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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과부적(衆寡不敵)은 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앞뒤를 바꾼 ‘과부적중(寡不敵衆)’도 같은 뜻으로 쓴다.[2]

‘중(衆)’은 무리가 많음, ‘과(寡)’는 적음이다. ‘많음과 적음은 맞설 수 없다’, 곧 수가 적은 쪽은 많은 쪽을 당해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본래 싸움터에서 병력의 차이를 두고 하던 말이지만, 지금은 “중과부적으로 밀렸다”, “혼자서는 중과부적이었다”처럼 사람 수나 힘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는 상황 전반에 쓴다.

중국어에서는 ‘과부적중(寡不敵衆, 寡不敌众)’ 쪽을 더 흔히 쓰고,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도 이를 표제어로 삼아 ‘중과부적’은 그와 같은 말로 싣는다.[3] 일본어에서는 ‘衆寡敵せず(しゅうかてきせず)’라고 읽어 쓴다.[4]

《맹자》와 《일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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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쪽이 많은 쪽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은 선진 문헌에 이미 보인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서 맹자는 무력으로 천하를 얻으려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작은 추(鄒)나라와 큰 초(楚)나라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느냐고 물은 뒤 이렇게 말한다.

然則小固不可以敵大,寡固不可以敵衆,弱固不可以敵彊。

[5]

“그렇다면 작은 것은 본디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본디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본디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맹자는 이어 천하의 땅 가운데 제나라가 차지한 것은 9분의 1뿐이니, 하나로 여덟을 굴복시키려는 것은 추나라가 초나라에 맞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고, 무력이 아니라 어진 정치로 천하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라고 권했다.

《성어전》은 ‘과부적중’의 전거로 《일주서(逸周書)》 〈예량부(芮良夫)〉를 든다. 주나라 여왕(厲王)의 폭정을 간한 예량부가 “백성은 억조에 이르고 임금은 하나일 뿐이니, 적은 것은 많은 것을 대적하지 못하여 임금이 위태롭다(民至億兆,后一而已,寡不敵衆,后其危哉)”고 한 대목이다. 《성어전》은 이 전고가 《맹자》에도 보인다고 덧붙인다.[6]

《삼국지》의 ‘衆寡不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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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衆寡不敵’은 진(晉)나라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 두 번 나온다.

권11 〈장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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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동탁(董卓)이 난을 일으키자 장범의 아우 장승(張承)이 무리를 모아 동탁을 치려 했다. 마침 장안에서 온 장승의 아우 장소(張昭)가 형을 말렸다.[7]

今欲誅卓,衆寡不敵,且起一朝之謀,戰阡陌之民,士不素撫,兵不練習,難以成功。

“지금 동탁을 치려 해도 많고 적음이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루아침의 꾀로 들판의 백성을 싸우게 하면, 평소에 어루만진 군사도 아니고 훈련한 병사도 아니니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장승은 이 말을 따라 관인을 풀어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이 대목을 ‘衆寡敵せず’의 유래로 든다.[4] 여기의 장소는 오나라 손권을 섬긴 장소와는 다른 사람이다.

권26 〈곽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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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년 한중에서 하후연(夏侯淵)이 유비(劉備)에게 전사한 이튿날, 유비가 한수를 건너 공격해 오려 하자 “장수들은 중과부적이라 하여 물을 앞에 두고 진을 쳐 막으려 했다(諸將議衆寡不敵,備便乘勝,欲依水爲陣以拒之)”. 곽회는 이것이 약함을 보이는 것이라며 물에서 멀리 떨어져 진을 치고 적이 반쯤 건넜을 때 치자고 했고, 유비는 의심하여 건너오지 못했다.[8] 《성어전》은 이 대목을 ‘중과부적’의 용례로 든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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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衆寡不敵’이 42건 나온다. 태종 10년(1410) 동북면에 파견되는 박구(朴矩)와 최윤덕(崔閏德)은 “신들이 홀로 가면 중과부적이니 어찌합니까(臣等獨往,其於衆寡不敵何哉)”라며 번을 마치고 집에 가 있는 그 도의 갑사 30~40명을 데려가게 해 달라고 청했다.[9]

그보다 앞서 정도전(鄭道傳)은 〈정침전(鄭沈傳)〉에서 나주의 호장 정침(鄭沈)의 죽음을 기렸다. 정침은 홍무 4년(1371) 전라도 안렴사의 명으로 제주의 산천에 제사할 폐백을 싣고 바다를 건너다 왜적을 만났다. “중과부적이라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항복하자고 했으나(衆寡不敵。舟中皆懼。議將迎降)” 정침은 홀로 맞서 활을 쏘았고, 화살이 떨어지자 관복을 갖추어 입고 단정히 앉았다가 스스로 물에 몸을 던졌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衆 중 무리, 많다 많은 쪽
寡 과 적다 적은 쪽
不 부 아니다 못하다
敵 적 원수, 대적하다 맞서다

‘不’은 뒤에 오는 ‘ㄷ·ㅈ’ 앞에서 ‘부’로 읽는다.

  • 보안 관제 인력 두 명이 수천 개의 봇이 동시에 들어오는 공격을 막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물량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중과부적이니,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 경찰은 중과부적으로 시위대를 막지 못하고 물러났다.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만주·조선 여행기 〈만한 이곳저곳(満韓ところどころ)〉(1909)에서, 옛 친구를 예전처럼 ‘제코(是公)’라고 막 부르고 싶었지만 “중과부적이라” 어쩔 수 없이 남 대하듯 했다며 이 말을 익살스럽게 썼다.[4]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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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부적중(寡不敵衆): 중과부적과 같은 말.
  •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 악전고투(惡戰苦鬪): 매우 어려운 조건을 무릅쓰고 힘을 다하여 고생스럽게 싸움.
  • 반대 의미: 이일당십(以一當十): 하나로 열을 당해 냄. 세균역적(勢均力敵): 세력이 엇비슷하여 맞설 만함. 《성어전》이 반대 의미로 든다.[6]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중과부적”,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4%91%EA%B3%BC%EB%B6%80%EC%A0%81, 확인날짜=2026-09-27.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과부적중”,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BC%EB%B6%80%EC%A0%81%EC%A4%91,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眾寡不敵”,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20,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衆寡敵せ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A1%86%E5%AF%A1%E6%95%B5%E3%81%9B%E3%81%9A, 확인날짜=2026-09-27.
  5. ↑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
  6. ↑ 6.0 6.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寡不敵眾”,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83, 확인날짜=2026-09-27.
  7.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11 〈위서(魏書) 원장량국전왕병관전(袁張涼國田王邴管傳)〉 장범(張範).
  8. ↑ 진수, 《삼국지》 권26 〈위서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곽회(郭淮).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9권, 태종 10년 5월 22일 무자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005022_005, 확인날짜=2026-09-27.
  10. ↑ 정도전(鄭道傳), 《삼봉집(三峯集)》 권4, 〈정침전(鄭沈傳)〉,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024A_0070_040_001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024A_0070_040_001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