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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충관(怒髮衝冠)은 노하여 일어선 머리카락이 관을 추켜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이 난 모양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중국 전국 시대 조(趙)나라 인상여(藺相如)가 진(秦)나라 왕 앞에서 화씨벽(和氏璧)을 지키며 분노한 모습에서 나왔다.

머리털이 곤두서서 쓰고 있던 관을 밀어 올릴 만큼 크게 화가 났다는 과장된 표현이다. 옛날 성인 남자는 관을 썼으므로 이런 비유가 나왔다. 개인적인 짜증보다는 불의나 모욕에 대한 격한 분노, 의분(義憤)을 나타낼 때 주로 쓴다. 일상 대화에서는 드물고, 글에서 격한 분노를 힘주어 표현할 때 쓰인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널리 쓰며, 《성어전》은 ‘怒髮沖冠’, ‘髮上衝冠’을 같은 말로 든다.[2] 일본어에서는 ‘怒髪冠を衝く(どはつかんむりをつく)’라고 훈독해 쓴다. 《일본국어대사전》은 818년의 칙찬 한시집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실린 오노노 미네모리(小野岑守)의 시 구절 “怒髪屢衝冠”을 첫 용례로 든다.[3]

인상여와 화씨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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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4]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초나라의 보옥 화씨벽을 얻자, 진나라 소왕(昭王)이 성 열다섯 개와 바꾸자고 했다. 조나라는 진나라가 구슬만 받고 성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거절하면 침공할 구실을 줄까 두려워했다. 인상여가 사신으로 가서 “성이 조나라에 들어오면 구슬을 진나라에 두고, 그렇지 않으면 구슬을 온전히 조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진나라 왕은 장대(章臺)에서 구슬을 받아 크게 기뻐하며 후궁과 좌우에게 돌려 보게 했을 뿐 성을 줄 뜻을 보이지 않았다.

相如視秦王無意償趙城,乃前曰:「璧有瑕,請指示王。」王授璧,相如因持璧卻立,倚柱,怒髮上衝冠,謂秦王曰:「……大王必欲急臣,臣頭今與璧俱碎於柱矣!」

인상여는 진나라 왕이 성을 줄 뜻이 없음을 알고 “구슬에 티가 있으니 가리켜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며 구슬을 돌려받았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 기둥에 기대서서 노한 머리털이 관을 찌를 듯 치솟은 채 진나라 왕을 꾸짖었다. “대왕께서 굳이 신을 핍박하신다면 신의 머리는 이 구슬과 함께 기둥에 부딪혀 부서질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구슬이 깨질까 두려워 사과했고, 인상여는 몰래 사람을 시켜 구슬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4] 이 이야기에서 완벽귀조(完璧歸趙), 곧 ‘완벽(完璧)’이라는 말도 나왔다.

원문은 ‘怒髮上衝冠’의 다섯 글자이다. 《성어전》은 이보다 앞서 《장자》 〈도척(盜跖)〉에서 도척이 공자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해 “머리털이 위로 관을 가리켰다(髮上指冠)”는 표현이 있고, 《사기》 〈자객열전〉에서 형가(荊軻)를 전송하는 역수(易水) 가의 선비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털이 다 위로 관을 가리켰다(士皆瞋目,髮盡上指冠)”는 대목도 뜻이 가깝다고 설명한다. 다만 뒤에 쓰인 ‘怒髮衝冠’은 인상여의 이야기에 가장 가깝다고 본다.[2]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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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 노심(盧諶)의 〈남고시(覽古詩)〉는 인상여를 읊으며 “눈가의 피가 옷깃을 적시고, 노한 머리털이 위로 관을 찔렀다(眥血下霑衿,怒髮上衝冠)”고 했다. 이 시는 《문선(文選)》 권21에 실려 있다.[5] 네 글자 형태는 당나라 대휴정(戴休珽)의 〈고의(古意)〉에 “칼을 뽑아 서리처럼 흰 날을 비추니, 노한 머리털이 관을 찔러 씩씩하다(拔劍照霜白,怒髮衝冠壯)”는 구절로 보인다.[6][2]

