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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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一場春夢)은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봄날의 꿈은 달콤하지만 쉽게 깨고, 깨고 나면 흔적이 없다. 일장춘몽은 이처럼 한때의 부귀영화나 즐거웠던 시절이 지나고 보니 허무하게 사라졌음을 한탄할 때 쓴다. ‘춘몽(春夢)’만으로도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로 쓴다.[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봄에는 잠이 잘 오고 꿈도 아름답지만 쉽게 깬다. ‘일장춘몽’은 쉽게 깨는 봄날의 단꿈으로, 세상일이 변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헛것이 됨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3] 일본어에서는 ‘一場の春夢(いちじょうのしゅんむ)’라고 한다.[4]
남가일몽·한단지몽이 특정한 이야기에서 나온 말인 데 비해, 일장춘몽은 ‘봄꿈’이라는 흔한 비유에서 굳어진 말이다.
《성어전》은 이 말이 당나라 말의 시인 노연양(盧延讓)의 시 〈곡이영단공(哭李郢端公)〉에서 나왔다고 본다.[3] 벗 이영(李郢)의 죽음을 슬퍼한 시로, 마지막 구절에 이 말이 나온다.
軍門半掩槐花宅,每過猶聞哭臨聲。
北固暴亡兼在路,東都權葬未歸塋。
漸窮老僕慵看馬,著慘佳人暗理箏。
詩侶酒徒消散盡,一場春夢越王城。
“회화나무 꽃 핀 집에 군문(軍門)은 반쯤 닫혀 있고, 지날 때마다 곡하는 소리 여전히 들린다. 북고(北固)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 길 위에서 일을 치르고, 동도(東都)에 임시로 묻었을 뿐 아직 선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난해진 늙은 종은 말 돌보기도 지쳤고, 상복 입은 여인은 가만히 쟁을 고른다. 시를 나누고 술을 함께하던 벗들은 모두 흩어졌으니, 월왕성(越王城)의 옛일은 한바탕 봄꿈이로구나.” 《성어전》은 시를 짓고 술을 마시던 즐거운 시절이 쉽게 깨는 봄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을 탄식한 구절로 풀이한다.[3]
《전당시》에 실린 장필(張泌)의 〈기인(寄人)〉에도 “기둥에 기대어 생각할수록 더욱 서글픈데, 한바탕 봄꿈은 흐릿하기만 하다(倚柱尋思倍惆悵,一場春夢不分明)”라는 구절이 있다.[6] 이별한 사람을 그리는 시로, 여기서 ‘춘몽’은 그리운 사람을 만난 꿈이다.
이 말을 널리 알린 것은 북송의 소식(蘇軾)에 얽힌 일화이다. 소식의 벗이던 조영치(趙令畤)는 《후청록(侯鯖錄)》 권7에 이렇게 적었다.
東坡老人在昌化,嘗負大瓢行歌於田間,有老婦年七十,謂坡云:「內翰昔日富貴,一場春夢。」坡然之。里人呼此媼為春夢婆。
“동파 노인이 창화(昌化)에 있을 때 큰 표주박을 등에 지고 밭 사이를 거닐며 노래하곤 했다. 일흔 살 된 노파가 소식에게 ‘한림학사 나리의 지난날 부귀는 한바탕 봄꿈이었지요’라고 하자 소식이 그렇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노파를 ‘춘몽파(春夢婆)’라고 불렀다.” 창화는 지금의 하이난섬으로, 소식이 만년에 귀양 가 있던 곳이다. 한림학사(內翰)로서 조정의 중심에 있던 소식이 바다 건너 유배지에서 시골 노파에게 들은 말이라는 점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소식은 술에 취해 여러 이웃 집을 돌아다니며 지은 시에서 “북 던져 물리치는 이웃 여인에게 늘 곤욕을 치르고, 부채를 바꾸는 이는 오직 춘몽파뿐이로다(投梭每困東鄰女,換扇唯逢春夢婆)”라고 이 노파를 읊기도 했다.[7]
일본의 사전 가운데에는 이 말의 출전을 《후청록》으로 드는 것이 있다.[4]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一場春夢’이라는 네 글자는 이미 당나라 말의 시에 나오므로, 소식의 일화는 이 말의 기원이라기보다 가장 유명한 용례로 보는 것이 맞다.
