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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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귀조(完璧歸趙)는 구슬을 온전히 하여 조(趙)나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온전하게 되돌리거나 어떤 물건을 온전히 되가져옴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중국 전국 시대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화씨(和氏)의 구슬을 진(秦)나라에 빼앗기지 않고 고스란히 되찾아 온 고사에서 나왔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뜻하는 완벽(完璧)이 바로 이 말의 앞 두 글자이다.
빌려 온 물건을 흠 없이 돌려주거나, 맡은 것을 잃지 않고 온전히 되가져오는 일을 가리킨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이 말을 “물건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감”의 비유로 풀이하고, 가까운 말로 ‘물귀원주(物歸原主)’를, 반대말로 ‘거위기유(據為己有, 제 것으로 차지함)’를 든다. 같은 뜻의 다른 형태로 ‘원벽귀조(原璧歸趙)’와 ‘완귀조벽(完歸趙璧)’도 싣는다.[2]
지금 중국어에서는 이 말을 빌린 책이나 돈, 맡긴 물건을 온전히 돌려준다는 뜻으로 흔히 쓴다. 한국어에서는 네 글자 그대로 쓰는 일은 드물고, 대신 줄인 말 ‘완벽’이 ‘흠 없이 완전함’이라는 뜻의 일상어가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3] 조나라 혜문왕(惠文王) 때 초(楚)나라의 보배인 화씨의 구슬(和氏璧)이 조나라에 들어왔다. 진나라 소왕(昭王)이 이 소식을 듣고 성 열다섯 개와 구슬을 바꾸자는 글을 보내왔다. 구슬을 주자니 성은 받지 못하고 속기만 할 것 같고, 주지 않자니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올까 두려웠다. 환관의 우두머리 무현(繆賢)이 자신의 사인(舍人) 인상여를 천거했고, 불려 온 인상여는 “진나라가 성으로 구슬을 구하는데 조나라가 들어주지 않으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고, 조나라가 구슬을 주었는데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 있다”며 구슬을 보내자고 했다. 누구를 보낼지 묻는 왕에게 인상여는 이렇게 답했다.
王必無人,臣願奉璧往使。城入趙而璧留秦;城不入,臣請完璧歸趙。
“왕께 달리 사람이 없으시다면 신이 구슬을 받들고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성이 조나라에 들어오면 구슬은 진나라에 두고,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이 구슬을 온전히 하여 조나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마지막 구절이 그대로 성어가 되었다.
진나라 왕은 장대(章臺)에서 구슬을 받자 기뻐하며 후궁과 신하들에게 돌려 보일 뿐 성을 줄 뜻을 보이지 않았다. 인상여는 “구슬에 티가 있으니 가리켜 드리겠다”며 구슬을 돌려받고는 기둥에 기대 서서, 머리털이 곤두서 관을 찌를 듯한 기세로 “대왕께서 굳이 신을 몰아붙이신다면 신의 머리는 지금 구슬과 함께 기둥에 부딪쳐 부서질 것(臣頭今與璧俱碎於柱矣)”이라고 했다. 진나라 왕이 지도를 가져오게 해 열다섯 성을 가리켜 보이자, 인상여는 이것도 거짓이라고 보고 닷새 동안 재계한 뒤 구빈(九賓)의 예를 갖추어야 구슬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인상여는 수행원에게 허름한 베옷을 입혀 구슬을 품고 샛길로 조나라에 돌려보냈다. 닷새 뒤 인상여는 진나라 왕 앞에서 이 사실을 밝히고 끓는 가마솥의 형벌도 받겠다고 했으나, 진나라 왕은 그를 죽여도 구슬은 얻지 못하고 두 나라의 우호만 끊어진다며 예를 갖추어 돌려보냈다.[3]
相如既歸,趙王以爲賢大夫使不辱於諸侯,拜相如爲上大夫。秦亦不以城予趙,趙亦終不予秦璧。
“인상여가 돌아오자 조나라 왕은 그가 제후에게 사신으로 가서 욕되지 않게 한 어진 대부라 하여 상대부(上大夫)로 삼았다. 진나라도 끝내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았고, 조나라도 끝내 구슬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
같은 열전에서 노발충관(怒髮衝冠), 문경지교(刎頸之交), 부형청죄(負荊請罪)도 나왔다. 성 여러 개와 맞먹는 값이라는 뜻의 가치연성(價值連城)도 이 구슬에서 나온 말이다.[2]
북송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권4는 이 일을 주 난왕(赧王) 32년(기원전 283년) 조에 싣고, 같은 대목을 “신이 구슬을 온전히 하여 돌아오겠습니다(臣請完璧而歸)”로 줄여 적었다.[4] 조선에서도 ‘완벽이귀(完璧而歸)’의 형태가 자주 쓰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완벽’의 뜻으로 “결함이 없이 완전함”과 함께, 고사 그대로 “어떤 물건을 온전히 되가져옴”을 싣고 이것을 ‘완벽귀조’와 같은 말로 본다.[5] 곧 ‘완벽’은 원래 ‘구슬을 온전히 지킨다’는 동사구였고, 그것이 ‘빠짐없이 온전히 갖춤’을 거쳐 ‘흠이 전혀 없음’이라는 뜻으로 넓어졌다. 일본어 ‘完璧(かんぺき)’도 같은 길을 걸었으며, 이 뜻의 변화는 완벽 문서에 자세하다.
