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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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분수(有分數)는 마땅히 지켜야 할 분수가 있음을 뜻하는 한자어로, 흔히 ‘-어도 유분수이지’, ‘-도 유분수지’ 꼴로 써서 어떤 일에도 넘지 말아야 할 한도가 있음을 나타낸다.[1]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지나쳐 어이가 없을 때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농담이 지나쳐도 유분수이지”처럼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명사로 올리면서 “흔히 ‘-어도 유분수이지’ 구성으로 쓰여”라고 쓰임을 밝히고, 박경리의 《토지》에서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 “이놈, 무식해도 유분수지”를 용례로 든다.[1] 혼자 쓰기보다 거의 이 관용적인 틀 안에서만 쓰이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처럼 다른 성어와 어울려 꾸짖는 말로 자주 쓰인다.
여기서 ‘분수(分數)’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사람으로서 일정하게 이를 수 있는 한계”라는 뜻으로, 이 뜻일 때는 주로 ‘있다’와 함께 쓰인다(“농담도 분수가 있다”).[2] ‘유분수’는 이 ‘분수가 있다’를 한문 어순(有+分數)으로 줄인 꼴이다. 수학의 ‘분수(分數, 분모와 분자로 나타낸 수)’와는 한자가 같지만 뜻이 다르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한문에서 ‘有分數’는 ‘정해진 몫·차등·정도가 있다’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쓰였다. 《회남자》 〈본경훈(本經訓)〉은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 사람들이 산천에 경계를 긋고 “사람 수를 헤아려 몫을 정하게 했다(計人多少衆寡,使有分數)”고 했다.[3]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도 21건이 있는데, 과거 시험의 점수(1417년 “有分數相等者”), 천리와 인욕의 비중(1546년 “天理人欲, 各有分數”) 같은 뜻이다.[4] 이처럼 한문의 ‘有分數’에는 ‘넘지 말아야 할 한도가 있다’며 꾸짖는 쓰임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쓰임은 근대 한국어에서 확인된다. 1932년 11월 21일 《동아일보》 호외는 서울 교외선 전차 폐지에 반대하는 주민 대회 소식을 전하면서 소제목을 “食言도 有分數(식언도 유분수)”라고 달았다.[5] 오늘날의 ‘-도 유분수지’와 같은 틀이다.
세 글자 말이라 사자성어는 아니며, 고사도 없다. 다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처럼 성어와 짝을 이루어 자주 쓰이므로 함께 알아 둘 만하다.
- 남의 코드를 통째로 복사해 놓고 자기가 짰다고 우기다니, 뻔뻔해도 유분수지.
- 마감 하루 전에 요구 사항을 전부 바꾸라니, 무리한 요구에도 유분수가 있다.
-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 남송 주밀(周密)의 《제동야어(齊東野語)》 권20 〈독서성(讀書聲)〉에는 ‘有分數’를 ‘몇 점이냐’라는 뜻으로 쓴 일화가 있다. 어떤 사람이 소식(蘇軾)에게 시를 바치고 소리 내어 읽은 뒤 “이 시는 몇 점이나 됩니까(此詩有分數否)?” 하고 묻자, 소식은 “십 점”이라고 답했다. 그 사람이 크게 기뻐하자 소식은 천천히 “시가 삼 점, 읽는 솜씨가 칠 점이오(三分詩,七分讀耳)”라고 덧붙였다.[6]
- 18세기 조선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는 마음의 허령(虛靈)과 명덕(明德)에 ‘분수(分數)’, 곧 사람마다 다른 등급이 있는가를 두고 논쟁이 오갔다. 한원진(韓元震)과 윤봉구(尹鳳九)의 문집에 ‘虛靈有分數’, ‘明德有分數’를 따지는 글이 여럿 실려 있다.[7]
- 명청 소설에서는 장면을 바꾸며 뒷일을 예고할 때 “이 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有分數)…” 하는 상투적 표현으로 쓰기도 했다. 《금병매》 제98회에 “只因這陸秉義說出這樁事,有分數,數個人死於非命(이 육병의가 이 일을 꺼낸 탓에, 몇 사람이 제명에 죽지 못하게 되었다)”이라는 대목이 있다.[8]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분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B%B6%84%EC%88%98, 확인날짜=2026-10-12.
- ↑ 2.0 2.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분수”(분수5, 分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4%EC%88%98, 확인날짜=2026-10-12.
- ↑ 유안(劉安),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有分數”(21건), https://sillok.history.go.kr/ ;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윤5월 14일 기사(己巳)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705114_003 ; 《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5월 29일 갑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0105029_001,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32년 11월 21일 호외 2면, “時代에 逆行하는 暴擧에 東西兩住民大會蹶起 … 食言도 有分數 報告演說內容”, https://db.history.go.kr/id/npda_1932_11_21_z0002_0610, 확인날짜=2026-10-12.
- ↑ 주밀(周密), 《제동야어(齊東野語)》 권20 〈독서성(讀書聲)〉.
- ↑ 한원진(韓元震), 《남당집(南塘集)》 권13; 윤봉구(尹鳳九), 《병계집(屛溪集)》 권10·권22.
- ↑ 《금병매(金瓶梅)》 제9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