악비의 〈만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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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남송의 장군 악비(岳飛)의 작품으로 전하는 사(詞) 〈만강홍(滿江紅)〉이다. 금나라에 빼앗긴 북방을 되찾으려는 비분을 노래한 이 사는 첫 구절이 “노한 머리털이 관을 찌르는데, 난간에 기대니 쓸쓸히 비가 그친다(怒髮衝冠,憑闌處、瀟瀟雨歇)”로 시작한다. 중국에서 가장 널리 애송되는 애국 시가의 하나이다.

다만 이 사가 정말 악비의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송·원대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고 명나라 때 처음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20세기에 위작설이 제기되었고, 덩광밍(鄧廣銘) 등은 이를 반박해 악비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7]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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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헌(趙憲)은 1591년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고 청한 상소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쓸개가 찢어지며 노한 머리털이 관을 찌른다(心崩膽割。怒髮衝冠)”고 썼다.[8]
  • 《숙종실록》 숙종 29년(1703) 6월 19일 기사에서 숙종은 남관왕묘(南關王廟)에 들러 “관우의 충절을 깊이 사모해 왔는데 사당에 들어와 소상을 보니 감회가 더욱 깊어 노한 머리털이 관을 찌르게 한다(令人怒髮衝冠矣)”고 했다.[9]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怒 노 성내다 크게 성이 나다
髮 발 터럭, 머리털 머리카락
衝 충 찌르다, 부딪치다 치밀어 올리다
冠 관 갓, 관 머리에 쓴 관
  • 고객 개인정보를 빼돌려 판 내부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들은 노발충관했다.
  • 선열의 유품이 해외 경매에 헐값으로 나왔다는 소식에 노발충관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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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상충관(髮上衝冠), 노발상충관(怒髮上衝冠): 같은 뜻. 뒤의 것은 《사기》 원문 그대로의 형태이다. 나무위키 등에는 이 형태의 음이 ‘노발상위관’으로 적힌 경우가 있으나, ‘衝’의 음은 ‘충’이므로 ‘노발상충관’이 맞다.
  • 노발대발(怒發大發): 몹시 노하여 펄펄 뛰며 성을 냄. 발음은 비슷하지만 ‘발’이 ‘머리털(髮)’이 아니라 ‘일어나다(發)’이다.
  • 분기탱천(憤氣撐天):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격렬하게 북받쳐 오름.
  •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
  • 교아절치(咬牙切齒), 노불가알(怒不可遏):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드는 중국어 성어.[2]
  • 반대 의미: 심평기화(心平氣和), 평심정기(平心靜氣): 마음이 평온하고 기운이 온화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노발충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5%B8%EB%B0%9C%EC%B6%A9%EA%B4%80,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怒髮衝冠”,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64, 확인날짜=2026-09-27.
  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怒髪冠を衝く”,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0%92%E9%AB%AA%E5%86%A0%E3%82%92%E8%A1%9D%E3%81%8F,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사마천, 《사기》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5. ↑ 노심(盧諶), 〈남고시(覽古詩)〉, 《문선(文選)》 권21.
  6. ↑ 대휴정(戴休珽), 〈고의(古意)〉, 《전당시(全唐詩)》 권771.
  7. ↑ 왕쩡위(王曾瑜), “岳飞《满江红》词真伪之争辨及其系年”, 《문사지식(文史知識)》 2007년 제1기, 중국작가망 게재, https://www.chinawriter.com.cn/n1/2023/0129/c442005-32613628.html, 확인날짜=2026-09-27.
  8.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조헌, 《중봉집(重峰集)》,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 자료ID ITKC_MO_0230A_0090_010_001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0A_009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7.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8권, 숙종 29년 6월 19일 계사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2906019_002,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