이 때문에 ‘완벽’의 ‘벽’은 흙벽(壁)이 아니라 구슬(璧)이다.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고사를 알면 ‘璧’을 ‘壁’으로 잘못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적는다.[6] 한국에서도 같은 ‘璧’ 자를 쓰는 ‘쌍벽(雙璧)’을 대부분의 사람이 ‘雙壁’으로 잘못 쓴다는 지적이 있다.[7]
- 조선 전기 문인 이행(李荇), 신광한(申光漢), 김정(金淨)의 문집에는 모두 〈인상여완벽귀조(藺相如完璧歸趙)〉라는 같은 제목의 시가 실려 있고, 신광한의 시에는 정시(庭試)에서 지은 것이라는 주가 붙어 있다. 과거 시험의 시제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8] 무하옹 이원손(李元孫)의 〈완벽귀조론(完璧歸趙論)〉처럼 이 고사를 논한 글도 있다.[9]
- 인조 6년(1628) 인조는 회답사(回答使)로 다녀온 정문익(鄭文翼) 등이 “사신으로 이역에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고 다섯 사람을 쇄환해 왔으며, 모두 온전히 돌아왔다(奉使異域,不辱君命,刷送五人,亦皆完璧而歸)”며 상을 내리게 했다.[10]
- 영조 2년(1726) 영조는 청나라에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청하러 가는 주청사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청나라의 뇌물 풍조를 걱정하는 사신들에게 “사신이 지성을 다하면 정성이 닿는 곳에 쇠와 돌도 뚫린다. 옛날 인상여가 구슬을 온전히 하여 돌아왔을 때 과연 뇌물을 쓴 일이 있었는가(昔者藺相如完璧而歸,其時果有用賂之事乎)”라고 했다.[11]
- ‘완벽’이 받은 것을 사양하여 되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쓰인 광해군·인조 대의 《조선왕조실록》 용례는 완벽 문서에 있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完 | 완 | 완전하다 | 온전히 하다 |
| 璧 | 벽 | 둥근 옥 | 화씨의 구슬 |
| 歸 | 귀 | 돌아가다 | 돌아오다 |
| 趙 | 조 | 나라 이름 | 조나라 |
‘璧’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둥글넓적한 옥이다.
- 테스트용으로 빌린 보안 장비를 흠집 하나 없이 완벽귀조했다.
- 장애 복구 후 모든 고객 데이터를 손실 없이 되살렸으니 말 그대로 완벽귀조였다.
- 빌려 간 책을 깨끗하게 완벽귀조하는 친구는 드물다.
-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은 사론 〈인상여(藺相如)〉에서 “인상여가 구슬을 온전히 한 일을 사람마다 칭송하지만 나는 감히 믿지 못하겠다(藺相如之完璧,人人皆稱之,余未敢以為信也)”고 했다. 진나라가 끝내 성을 내주지 않으면 그 잘못을 따지며 죽음을 청할 일이지, 수행원을 시켜 구슬을 몰래 돌려보내 명분을 진나라에 넘겨준 것은 위험한 수였다는 것이다. 진나라 왕이 노하여 인상여를 죽이고 백기(白起)의 대군이 한단을 압박했다면 구슬도 끝내 진나라로 들어갔을 것이므로, 인상여가 구슬을 온전히 지킨 것은 하늘이 도운 것(藺相如之獲全於璧也,天也)이라고 보았다.[12] 청나라 때 엮은 문장 선집 《고문관지(古文觀止)》 권12에 〈인상여완벽귀조론(藺相如完璧歸趙論)〉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널리 읽혔다.[13]
- 박지원(朴趾源)은 〈옥새론(玉璽論)〉에서 인상여가 온전히 지켜 낸 이 구슬이 뒤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다시 진나라로 들어가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길이 창성하리라(受命于天,旣壽永昌)’를 새긴 전국새(傳國璽)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고, 옛날에는 도(道)로 나라를 전했는데 지금은 보물로 나라를 전한다고 비판했다.[14]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완벽귀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84%EB%B2%BD%EA%B7%80%EC%A1%B0,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完璧歸趙”,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340,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3.3 사마천, 《사기》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권4 〈주기(周紀) 4〉 난왕 32년.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완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84%EB%B2%BD, 확인날짜=2026-09-27.
- ↑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完璧”,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E%8C%E7%92%A7, 확인날짜=2026-09-27.
- ↑ 최태호,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완벽(完璧)과 쌍벽(雙璧)”, 프레시안, 2021-04-23,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2309030417171, 확인날짜=2026-09-27.
- ↑ 신광한(申光漢), 《기재집(企齋集)》 권5, 〈인상여완벽귀조 정시(藺相如完璧歸趙 庭試)〉,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116A_0050_010_083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116A_0050_010_0830, 확인날짜=2026-09-27.
- ↑ 이원손(李元孫), 《무하옹집(無何翁集)》 하, 〈완벽귀조론(完璧歸趙論)〉,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678A_0030_040_002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678A_0030_040_0020,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인조 6년 10월 16일 계묘, https://sjw.history.go.kr/id/SJW-A06100160-00600,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2년 2월 8일, https://sjw.history.go.kr/id/SJW-F02020080-04910, 확인날짜=2026-09-27.
- ↑ 왕세정(王世貞), 《엄주사부고(弇州四部稿)》 권110 〈사론(史論)〉 ‘인상여(藺相如)’.
- ↑ 오초재(吳楚材)·오조후(吳調侯) 편, 《고문관지(古文觀止)》 권12 〈인상여완벽귀조론(藺相如完璧歸趙論)〉.
- ↑ 박지원(朴趾源), 《연암집(燕巖集)》 권1, 〈옥새론(玉璽論)〉,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568A_0010_040_001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568A_0010_040_001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