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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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前無後無)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공전절후(空前絕後)’, ‘광전절후(曠前絕後)’를 같은 말로 싣는다.[1]
앞선 예도 없고 뒤따를 예도 없을 만큼 드물거나 뛰어난 일, 또는 그 반대로 유례없이 심한 일을 가리킨다. “전무후무한 기록”, “전무후무한 참사”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두루 쓴다.
한국어에서는 널리 쓰는 말이지만, 같은 뜻으로 중국어에서는 ‘空前絕後’나 ‘前無古人,後無來者’를, 일본어에서는 ‘空前絶後(くうぜんぜつご)’를 쓴다.[2] ‘前無後無’라는 네 글자는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으며, 중국 고전에서는 ‘앞도 없고 뒤도 없다’는 철학적 서술에 드물게 보일 뿐 ‘유례없음’을 뜻하는 성어로는 쓰이지 않는다. 주로 한국에서 굳어진 형태로 보인다.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앞에 없고(前無) 뒤에 없다(後無)’는 글자 뜻이 그대로 굳은 말이다.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에서 ‘前無後無’는 3건 검색되는데, 그 가운데 ‘유례없다’는 뜻으로 쓴 것은 이덕무(李德懋)의 글이다. 그는 《초사(楚辭)》의 〈천문(天問)〉을 두고 “문장 가운데 가장 험하고 괴이하여,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으며 다시 짝할 것이 없다(文中之至險極怪,前無後無,更無其對)”고 평했다.[3] 나머지 2건은 성리학 문답에서 “앞뒤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다(無前無後無小無大)”처럼 쓴 것으로, 성어가 아니다.[4]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는 정조 5년(1781)의 1건이 확인된다. 홍문관이 시호를 의논하면서 한꺼번에 21명의 시호 후보를 올리자, 정조는 “시법(諡法)이 무너진 것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라 해도, 시호 후보가 이렇게 많은 것은 전무후무하다고 할 만하다(諡望之夥然,可謂前無後無)”며 관련 관원들을 모두 파직했다.[5]
한편 조선 문집의 번역문에서는 ‘전무후무’가 훨씬 자주 보인다. 번역자들이 ‘超前’, ‘無後亦無前’, ‘曠古無傳’ 같은 여러 한문 표현을 ‘전무후무’로 옮겼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수광(李睟光)의 시 구절 “大災無後亦無前”은 “전무후무한 큰 수재”로 번역되었다.[6] 번역문에 보이는 ‘전무후무’를 원문 용례로 볼 수는 없다.
중국어에서 널리 쓰는 ‘전무고인, 후무래자(前無古人,後無來者)’는 남송 호자(胡仔)의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 전집 권9에서 두보(杜甫)의 시를 두고 “세상에서는 앞에 옛사람이 없고 뒤에 올 사람이 없다고 한다(世以謂前無古人,後無來者)”고 한 것이 이른 예이다.[10] 당나라 진자앙(陳子昂)의 〈등유주대가(登幽州臺歌)〉 “앞으로는 옛사람을 볼 수 없고, 뒤로는 올 사람을 볼 수 없네(前不見古人,後不見來者)”도 흔히 함께 인용된다.[11] 나무위키 등에는 이 표현이 청나라 이여진(李汝珍)의 소설에서 나왔다고 소개한 경우가 있으나, 이여진의 《경화연(鏡花緣)》(19세기 초)보다 수백 년 앞선 송나라 문헌에 이미 보인다.[10]
- 단일 공격으로 수억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 한 시즌에 세 개 대회를 모두 우승한 것은 구단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 그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고 은퇴했다.
- 앞의 정조 5년 기사에서 정조가 문제 삼은 것은 시호 후보 21명을 한꺼번에 올린 일이었다. 정조는 홍문관의 옛 기록을 보면 한 번에 십여 명을 넘지 않았다며, 명기(名器)를 가볍게 만든다고 꾸짖었다. 실록 원문에서 ‘前無後無’가 쓰인 유일한 예가 칭찬이 아니라 질책이었던 셈이다.[12]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무후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0%84%EB%AC%B4%ED%9B%84%EB%AC%B4, 확인날짜=2026-09-28.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空前絕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308, 확인날짜=2026-09-28.
- ↑ 이덕무(李德懋), 〈쇄아(瑣雅)〉,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5,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77A_0050_010_0030, 확인날짜=2026-09-28.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前無後無”,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1월 20일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511020_002, 확인날짜=2026-09-28.
- ↑ 이수광(李睟光), 〈수재후도중기소견(水災後道中紀所見)〉, 《지봉집(芝峯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번역문,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273A_0130_010_0330, 확인날짜=2026-09-28.
- ↑ 참고: “[이투데이 말투데이] 전무후무(前無後無)/숲 푸드”, 이투데이, https://www.etoday.co.kr/news/view/2470921, 확인날짜=2026-09-27.
- ↑ 참고: “전무후무 제갈무후(前無後無 諸葛武候)”, gninews, http://www.gninews.com/m/view.php?idx=13656,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前無後無”·“諸葛武侯前”,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 ↑ 10.0 10.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前無古人”,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653, 확인날짜=2026-09-28.
- ↑ 진자앙(陳子昂), 〈등유주대가(登幽州臺歌)〉.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1월 20일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511020_002,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미증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F%B8%EC%A6%9D%EC%9C%A0,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인미답”,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0%84%EC%9D%B8%EB%AF%B8%EB%8B%B5, 확인날짜=2026-09-28.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前所未有”,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226,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