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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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和而不同)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휩쓸려 같아지지는 않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논어》 〈자로〉의 “군자는 화합하되 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에서 나왔다.
‘화(和)’는 서로 다른 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 ‘동(同)’은 다른 것을 없애고 한 가지로 맞추는 것이다. 화이부동은 자기 원칙과 생각을 지키면서도 남과 조화롭게 지내는 태도를 가리키며, 반대로 줏대 없이 남을 따라 하면서도 속으로는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동이불화(同而不和)’라 한다. 조직 문화, 협상, 다문화 사회, 외교 등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조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된다.
중국어에서도 ‘和而不同(hé ér bù tóng)’을 그대로 쓰며, 《성어전》은 “마음으로는 남과 화목하게 지내되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음”으로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훈독해 ‘和して同ぜず(わしてどうぜず)’라고 한다.[3]
공자와 같은 시대의 선배인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은 ‘화’와 ‘동’의 차이를 음식과 음악에 빗대어 설명했다.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20년(기원전 522) 조에 따르면, 사냥에서 돌아온 제 경공(景公)이 달려와 맞는 양구거(梁丘據, 자 자유子猶)를 보고 “오직 거만이 나와 화합한다”고 하자 안영이 “거는 같을 뿐이니 어찌 화합이라 하겠습니까”라고 답했다.[6]
公曰:和與同異乎?對曰:異。和如羹焉,水火醯醢鹽梅,以烹魚肉,燀之以薪,宰夫和之,齊之以味,濟其不及,以洩其過,君子食之,以平其心。君臣亦然,君所謂可,而有否焉,臣獻其否,以成其可;君所謂否,而有可焉,臣獻其可,以去其否。是以政平而不干,民無爭心。……今據不然,君所謂可,據亦曰可;君所謂否,據亦曰否。若以水濟水,誰能食之?若琴瑟之專壹,誰能聽之?同之不可也如是。
“화와 동이 다른가?” “다릅니다. 화는 국과 같습니다. 물·불·식초·젓갈·소금·매실로 생선과 고기를 삶되, 땔나무로 불을 때고 요리사가 간을 맞추어 모자란 맛은 보태고 지나친 맛은 덜어 냅니다. 군자가 이를 먹고 마음을 평안히 합니다. 임금과 신하도 그러합니다. 임금이 옳다고 해도 그른 점이 있으면 신하가 그른 점을 아뢰어 옳은 것을 이루고, 임금이 그르다고 해도 옳은 점이 있으면 신하가 옳은 점을 아뢰어 그른 것을 없앱니다. 그래서 정치가 공평해 어긋나지 않고 백성에게 다투는 마음이 없습니다. …… 지금 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이 옳다 하면 거도 옳다 하고, 임금이 그르다 하면 거도 그르다 합니다. 물로 물에 간을 맞춘다면 누가 먹겠으며, 거문고와 비파가 한 소리만 낸다면 누가 듣겠습니까. 동이 옳지 않은 것이 이와 같습니다.” 안영은 이어 다섯 가지 맛을 고르게 하고 다섯 소리를 어울리게 하는 것처럼, 맑고 흐림·크고 작음·길고 짧음이 서로 이루어 주어야 음악이 된다고 덧붙였다.[6]
이보다 더 앞선 서주 말의 이야기로, 《국어(國語)》 〈정어(鄭語)〉에는 정 환공(桓公)의 물음에 사백(史伯)이 주나라가 쇠할 것이라며 이렇게 답한 대목이 있다.[7]
去和而取同。夫和實生物,同則不繼。以他平他謂之和,故能豐長而物歸之;若以同裨同,盡乃棄矣。故先王以土與金木水火雜,以成百物。
“(지금 왕은) 화를 버리고 동을 취한다. 화는 실로 만물을 낳고, 동은 이어지지 못한다. 다른 것으로 다른 것을 고르게 하는 것을 화라 하니, 그러므로 풍성하게 자라 만물이 모여든다. 같은 것에 같은 것을 보태면 다하여 버려질 뿐이다. 그래서 옛 임금은 흙을 쇠·나무·물·불과 섞어 온갖 것을 만들었다.” 사백은 “소리가 한 가지면 들을 것이 없고, 물건이 한 가지면 무늬가 없고, 맛이 한 가지면 맛이 없다(聲一無聽,物一無文,味一無果)”고도 했다.[7] 공자의 화이부동은 이런 ‘화동론’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和而不同’이 10건 나오며, 주로 신하들이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을 변호하거나 붕당을 경계할 때 쓰였다.
- 연산군 1년(1495) 대간들은 사직을 청하면서, 각자 소견을 고집해 의견이 갈렸는데도 임금이 벌을 주지 않고 “화합하되 구차히 같아지지 않는 뜻(和而不同之意)”을 헤아려 주었다고 했다.[8]
- 숙종 1년(1675) 경연에서 ‘군자화이부동’ 장을 강할 때 허목(許穆)이 “화(和) 자의 뜻은 끝이 없어 《중용》에서도 말했다”고 하자, 사관은 《중용》의 화는 이 화와 뜻이 다르다며 허목이 잘못 끌어다 댔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석주(金錫胄)는 “동이불화는 소인의 정상을 말한 것인데, 지금 신하들의 정상에서도 볼 수 있다”며 왕안석·여혜경·채경 부자가 서로 등진 일을 들었다. 실록은 당시 권대운(權大運)과 윤휴(尹鑴) 등이 당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김석주가 이렇게 말했다고 적었다.[9]
현대 한국에서는 신영복이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에서 이 구절을 새롭게 읽은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라고 하며,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로 읽자고 했다.[10]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和 | 화 | 화하다, 어울리다 | 서로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룸 |
| 而 | 이 | 말 이을 이 | 그러나, ~하되 |
| 不 | 불(부) | 아니다 | 아니하다 |
| 同 | 동 | 같다 | 획일적으로 같아짐, 부화뇌동 |
‘不’은 뒤 글자의 첫소리가 ㄷ·ㅈ일 때 ‘부’로 읽으므로 ‘화이불동’이 아니라 ‘화이부동’이라고 읽는다.
- 보안팀과 개발팀은 화이부동해야 한다. 서로의 목표를 존중하되 취약점 앞에서 눈감아 주어서는 안 된다.
- 코드 리뷰에서 무조건 승인만 누르는 것은 동이불화에 가깝다. 화이부동의 리뷰 문화가 필요하다.
- 회의에서 팀장의 말에 모두 고개만 끄덕이는 조직은 화이부동이 아니라 동이불화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화이부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9%94%EC%9D%B4%EB%B6%80%EB%8F%99, 확인날짜=2026-09-27.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和而不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39, 확인날짜=2026-09-27.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和して同ぜ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2%8C%E3%81%97%E3%81%A6%E5%90%8C%E3%81%9C%E3%81%9A, 확인날짜=2026-09-27.
- ↑ 《논어》 〈자로(子路)〉.
- ↑ 주희, 《논어집주(論語集注)》 권7 〈자로〉.
- ↑ 6.0 6.1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0년.
- ↑ 7.0 7.1 《국어(國語)》 권16 〈정어(鄭語)〉.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11권, 연산 1년 12월 4일 계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0112004_001,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4권, 숙종 1년 윤5월 9일 병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105109_001, 확인날짜=2026-09-27.
- ↑ 이수태, “화이부동(和而不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09-04, 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71, 확인날짜=2026-09-27. 신영복의 《강의》 해당 대목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