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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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百戰老將)은 수많은 싸움을 치른 노련한 장수를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비유적으로는 온갖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노련한 사람을 이른다.[1]
본래는 전쟁터를 오래 누빈 늙은 장수를 가리키지만, 오늘날에는 어떤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로 더 자주 쓴다. “협상의 백전노장”, “선거판의 백전노장”처럼 쓰며, 스포츠에서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선수를 이르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둘째 뜻의 비슷한 말로 ‘백전노졸(百戰老卒)’을, 첫째 뜻의 비슷한 말로 ‘유연노장(幽燕老將)’을 든다.[1]
비슷해 보이는 ‘노익장(老益壯)’은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점점 좋아짐”을 뜻하는 말로,[2] 나이에 비해 기운이 좋다는 데 초점이 있다. 백전노장은 기력보다 오랜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에 초점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신경백전(身經百戰)’을 흔히 쓰고,[3] 일본어에서는 ‘백전연마(百戦錬磨, ひゃくせんれんま)’를 흔히 쓴다.[4]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며, 글자 뜻 그대로의 말이다.
같은 네 글자가 보이는 이른 예는 남송의 서몽신(徐夢莘)이 엮은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권47에 인용된 《정강소아(靖康小雅)》이다. 1126년(정강 원년) 금나라 군대에 포위된 태원(太原)을 구하러 가던 송나라 장수 충사중(种師中)은 군량이 떨어진 채 싸우다 전사했는데, 《정강소아》는 조정에서 군사를 모르면서 멀리서 진격을 재촉한 허한(許翰)을 이렇게 비판했다.
古者閫外之事,將軍制之,然後可以責其成功,趙充國,百戰老將,猶曰:「百聞不如一見。」翰腐儒,不知兵,多妄意遥度,迫公使前,不容措置。
“옛날에는 도성 문 밖의 일은 장군이 결정하게 한 뒤에야 그 성패를 따졌다. 조충국(趙充國)은 백전노장이었는데도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그런데 허한은 썩은 선비로 군사를 알지 못하면서 제멋대로 멀리서 헤아려 공(충사중)을 앞으로 내몰고 채비할 틈도 주지 않았다.”
한나라의 명장 조충국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강족(羌族) 토벌을 맡으면서 금성(金城)에 직접 가서 보고 계책을 세우겠다며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고, 군사는 멀리서 헤아리기 어렵다(百聞不如一見。兵難隃度)”고 한 인물로, 여기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나왔다.[6] 곧 이 대목에서 ‘백전노장’은 경험 많은 장수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민국 시기 차이둥판(蔡東藩)의 역사 연의 소설에서는 후한의 마무(馬武)나 남조 송의 심경지(沈慶之)를 “백전노장”이라 부르며 앞장서 적진에 뛰어드는 장수로 그렸다.[7]
조선에서는 18세기 홍양호(洪良浩)가 이헌경(李獻慶)이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의 백 운 만시에 차운한 작품을 평하면서 “마치 백전노장이 굳센 적과 맞서 진을 친 것처럼 형세에 따라 변화에 응하며 기병과 정병을 섞어 내니, 한 가지 법도만 따를 수 없다(譬如百戰老將與勁敵對壘。隨機應變。雜出奇正。不能一循於範驅)”고 해, 노련한 시 솜씨를 장수에 빗댔다.[8]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원문에서는 百戰老將이 보이지 않는다.[9]
현대 한국어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 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박종화의 소설 《임진왜란》에서 “육지 싸움에 백전노장인 권 장군과 바다 싸움에 천 번을 싸워서 천 번을 이긴 노련한 두 영웅”이라는 대목을 용례로 든다.[1]
| 언어 | 표현 | 비고 |
|---|---|---|
| 한국어 | 백전노장(百戰老將), 백전노졸 | 비유적으로 노련한 사람 |
| 중국어 | 身經百戰(shēnjīng bǎizhàn) | 당나라 낭사원 〈새하곡〉의 “身經百戰曾百勝”이 용례로 올라 있다 |
| 일본어 | 百戦錬磨(ひゃくせんれんま) | 첫 용례는 사토 고세키(佐藤垢石)의 《수필 너구리국(随筆たぬき汁)》(1941) |
《성어전》은 신경백전을 “수많은 전투나 어려움을 겪었음”으로 풀이하고, 당나라 낭사원(郎士元)의 〈새하곡(塞下曲)〉 “보검 찬 변방의 사내는 몸소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寶刀塞下兒,身經百戰曾百勝)”를 용례로 든다.[3] 일본어 백전연마는 “여러 번 싸우거나 경험을 쌓아 단련됨”을 뜻한다.[4]
- 그는 노사 협상만 스무 해를 해 온 백전노장이다.
- 수많은 침해 사고를 겪은 백전노장 보안 관제 요원은 경보 몇 줄만 보고도 오탐인지 실제 공격인지 가려낸다.
- 결승전에서 백전노장 골키퍼가 침착하게 승부차기를 막아 냈다.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전노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A0%84%EB%85%B8%EC%9E%A5,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노익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5%B8%EC%9D%B5%EC%9E%A5, 확인날짜=2026-09-30.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身經百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237, 확인날짜=2026-09-30.
- ↑ 4.0 4.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百戦錬磨”,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E%E6%88%A6%E9%8C%AC%E7%A3%A8, 확인날짜=2026-09-30.
- ↑ 서몽신(徐夢莘),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권47, 《정강소아(靖康小雅)》 인용.
-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69 〈조충국전(趙充國傳)〉.
- ↑ 차이둥판(蔡東藩), 《후한연의(後漢演義)》 제24회; 《남북사연의(南北史演義)》 제18회.
- ↑ 홍양호(洪良浩), 〈제이몽서헌경채희암만백운율(題李夢瑞獻慶蔡希菴挽百韻律)〉, 《이계집(耳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551A_0170_010_026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百戰老將”, https://sillok.history.go.kr/;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검색 “百戰老將”, https://sjw.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백전노졸”,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B%B0%B1%EC%A0%84%EB%85%B8%EC%A1%B8,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유연노장”,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9C%A0%EC%97%B0%EB%85%B8%EC%9E%A5,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