처럼 “옳거니 옳지 아니하거니 하고 말함” 자체를 가리키지만,[1] 실제로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그만두자”처럼 쓸데없이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것을 막거나 꺼리는 문맥에서 자주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도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그만둡시다”이다.[1]

  • 이미 투표로 결정된 사안을 두고 뒤늦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보안 정책을 정할 때는 회의에서 충분히 왈가왈부하되, 한번 정한 뒤에는 모두가 같은 기준을 지켜야 한다.
  • 남의 집 혼사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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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왈가불가(曰可不可): 왈가왈부와 같은 말.
  • 가타부타: 어떤 일에 대하여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함.
  • 갑론을박(甲論乙駁):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상대편의 주장을 반박함.
  •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러 사람의 말을 막기 어려움.
  • 시시비비(是是非非):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함.
  • 헌가체부(獻可替否): 옳은 일은 권하고 옳지 못한 일은 못 하게 함. 신하의 간언을 이르는 말.
  1.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왈가왈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88%EA%B0%80%EC%99%88%EB%B6%80, 확인날짜=2026-09-30.
  2.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왈가불가”,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99%88%EA%B0%80%EB%B6%88%EA%B0%80, 확인날짜=2026-09-30.
  3.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검색 “曰可”(해당 표제어 없음), https://dict.idioms.moe.edu.tw/, 확인날짜=2026-09-30; 코토뱅크 “曰可曰否” 검색(해당 표제어 없음), https://kotobank.jp/word/%E6%9B%B0%E5%8F%AF%E6%9B%B0%E5%90%A6, 확인날짜=2026-09-30.
  4.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0년. 《안자춘추(晏子春秋)》 권7 〈외편〉에도 같은 대목이 있다.
  5. ↑ 《후한서(後漢書)》 권74, 이현(李賢) 주.
  6. ↑ 갈승중(葛勝仲), 〈추밀오공묘지명(樞密吳公墓誌銘)〉, 《단양집(丹陽集)》 권12.
  7. ↑ 이소기(李昭玘), 〈발맹중녕화연사도(跋孟仲寜畫蓮社圖)〉, 《악정집(樂靜集)》 권9.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曰可曰否”,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30.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0권, 중종 5년 1월 19일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501019_006, 확인날짜=2026-09-30.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25권, 중종 11년 5월 19일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105019_004, 확인날짜=2026-09-30.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24권, 성종 20년 1월 15일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2001015_004, 확인날짜=2026-09-30.
  12. ↑ 이언적(李彦迪),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 《회재집(晦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125A_0090_010_001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13. ↑ 신광한(申光漢), 〈미재구폐차(弭災救弊箚)〉 무술년(1538) 겨울, 《기재집(企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116A_0220_070_002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14. ↑ 최제우(崔濟愚), 〈수덕문(修德文)〉, 《동경대전(東經大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