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더 많은 작업
줄탁동시(啐啄同時)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안에서 껍데기를 쪼는 것과 어미 닭이 밖에서 껍데기를 쪼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안팎에서 서로 때를 맞추어 힘을 써야 일이 이루어짐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본래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제자와 이를 이끄는 스승의 마음이 꼭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가리키던 말이다. 오늘날에는 교육에서 배우는 사람의 의지와 가르치는 사람의 도움이 함께해야 한다는 뜻으로 특히 많이 쓰고, 조직 안팎의 협력, 노사나 민관의 호흡을 강조할 때도 쓴다. 우리말샘은 “사제 간의 관계가 서로 돈독해짐을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1]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르지 않았다.
일본어에서도 啐啄同時(そったくどうじ)라고 하며, 줄여서 ‘啐啄(そったく)’, ‘啐啄의 기(啐啄の機)’라고도 한다. 일본어에서는 여기서 나아가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라는 뜻으로도 쓴다.[2]
당말·오대의 선승 경청 도부(鏡淸道怤)와 관련된 말로 널리 알려졌다. 송나라 원오 극근(圜悟克勤)이 평창(評唱)을 붙인 《벽암록(碧巖錄)》 제16칙은 경청과 한 승려의 문답을 공안으로 든다.[4]
舉僧問鏡清:「學人啐,請師啄。」清云:「還得活也無?」僧云:「若不活,遭人怪笑。」清云:「也是草裏漢。」
“한 승려가 경청에게 물었다. ‘제가 안에서 쪼겠으니 스님께서 밖에서 쪼아 주십시오.’ 경청이 말하였다. ‘그래서 살아날 수 있겠느냐?’ 승려가 말하였다. ‘살아나지 못한다면 남들의 비웃음을 사겠지요.’ 경청이 말하였다. ‘역시 풀숲에서 헤매는 놈이로구나.’”
원오의 평창은 경청이 평소 대중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전한다.[4]
大凡行脚人,須具啐啄同時眼,有啐啄同時用,方稱衲僧。如母欲啄,而子不得不啐;子欲啐,而母不得不啄。
“무릇 행각하는 수행자는 줄탁동시의 눈을 갖추고 줄탁동시의 쓰임이 있어야 비로소 납승이라 할 만하다. 어미가 쪼려 하면 새끼가 안에서 쪼지 않을 수 없고, 새끼가 쪼려 하면 어미가 밖에서 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같은 평창에는 남원(南院)이 “제방의 선사들은 줄탁동시의 눈만 갖추었지 줄탁동시의 쓰임은 갖추지 못했다(諸方只具啐啄同時眼,不具啐啄同時用)”고 말한 일화도 실려 있다. 이 일화는 그보다 앞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 권12에도 나온다.[5] 《벽암록》의 다른 평창(제7칙)에서도 법안 선사를 두고 “줄탁동시의 기틀이 있고 줄탁동시의 쓰임을 갖추었다(有啐啄同時底機,具啐啄同時底用)”고 하였다.[6]
비유 자체는 선종 문답보다 앞서 교학 주석서에도 보인다. 당나라 서복(栖復)이 엮은 《법화경현찬요집(法華經玄贊要集)》은 중생의 근기가 무르익은 때가 곧 부처가 법을 설할 때라는 것을 설명하며 “닭이 알을 품을 때 줄탁이 동시인 것과 같다(如鷄附卵,啐啄同時)”고 하였다. 근기가 익지 않았는데 설하면 듣는 이가 원망하고, 익었는데 설하지 않으면 부처에게 때를 놓친 허물이 있다는 것이다.[7]
고려 말의 이제현(李齊賢)은 보감국사(寶鑑國師)의 비문에서, 보각국존(普覺國尊) 일연의 제자 수백 명 가운데 “깊은 뜻을 파고들어 줄탁에 묘하게 들어맞은(鑽堅挹深,妙契啐啄) 이는 오직 보감뿐”이라고 적었다.[8] 조선 후기에는 불교 밖에서도 쓰여, 이종상(李鍾祥)의 《정헌집(定軒集)》에는 기다리던 차에 편지를 받은 것을 두고 “이른바 줄탁동시라는 것이 아니겠는가(豈所謂啐啄同時者耶)”라고 한 편지가 있다.[9] 같은 문집의 〈게시제생문(揭示諸生文)〉은 고을 수령이 부임하자마자 학문을 일으키려 하던 때에 감영의 일이 마침 맞아떨어진 것을 “바로 이른바 줄탁동시”라고 하였다.[10]
- 신입 개발자가 스스로 묻기 시작할 때 선배가 코드 리뷰로 방향을 잡아 주는 것, 그것이 줄탁동시이다.
- 기술 이전이 성공하려면 연구소의 의지와 기업의 수요가 줄탁동시로 맞아야 한다.
- 교육은 줄탁동시라서 학생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
-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줄탁동시”,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A4%84%ED%83%81%EB%8F%99%EC%8B%9C,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2.3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啐啄”,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5%90%E5%95%84, 확인날짜=2026-10-03.
- ↑ 허신(許愼), 《설문해자(說文解字)》 권2 상 〈구부(口部)〉.
- ↑ 4.0 4.1 원오 극근(圜悟克勤) 평창,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권2 제16칙, 《대정신수대장경》 T2003. CBETA 전자불전,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3.
- ↑ 도원(道原) 찬,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2, 《대정신수대장경》 T2076. CBETA 전자불전,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3.
- ↑ 원오 극근(圜悟克勤) 평창,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권1 제7칙, 《대정신수대장경》 T2003. CBETA 전자불전,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3.
- ↑ 서복(栖復) 집, 《법화경현찬요집(法華經玄贊要集)》 권8, 《만속장경(卍續藏經)》 X0638. CBETA 전자불전,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3.
- ↑ 이제현(李齊賢), 〈유원고려국조계종자씨산영원사보감국사비명(有元高麗國曹溪宗慈氏山瑩源寺寶鑑國師碑銘)〉, 《익재난고(益齋亂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011A_0100_010_005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 ↑ 이종상(李鍾祥), 〈답이주현(答李周賢)〉, 《정헌집(定軒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1197A_0050_010_004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 ↑ 이종상(李鍾祥), 〈게시제생문(揭示諸生文)〉, 《정헌집(定軒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1197A_0140_010_004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