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반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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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반측(輾轉反側)은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시경(詩經)》의 첫 작품인 〈관저(關雎)〉에서 나온 말이다.
걱정거리나 그리움, 설렘 때문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모습을 가리킨다. 원래 〈관저〉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여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노래한 구절이었지만, 지금은 근심과 걱정으로 잠 못 드는 경우에 두루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는 “어머님은 무슨 걱정이 많으신지 밤새 전전반측이셨다”이며, 같은 뜻의 말로 ‘전전불매(輾轉不寐)’를 든다.[1]
중국어에서는 ‘辗转反侧(zhǎn zhuǎn fǎn cè)’, 일본어에서는 ‘輾転反側(てんてんはんそく)’라고 하며, 뜻이 같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마음에 걱정이 많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함”으로 풀이한다.[2] 한자로는 ‘輾’ 대신 ‘展’을 쓴 展轉反側도 같은 말이다.[2]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첫 편 〈관저〉에 나온다. 군자가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을 얻고자 자나 깨나 그리워하는 노래이다.[3]
關關雎鳩,在河之洲。窈窕淑女,君子好逑。
參差荇菜,左右流之。窈窕淑女,寤寐求之。
求之不得,寤寐思服。悠哉悠哉,輾轉反側。
參差荇菜,左右采之。窈窕淑女,琴瑟友之。
參差荇菜,左右芼之。窈窕淑女,鐘鼓樂之。
“꾸룩꾸룩 우는 물수리는 강 가운데 모래톱에 있네.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네.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 깨나 찾네. 찾아도 얻지 못하니 자나 깨나 그리워하네. 그립고 그리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뜯네. 아리따운 아가씨와 거문고와 비파로 벗하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고르네. 아리따운 아가씨를 종과 북으로 즐겁게 하네.”
네 글자는 모두 누운 채 몸을 움직이는 모양이다. 후한 정현(鄭玄)의 전(箋)은 ‘輾’을 “누워서 몸을 다 돌리지 못한 것(卧而不周)”으로 풀었다.[4] 남송의 주희(朱熹)는 《시집전(詩集傳)》에서 네 글자를 하나씩 나누어 “輾은 轉의 반이고, 轉은 輾이 한 바퀴 돈 것이며, 反은 輾이 지나친 것이고, 側은 轉하다가 멈춘 것이니, 모두 누워서 자리를 편안히 하지 못하는 뜻이다(輾者,轉之半;轉者,輾之周;反者,輾之過;側者,轉之留。皆臥不安席之意)”라고 풀었다.[5] 이 풀이는 뒤에 명나라 주재육(朱載堉)이 춤사위의 다섯 가지 동작을 설명하는 근거로 끌어 쓰기도 했다.[6]
공자는 《논어》 〈팔일(八佾)〉에서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상하지 않는다(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고 평했다.[7] 주희는 이 가운데 ‘슬프면서도 상하지 않는다’를 전전반측과 연결해 “근심은 전전반측에서 그치니, 만약 근심하여 울고 흐느끼기까지 한다면 상한 것이다(憂止輾轉反側,若憂愁哭泣,則傷矣)”라고 풀었다.[2][8] 곧 전전반측은 그리움이 깊지만 도를 넘지 않은 감정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관저〉에서 뒤척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오래 논쟁거리였다. 《모시》 서(序)는 이 시를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한 것이라 했고, 주희는 궁중 사람들이 태사(太姒)가 처음 왔을 때 그 덕을 보고 지은 노래로 보았다. 그리워하며 뒤척이는 주체를 문왕으로 볼지, 궁인으로 볼지를 두고 설이 갈렸고, 조선에서도 이 문제가 경연에서 거듭 다루어졌다. 1778년(정조 2) 주강에서 정조는 “〈관저장〉에서 말한 ‘자나 깨나 그리워하며 전전반측한다’는 것은 문왕을 가리킨다고도 하고 궁인을 가리킨다고도 하는데, 두 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가”라고 물었다.[9]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3건이 있는데, 《세종실록》 악보에 실린 〈관저〉 가사, 1778년 정조의 경연 문답, 그리고 1688년(숙종 14) 이조 판서 박세채(朴世采)가 올린 시무 12조이다. 박세채는 오패(五覇)가 속임수와 힘을 앞세운 뒤로 “천하가 어지러이 굽은 길 가운데서 전전반측하며 수천 수백 년 동안 왕도로 스스로 서지 못했다(天下貿貿然,輾轉反側於曲徑之中,數千百年,無以王道自立者)”고 하여, 잠 못 드는 모양을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모양’으로 넓혀 썼다.[11]
조선 후기 문집에서는 대부분 〈관저〉의 해석을 다루는 경학 논의에서 쓰였다. 박윤원(朴胤源)의 〈답평숙시경문목(答平叔詩經問目)〉에는 “문왕이 성인이라 해도 이때 나이가 겨우 열 살 남짓이었는데, 어찌 숙녀를 그리워하여 전전반측하는 데까지 이르렀겠는가”라는 물음이 실려 있고, 박윤원은 〈관저〉를 문왕이 직접 지었다는 설은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세상에서는 궁중 사람이 지은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12]
- 새벽 배포를 앞두고 롤백 계획을 몇 번이나 떠올리며 전전반측하다 결국 한숨도 못 잤다.
-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밤, 그는 전전반측하며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 〈관저〉의 전전반측은 원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전반측”,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0%84%EC%A0%84%EB%B0%98%EC%B8%A1,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輾轉反側”,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85,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시경(詩經)》 〈주남(周南)〉 〈관저(關雎)〉.
- ↑ 정현(鄭玄) 전, 공영달(孔穎達) 소, 《모시정의(毛詩正義)》 권1 〈관저〉.
- ↑ 주희(朱熹), 《시집전(詩集傳)》 권1 〈주남〉 〈관저〉.
- ↑ 주재육(朱載堉), 《율려정의(律呂精義)》 외편 권10.
- ↑ 《논어(論語)》 〈팔일(八佾)〉.
- ↑ 여정덕(黎靖德) 편,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5 〈논어 팔일편〉.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1월 22일 계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201022_002, 확인날짜=2026-09-28.
-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60 〈오서(吳書) 하전여주종리전(賀全呂周鍾離傳)〉 주방(周魴).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 19권, 숙종 14년 6월 14일 을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b_11406014_001, 확인날짜=2026-09-28.
- ↑ 박윤원(朴胤源), 〈답평숙시경문목(答平叔詩經問目)〉, 《근재집(近齋集)》 권20,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63A_0200_010_0030, 확인날짜=2026-09-28.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輾転反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BC%BE%E8%BB%A2%E5%8F%8D%E5%81%B4, 확인날짜=2026-09-28.
- ↑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輾転反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BC%BE%E8%BB%A2%E5%8F%8D%E5%81%B4, 확인날짜=2026-09-28.
- ↑ “전전반측 (輾轉反側) / 크레페 (Crepe)”, 지니뮤직, https://www.genie.co.kr/detail/songInfo?xgnm=90903878,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