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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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竹馬故友)는 대말을 타고 놀던 벗이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벗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죽마교우(竹馬交友)’, ‘죽마구우(竹馬舊友)’, ‘죽마지우(竹馬之友)’라고도 한다.[1] ‘죽마(竹馬)’는 아이들이 가랑이에 끼우고 말처럼 타고 노는 대나무 막대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커서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를 가리킨다. 오랜 세월 변함없는 우정을 강조할 때 쓰며, “둘은 한 동네에서 자란 죽마고우다”처럼 쓴다. 비슷한 뜻의 순우리말로 ‘소꿉동무’, ‘소꿉친구’가 있고, 북한에서는 어렸을 때 함께 뛰놀던 동무를 ‘송아지동무’라고 한다.[2]
일본어에서는 ‘竹馬の友(ちくばのとも)’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709년의 잡배(雜俳) 《가루구치톤사쿠(軽口頓作)》를 든다.[3] 중국어에서는 ‘竹馬之友’, ‘竹馬之交’ 같은 표현이 쓰이며, 남녀가 어릴 때부터 허물없이 지낸 사이는 이백(李白)의 〈장간행(長干行)〉에서 나온 ‘청매죽마(青梅竹馬)’로 나타낸다.[4]
이 말은 흔히 동진(東晉)의 권신 환온(桓溫)이 은호(殷浩)를 두고 한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진서(晉書)》 권77 〈은호전(殷浩傳)〉에 따르면, 은호는 청담으로 이름이 높아 조정에서 환온을 견제할 인물로 기용되었으나, 북벌에 나섰다가 강족 장수 요양(姚襄)의 배반으로 크게 패했다. 환온은 이를 빌미로 은호를 탄핵했고, 은호는 서인으로 쫓겨나 동양군 신안현으로 옮겨졌다.[5]
浩少與溫齊名,而每心競。溫嘗問浩:「君何如我?」浩曰:「我與君周旋久,寧作我也。」溫既以雄豪自許,每輕浩,浩不之憚也。至是,溫語人曰:「少時吾與浩共騎竹馬,我棄去,浩輒取之,故當出我下也。」
“은호는 젊어서 환온과 이름을 나란히 했는데, 늘 속으로 겨루었다. 환온이 일찍이 ‘그대는 나와 견주어 어떠한가’ 하고 묻자, 은호는 ‘나는 그대와 오래 어울려 왔지만, 차라리 나 자신이 되겠다’고 했다. 환온은 스스로 호걸이라 자부하며 늘 은호를 가벼이 여겼으나 은호는 그를 꺼리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환온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릴 때 나와 은호는 함께 대말을 타고 놀았는데, 내가 버리고 가면 은호가 번번이 그것을 주워 탔다. 그러니 그는 내 아래일 수밖에 없다.’”
같은 이야기가 남조 송의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에도 두 조로 나뉘어 실려 있다. 하나는 “환공이 젊어서 은후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늘 겨루는 마음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문답이고, 다른 하나는 “은후가 폐해진 뒤 환공이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어릴 때 연원(은호)과 함께 대말을 탔는데 내가 버리면 그가 번번이 가져갔으니 내 아래일 수밖에 없다(少時與淵源共騎竹馬,我棄去,己輒取之,故當出我下)”는 대목이다.[6]
이 일화에서 ‘함께 대말을 탔다’는 말은 우정을 기리는 말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기가 은호보다 윗길이었다고 깎아내리는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말의 보충 설명에서 환온이 은호와 나란히 일컬어졌지만 속으로는 서로 겨루는 사이였고, 은호가 어릴 때 자기가 버린 대말을 썼다며 우위를 내세웠다고 풀이한다.[3] 다만 환온은 은호의 재능을 아주 낮게 본 것은 아니어서, 같은 전기에 “은호는 덕도 있고 말도 있으니 상서령이나 복야를 시켰다면 백관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했을 텐데, 조정이 그 재주를 잘못 썼을 뿐”이라고 한 말도 실려 있다.[5]
뒤에 환온은 은호를 상서령으로 삼으려고 편지를 보냈다. 은호는 기뻐하며 승낙했지만 답장에 실수가 있을까 봐 수십 번 봉투를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 빈 봉투를 보냈고, 환온은 크게 노하여 관계를 끊었다. 은호는 영화 12년(356)에 죽었다.[5] 나무위키 등에는 환온이 화가 나 은호를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원문은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관계가 끊어졌다(由是遂絕)”고만 적고 있다.
