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득일실
더 많은 작업
일득일실(一得一失)은 한 가지 이로움이 있으면 한 가지 손해가 있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순서를 바꾸어 ‘일실일득(一失一得)’이라고도 한다.[1]
어떤 선택이나 방법에 좋은 점이 있으면 그만큼 나쁜 점도 따른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할 때 쓴다. 한쪽을 얻으면 다른 쪽을 내주어야 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경제·공학에서 말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와 통하는 말이다.
일본어에서도 ‘一得一失(いっとくいっしつ)’이라고 하며,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한쪽에서 이익이 있으면 동시에 다른 쪽에서 손실이 따르는 것”으로 풀이하고 ‘일장일단(一長一短)’과 같은 말로 본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네 글자가 그대로 보이는 이른 예는 후한 말 순열(荀悅)의 글이다. 순열은 창읍왕(昌邑王)이 폐위된 일을 논하면서 군주를 왕주(王主)·치주(治主)·존주(存主)·쇠주(衰主)·위주(危主)·망주(亡主)의 여섯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그중 넷째를 이렇게 설명했다.
悖逆交争,公私並行,一得一失,不純道度:是謂哀主。
“어긋남과 거스름이 엇갈려 다투고, 공과 사가 나란히 행해져, 한 번 얻고 한 번 잃으며 도리와 법도에 한결같지 못한 자, 이를 쇠한 군주라 한다.”[3]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20은 같은 글을 “순열의 《한기론(漢紀論)》”으로 인용하면서 첫머리를 “情義交爭,公私幷行”으로, ‘哀主’를 ‘衰主’로 적었다.[4] 여기서 일득일실은 ‘잘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한다’는 뜻으로, 한결같지 못한 군주의 모습을 가리킨다.
당나라 풍용지(馮用之)의 〈기론(機論)〉에는 때를 얻고 잃는 일을 두고 “이처럼 한 번 얻고 한 번 잃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고, 한 번 일어나고 한 번 망하는 것은 발꿈치를 돌리듯 빠르다(一得一失,易如反掌,一興一亡,疾如旋踵)”는 문장이 있다.[5]
불교 문헌에서는 천태종을 연 지의(智顗, 538~597)의 《마하지관(摩訶止觀)》 권3에 “범부는 둘 다 잃고, 이승(二乘)은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으며, 보살은 둘 다 얻는다(凡夫兩失,二乘一得一失,菩薩兩得)”는 구절이 있다. 이승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데서는 얻지만 중생을 건지지 않는 데서는 잃는다는 설명으로,[6] 한쪽의 얻음과 다른 쪽의 잃음이 짝을 이룬다는 지금의 뜻에 가깝다.
이 말을 널리 알린 것은 오대(五代)의 선승 법안 문익(法眼文益)의 문답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4는 이렇게 전한다.
因僧齋前上參。師以手指簾。時有二僧同去捲簾。師曰。一得一失。
“스님들이 공양 전에 법을 청하러 올라오자 법안이 손으로 발(簾)을 가리켰다. 그때 두 스님이 함께 가서 발을 걷어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다.’”[7]
똑같이 발을 걷은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 《종용록(從容錄)》 제27칙 ‘법안지렴(法眼指簾)’, 무문 혜개(無門慧開)의 《무문관(無門關)》 제26칙 ‘이승권렴(二僧卷簾)’으로 실려 선종의 대표적인 화두가 되었다.[8] 《무문관》의 평은 “말해 보라,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가(且道是誰得誰失)”라고 묻고는 “다만 얻음과 잃음 속에서 따지지는 말라(切忌向得失裏商量)”고 덧붙인다.[9] 일본에서는 도겐(道元)이 《정법안장(正法眼藏)》 〈세면(洗面)〉에서 “양치하는 법은 잊지 않았으나 세수는 하지 않으니 일득일실이다”라고 쓴 것이 《일본국어대사전》의 첫 용례이다.[2]
《조선왕조실록》 원문의 유일한 용례는 1416년(태종 16년) 박은(朴訔)의 상서이다. 박은은 과전을 지방으로 옮겨 주자는 논의에 반대하면서, 2년 전 변정도감(辨正都監)을 두었을 때 “쟁송이 벌 떼처럼 일어나 한쪽이 얻으면 한쪽이 잃으니 원망하는 자가 태반이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은 얻은 자의 기쁨은 얕고 잃은 자의 원망은 깊다(爭訟蜂起,一得一失,怨者太半。凡人情得之者喜淺,失之者怨深)”고 했다.[10] 강희맹(姜希孟)도 〈농자대(農者對)〉에서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이 섞이고 갈고 심는 때가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一得一失) 밭에서 힘을 다해 열 배를 거두는 농사를 둘째 등급으로 꼽았다.[11]
사자성어 목록과 일본 사전 《디지털 다이지센》에는 이 말이 《한서(漢書)》 〈한신전(韓信傳)〉에서 나왔다고 적은 경우가 있다(나무위키 등).[2] 그러나 〈한신전〉에 있는 것은 광무군 이좌거의 말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 잃는 것이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또한 한 번 얻는 것이 있다(智者千慮,必有一失;愚者千慮,亦有一得)”이며,[12] 이는 천려일실과 천려일득의 출전이다. ‘一得一失’ 네 글자는 이 대목에 없다. 같은 이야기는 더 이른 《사기》 〈회음후열전〉에도 실려 있는데, 거기서는 ‘亦有一得’이 ‘必有一得’으로 되어 있다.
- 캐시를 두껍게 쌓으면 응답은 빨라지지만 데이터가 늦게 반영되니, 설계마다 일득일실이 있다.
- 보안 정책을 강하게 할수록 사용자는 불편해지는 법이라 일득일실을 따져 수준을 정했다.
- 도시로 이사하니 출퇴근은 편해졌지만 집이 좁아졌다. 세상일이 다 일득일실이다.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득일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B%93%9D%EC%9D%BC%EC%8B%A4, 확인날짜=2026-10-12.
- ↑ 2.0 2.1 2.2 2.3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一得一失”,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5%BE%97%E4%B8%80%E5%A4%B1, 확인날짜=2026-10-12.
- ↑ 순열(荀悅), 〈창읍왕론(昌邑王論)〉, 《순시중집(荀侍中集)》.
-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20 〈치도부(治道部) 1〉.
- ↑ 풍용지(馮用之), 〈기론(機論)〉, 《전당문(全唐文)》 권404.
- ↑ 지의(智顗), 《마하지관(摩訶止觀)》 권3.
- ↑ 도원(道原),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4.
- ↑ 만송 행수(萬松行秀), 《종용록(從容錄)》 권2 제27칙.
- ↑ 무문 혜개(無門慧開), 《무문관(無門關)》 제26칙 〈이승권렴(二僧卷簾)〉.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5월 20일 신해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605020_006, 확인날짜=2026-10-12.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강희맹, 《사숙재집(私淑齋集)》 〈농자대 3(農者對三)〉,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4A_0120_010_0040, 확인날짜=2026-10-12.
- ↑ 반고(班固), 《한서》 권34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