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군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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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만마(千軍萬馬)는 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군마라는 뜻으로, 아주 많은 수의 군사와 군마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같은 말로 ‘천병만마(千兵萬馬)’가 있다.
대군(大軍)의 규모나 기세를 나타낼 때 쓴다. 한국어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아주 든든한 도움이나 사람을 얻었을 때의 비유로도 흔히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천병만마’를 같은 말로 올리고 있다.[1]
중국어에서도 千軍萬馬(qiān jūn wàn mǎ)라고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병마가 많고 기세가 대단함”을 형용하는 말로 풀고 성난 파도가 몰려오는 모습 같은 데에도 쓴다고 예문을 든다.[2] 일본어에서는 千軍万馬(せんぐんばんば)라 하는데, ‘많은 군사와 군마’라는 뜻 말고도 ‘여러 전쟁터를 거쳐 싸움 경험이 많음’, 나아가 ‘사회 경험이 풍부함’이라는 뜻이 있어 “千軍万馬の猛者(산전수전 다 겪은 강자)”처럼 쓴다.[3] 한국과 중국의 사전에는 이 둘째 뜻이 올라 있지 않다.[1][2]
《성어전》은 이 말의 바탕을 《양서(梁書)》 〈진경지전(陳慶之傳)〉에서 찾고, 원래 형태는 ‘千兵萬馬’였다고 본다.[2] 남조 양나라의 장수 진경지(陳慶之)는 북위에서 망명해 온 북해왕 원호(元顥)를 호위해 북진했고, 원호는 낙양에 들어가 황제를 칭했다. 이때 진경지 군대의 활약을 《양서》는 이렇게 적었다.[4]
慶之麾下悉著白袍,所向披靡。先是洛陽童謠曰:「名師大將莫自牢,千兵萬馬避白袍。」
“진경지의 휘하는 모두 흰 도포를 입었는데, 향하는 곳마다 적이 쓰러졌다. 이에 앞서 낙양에 이런 동요가 있었다. ‘이름난 장수와 대장도 스스로 버티려 들지 말라, 천 명의 병사 만 필의 말도 흰 도포를 피한다.’”[4]
같은 이야기는 《남사(南史)》 권61 〈진경지전〉에도 실려 있다. 동요 속의 ‘千兵萬馬’는 흰 도포 군대를 당해 내지 못하고 피해 달아나는 쪽, 곧 진경지의 적군을 가리킨다. 오늘날 ‘천군만마’가 든든한 대군을 뜻하는 것과는 쓰인 자리가 다르다.
당나라 때에는 ‘千兵萬馬’가 글쓰기를 두고 한 비유에도 쓰였다. 송나라 전역(錢易)의 《남부신서(南部新書)》는 당나라 문인 이한(李翰)의 말로 “문장은 마땅히 천 명의 병사와 만 필의 말이 있으되 사람 소리가 없는 것과 같아야 한다(文章當如千兵萬馬,而無人聲)”를 전한다.[5] 큰 힘을 품고도 소란스럽지 않은 글을 기린 말이다.
네 글자 ‘千軍萬馬’의 용례로 《성어전》은 송·원대 화본(話本)을 모은 《경본통속소설(京本通俗小說)》 〈서산일굴귀(西山一窟鬼)〉의 “뒤에서 마치 천군만마가 쫓아오는 것 같아, 다시는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後面一似千軍萬馬趕來,再也不敢回頭)”를 먼저 들고, 이어 《수호전》 제7회, 《성세항언》, 《경화연》 등의 예를 든다.[2] 명청 소설과 희곡에서는 대군의 위세뿐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 거센 물결, 큰불의 기세를 그릴 때도 이 말을 비유로 썼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千軍萬馬’가 나오지 않고, 원래 형태인 ‘千兵萬馬’가 4건 있다.[6]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 6월, 평안도 방비를 논하던 자리에서 한 신하는 “압록강의 얼음이 풀린 뒤에는 비록 천병만마라도 날아서 건널 수 없다(雖千兵萬馬,不可飛渡)”고 말했다.[7] 숙종 19년(1693)에는 거짓 고변으로 잡혀 온 최태웅(崔泰雄)이 “밤중에 천병만마의 소리가 들리고 장차 나를 죽이려 하기에 지붕에 올라가 크게 소리쳤다”고 공초했다는 기록이 있다.[8]
문집에서는 ‘千軍萬馬’도 보인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집(於于集)》, 이익(李瀷)의 《성호전집(星湖全集)》 등에 쓰였다.[9]
- 경험 많은 운영 엔지니어가 합류하자 팀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해졌다.
- 천군만마 같은 트래픽이 몰려와도 버틸 수 있도록 오토스케일링을 미리 설정해 두었다.
- 적은 천군만마를 이끌고 왔지만 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 홍석주(洪奭周)가 쓴 백부 효헌공(孝獻公)의 묘표에는 정조가 그를 두고 “아무개는 비록 천군만마 가운데에서도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雖千軍萬馬中。不動一毫髮)”고 하며 차례를 건너뛰어 쓰고자 했다는 일화가 있다. 같은 사람의 가장(家狀)에는 정조가 그 아버지에게 “경의 아들은 천군만마 속에서도 늘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하다(可悶也)”고 웃으며 말했다고 적혀 있다.[10]
- 일본어의 첫 용례로 《일본국어대사전》은 도쿠토미 로카(徳富蘆花)의 《검은 눈과 갈색 눈(黒い眼と茶色の目)》(1914)을, ‘싸움 경험이 많다’는 뜻으로는 구보타 만타로(久保田万太郎)의 《춘니(春泥)》(1928)를 든다.[3]
-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천군만마”,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9C%EA%B5%B0%EB%A7%8C%EB%A7%88, 확인날짜=2026-10-10.
-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千軍萬馬”,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62, 확인날짜=2026-10-10.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千軍万馬”,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D%83%E8%BB%8D%E4%B8%87%E9%A6%AC, 확인날짜=2026-10-10.
- ↑ 4.0 4.1 요사렴(姚思廉), 《양서(梁書)》 권32 〈진경지전(陳慶之傳)〉.
- ↑ 전역(錢易), 《남부신서(南部新書)》 병권(丙卷).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千軍萬馬”·“千兵萬馬”,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39권, 선조 26년 6월 21일 갑진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606021_007, 확인날짜=2026-10-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 11월 30일 기사(己巳)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1911030_001, 확인날짜=2026-10-10.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千軍萬馬”,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0.
- ↑ 홍석주(洪奭周), 〈백부형조판서효헌공부군묘표(伯父刑曹判書孝獻公府君墓表)〉·〈백부형조판서효헌공부군가장(伯父刑曹判書孝獻公府君家狀)〉, 《연천집(淵泉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원문 검색 “千軍萬馬”,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