‘대말 타던 시절의 벗’을 좋은 뜻으로 쓴 예는 당나라 말에 이미 보인다. 황도(黃滔)는 벗 진정(陳鼎)의 제문에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고향에서는 죽마지우였고 서울에서는 과거 길을 함께했다(滔始自童年,至於壯歲,江鄉為竹馬之友,京輦作穀鸎之會)”고 했다.[7] 오늘날의 ‘죽마고우’는 이런 쓰임을 이은 것으로, 환온의 말에 담겼던 경쟁과 멸시의 뉘앙스는 남아 있지 않다.
조선 문헌에서는 ‘죽마교(竹馬交)’, ‘죽마지우(竹馬之友)’, ‘죽마지교(竹馬之交)’가 두루 쓰였다. 남효온(南孝溫)은 담양 향교의 교관 김빈(金濱)을 두고 “나의 죽마교(竹馬交)”라 했고,[8] 조익(趙翼)은 벗의 제문에서 “죽마지우가 뜻을 같이하는 벗이 되었으니 그 정이 골육 형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夫以竹馬之友,爲同心之友,其情與骨肉兄弟何異也)”라고 했다.[9]
네 글자 ‘竹馬故友’는 비교적 늦게 보인다. 《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 기사에서 김태윤(金泰潤)의 공초에 “할아버지가 신여철(申汝哲)과 죽마고우로서 정이 형제와 같았다(其祖父與申汝哲,以竹馬故友,情同兄弟)”는 말이 인용된 것이 이른 예이다.[10]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장석영(張錫英)의 편지(1904) 한 건이 검색된다.[11]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나오지 않고 국역문에만 보인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竹 | 죽 | 대나무 | 대나무 |
| 馬 | 마 | 말 | (竹馬로) 대말 |
| 故 | 고 | 옛, 연고 | 오래된 |
| 友 | 우 | 벗 | 벗 |
- 두 사람은 같은 골목에서 자란 죽마고우라 눈빛만 봐도 서로 생각을 안다.
-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죽마고우 셋이 함께 보안 스타트업을 차렸다.
- 수십 년 만에 죽마고우를 다시 만나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죽마고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3%BD%EB%A7%88%EA%B3%A0%EC%9A%B0,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송아지동무”(북한어),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86%A1%EC%95%84%EC%A7%80%EB%8F%99%EB%AC%B4,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竹馬の友”,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AB%B9%E9%A6%AC%E3%81%AE%E5%8F%8B,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青梅竹馬”,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4, 확인날짜=2026-09-27.
- ↑ 5.0 5.1 5.2 5.3 방현령(房玄齡) 등, 《진서(晉書)》 권77 〈은호전(殷浩傳)〉.
- ↑ 유의경(劉義慶),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
- ↑ 황도(黃滔), 〈제진선배(祭陳先輩)〉, 《황어사집(黃御史集)》 권6. 《전당문(全唐文)》 권826에도 실려 있다.
- ↑ 남효온(南孝溫), 〈담양향교보상기(潭陽鄕校寶上記)〉, 《추강집(秋江集)》. 한국고전종합DB.
- ↑ 조익(趙翼), 〈제김의흥 도 문(祭金義興 濤 文)〉, 《포저집(浦渚集)》 권30. 한국고전종합DB.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숙종 27년 11월 21일 갑진, https://sjw.history.go.kr/id/SJW-D27110210-01900,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종합DB, 한국문집총간 원문 검색 “竹馬故友”,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