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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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득실(利害得失)은 이로움과 해로움, 얻음과 잃음을 아울러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어떤 일을 했을 때 돌아올 이익과 손해를 함께 따지는 맥락에서 쓴다.
“이해득실을 따지다”, “각국의 이해득실이 엇갈리다”처럼 정책, 협상, 선거, 사업 판단을 다루는 글에 자주 나온다. 비슷한 뜻의 두 말 ‘이해(利害)’와 ‘득실(得失)’을 겹쳐 뜻을 강조한 짜임이다.[2] ‘이해’는 이익과 손해,[3] ‘득실’은 얻음과 잃음이다.
이해득실이 이익과 손해의 ‘결과’를 가리키는 데 무게가 있다면, 비슷한 말 ‘이해타산(利害打算)’은 그것을 ‘따져 셈하는 행위나 태도’를 가리키는 데 무게가 있다. 그래서 “이해득실을 따지다”와 “이해타산이 빠르다”처럼 쓰임이 갈린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利害得失’을 같은 뜻으로 쓴다.[2]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글자 뜻 그대로 굳은 말이다. 확인되는 이른 예는 당나라 재상 이강(李絳, 764~830)의 상주문을 모은 《이상국논사집(李相國論事集)》이다. 이강은 헌종에게 진주(鎭州) 절도사 문제를 아뢰며 “여러 날 생각하여 살피지 않은 것이 아니니, 이해득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판단됩니다(累日思量,非不審細,利害得失,斷在不疑)”라고 했다.[4] 같은 책 권5에서도 위박(魏博)의 전흥(田興)에게 곧바로 절도사를 제수하라고 청하며 “이해득실이 해와 달처럼 분명하다(利害得失,明若日月)”고 했다.[5] 송대 이후에는 정책의 장단점을 따지는 글에 흔히 쓰였다. 소식(蘇軾)은 밀주(密州)의 소금세 수입과 도적 체포 포상금을 견주며 “이로써 비교하면 이해득실을 단연 알 수 있다(以此較之,利害得失,斷可見矣)”고 했다.[6]
한국에서는 《조선왕조실록》 원문에 20건이 있으며, 1491년(성종 22년) 홍문관 부제학 김극검(金克儉) 등이 여진 정벌을 반대하며 올린 차자에서 “진·한 이래로 [변방 정책의] 이해득실은 역사책에 환히 실려 있다(秦、漢以降,利害得失,炳炳史冊)”고 한 것이 이른 예이다.[7] 《우계집》 연보에 따르면 성혼(成渾)은 선조에게 “지금 선비들은 어려서부터 과거로 녹봉을 구하느라 이해득실에 빠져(汨沒於利害得失) 제 몸 보전할 계책만 세운다”고 아뢰었다.[8]
일본어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1868년(게이오 4년) 정월 〈개국 어사태서(開国の御沙汰書)〉의 “폐해가 있는 것들은 이해득실을 공의(公議)한 위에 개혁하도록 하라”를 첫 용례로 든다.[2]
사자성어 목록 가운데에는 이 말의 출전을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나무위키 등), 《일본국어대사전》이 드는 일본어 첫 용례는 1868년의 문서이고, 그보다 훨씬 앞선 용례는 당나라 이강의 상주문 같은 중국 문헌에 있다.
- 클라우드로 옮길지 말지는 비용, 보안, 운영 부담의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 결정해야 한다.
- 협상 테이블에 앉은 두 나라는 각자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 친구를 도울 때 이해득실부터 따지면 그 우정은 오래가기 어렵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해득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4%ED%95%B4%EB%93%9D%EC%8B%A4, 확인날짜=2026-10-12.
- ↑ 2.0 2.1 2.2 2.3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利害得失”,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8%A9%E5%AE%B3%E5%BE%97%E5%A4%B1,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해2(利害)”,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4%ED%95%B4, 확인날짜=2026-10-12.
- ↑ 이강(李絳), 《이상국논사집(李相國論事集)》 권3.
- ↑ 이강(李絳), 《이상국논사집(李相國論事集)》 권5.
- ↑ 소식(蘇軾), 〈논하북경동도적장(論河北京東盜賊狀)〉.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52권, 성종 22년 4월 21일 병인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2204021_005, 확인날짜=2026-10-12.
- ↑ 〈우계선생연보(牛溪先生年譜)〉, 《우계집(牛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98A_0140_010_0010,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