원나라 이후 희곡과 소설에서 일장춘몽은 부귀영화의 허무함을 말하는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 《성어전》은 원나라 잡극 《구세동거(九世同居)》의 “세상만사가 모두 한바탕 봄꿈이로다(世間萬事,總是一場春夢)”, 장가구(張可久)의 산곡 “흥망을 탄식하노니 한바탕 봄꿈이로다(嘆興亡一場春夢)”, 명나라 《성세항언(醒世恆言)》 권26 등을 용례로 든다.[3]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 ‘一場春夢’은 40여 건 검색되며, 고려 말부터 쓰였다.
- 고려 말의 이종학(李種學)은 시 〈유감(有感)〉에서 “천 리 나그네 마음은 부질없이 괴롭고, 한바탕 봄꿈 또한 믿을 것이 없구나(千里客心徒自苦。一場春夢亦無憑)”라고 읊었다.[8]
- 조선 초의 유방선(柳方善)은 벗에게 보낸 시에서 “뜬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이 구름과 연기 같으니, 그날 화려한 집의 모임을 떠올리면 한바탕 봄꿈이 더욱 아득하다(却憶華堂當日會。一場春夢倍茫然)”라고 했다.[9]
- 서거정(徐居正)의 시 〈주침(晝寢)〉에도 “한바탕 봄꿈은 막을 빗장이 없어, 고향 산수의 봄으로 돌아가네(一塲春夢無關鍵。歸及故園山水春)”라는 구절이 있다.[10]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一 | 일 | 하나 | 한 |
| 場 | 장 | 마당, 장소 | 한바탕(일이 벌어지는 한 차례) |
| 春 | 춘 | 봄 | 봄 |
| 夢 | 몽 | 꿈 | 꿈 |
‘일장(一場)’은 ‘한바탕’, ‘한 차례’라는 뜻이다.
- 코인 가격이 열 배로 뛰었을 때 산 집 계약서도 결국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 한때 업계를 호령하던 메신저 서비스도 이제는 일장춘몽처럼 잊혔다.
- 권세를 누리던 시절도 지나고 보니 일장춘몽이었다.
- 춘몽일장(春夢一場): 같은 뜻으로 어순을 바꾼 말. 《성어전》은 청나라 조익(趙翼)의 시 “봄꿈 한바탕 어찌 다시 오랴, 지금은 오직 청산만 남았구나(春夢一場那可再,祗今惟有青山在)”를 용례로 든다.[3]
- 남가일몽(南柯一夢): 순우분이 꿈속에서 괴안국의 부마가 되어 20년 영화를 누렸다는 〈남가태수전〉에서 나온 말.
- 한단지몽(邯鄲之夢), 황량일몽(黃粱一夢): 노생이 여관에서 메조밥이 익기 전의 짧은 잠에 한평생의 영화를 꿈꾸었다는 〈침중기〉에서 나온 말.
-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가 나비가 된 꿈.
- 과안운연(過眼雲煙), 몽환포영(夢幻泡影):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3]
-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장춘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C%9E%A5%EC%B6%98%EB%AA%BD,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춘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6%98%EB%AA%BD,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3.3 3.4 3.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一場春夢”,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16,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一場の春夢”,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5%A0%B4%E3%81%AE%E6%98%A5%E5%A4%A2, 확인날짜=2026-09-27.
- ↑ 노연양(盧延讓), 〈곡이영단공(哭李郢端公)〉, 《전당시(全唐詩)》 권715.
- ↑ 장필(張泌), 〈기인(寄人)〉, 《전당시(全唐詩)》 권742.
- ↑ 7.0 7.1 조영치(趙令畤), 《후청록(侯鯖錄)》 권7.
- ↑ 이종학, 〈유감(有感)〉, 《인재유고(麟齋遺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유방선, 〈기우인(寄友人)〉, 《태재집(泰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서거정, 〈주침(晝寢)〉, 《사가집(四佳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