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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백승(百戰百勝)은 싸울 때마다 다 이김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같은 뜻으로 ‘백전불패(百戰不敗)’라고도 한다.[1]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말로, 싸움이나 경쟁에서 한 번도 지지 않는 뛰어난 실력을 가리킨다. 전쟁뿐 아니라 운동 경기, 협상, 영업, 선거처럼 승부가 갈리는 모든 일에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백전백승을 자랑하던 챔피언이 신인 선수에게 덜미를 잡혔다”, “최 팀장은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만 하면 백전백승으로 계약을 따 내는 사람이다”를 용례로 든다.[1]

중국어(百战百胜, bǎi zhàn bǎi shèng)와 일본어(百戦百勝, ひゃくせんひゃくしょう)에서도 같은 뜻으로 쓴다.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말하지만, 《손자》의 원문은 “知彼知己,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이다. 더구나 《손자》는 백전백승을 최선이 아니라고 했다(아래 손자의 백전백승).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百 백 일백 백 번. 수가 많음
戰 전 싸우다 싸움
百 백 일백 백 번
勝 승 이기다 이김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관자(管子)》 〈칠법(七法)〉을 출전으로 든다.[2] 전쟁을 하려면 먼저 나라 안에서 계책을 정하고, 적의 정치·사정·장수·병사를 밝게 알아야 한다고 한 뒤 이렇게 맺는다.

是故以衆擊寡,以治擊亂,以富擊貧,以能擊不能,以教卒練士擊敺衆白徒,故十戰十勝,百戰百勝。

[3]

“그러므로 많은 수로 적은 수를 치고, 잘 다스려진 나라로 어지러운 나라를 치고, 부유한 나라로 가난한 나라를 치고, 유능한 장수로 무능한 장수를 치고, 훈련된 정예병으로 끌어모은 오합지졸을 치면 열 번 싸워 열 번 이기고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

‘백도(白徒)’는 훈련받지 않은 채 임시로 징발된 병사를 말한다.[2] 곧 이길 조건을 갖춘 뒤에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뜻이다.

손자의 백전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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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孫子)》 〈모공(謀攻)〉은 같은 말을 정반대의 방향에서 쓴다.[4]

凡用兵之法,全國為上,破國次之;全軍為上,破軍次之;全旅為上,破旅次之;全卒為上,破卒次之;全伍為上,破伍次之。是故百戰百勝,非善之善者也;不戰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

[4]

“무릇 군사를 쓰는 법은 적국을 온전히 두고 굴복시키는 것이 으뜸이고 적국을 깨뜨리는 것은 그다음이다. …… 그러므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

손자에게 백전백승은 이긴다 해도 그때마다 병력과 국력을 소모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不戰而屈人之兵)을 더 높이 쳤다. 같은 편 끝의 “知彼知己,百戰不殆”도 반드시 이긴다는 약속이 아니라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자세한 것은 지피지기 참고).

사기와 후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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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위세가(魏世家)〉에는 기원전 341년 무렵 위(魏)나라 태자 신(申)이 제나라를 치러 가다 외황(外黃)을 지날 때, 그곳의 서자(徐子)가 “제게 백전백승의 술(術)이 있다(臣有百戰百勝之術)”며 나선 이야기가 있다. 그가 말한 비결은 싸우지 말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겨도 태자의 부귀는 더 늘지 않지만 지면 위나라가 없어진다는 까닭이었다. 태자는 따르려 했으나 결국 싸웠고, 마릉(馬陵)에서 제나라에 크게 져 사로잡혔다.[5]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는 한신(韓信)에게 사로잡힌 조나라의 모사 이좌거(李左車, 광무군)가 한신에게 계책을 올리면서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에 한 번은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에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고 한 뒤, “성안군(成安君)은 백전백승의 계책이 있었으나 하루아침에 그것을 잃어 군대는 호(鄗) 아래에서 지고 몸은 저수(泜水) 가에서 죽었다(夫成安君有百戰百勝之計,一旦而失之,軍敗鄗下,身死泜上)”고 말한다.[6] 백 번 이길 계책도 한 번 쓰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으로, 천려일실의 출전과 같은 대목이다.

《삼국지(三國志)》 〈오서 주환전(朱桓傳)〉에서는 222년 조인(曹仁)이 유수(濡須)를 치러 오자, 오나라 장수 주환이 겁먹은 병사들에게 “우리는 높은 성에 의지해 남쪽으로 큰 강을 두고 북쪽으로 산을 등졌으니, 편안히 앉아 지친 적을 기다리고 주인으로서 손님을 제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백전백승의 형세이다(此百戰百勝之勢也)”라고 달래 싸움을 이겼다.[7]

《후한서(後漢書)》 〈황보숭전(皇甫嵩傳)〉에서는 188년 양주(涼州)의 반란군이 진창(陳倉)을 에워싸자, 동탁(董卓)이 서둘러 구원하자고 하는 데 대해 황보숭이 《손자》를 끌어 “백전백승은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만 못하다(百戰百勝,不如不戰而屈人之兵)”며 기다렸다가 지친 적을 쳐서 크게 이겼다.[8]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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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13건이 있다.[9] 1432년(세종 14) 세종은 회례연에 쓸 악장을 논하면서 “나는 대를 이었을 뿐이니 어찌 노래할 공덕이 있겠는가. 태조는 고려 말에 백전백승하여 공덕이 사람들에게 두루 미쳤고 난을 다스려 바른 데로 돌려 나라를 세웠다(太祖當前朝衰季,百戰百勝,功德洽人,拔亂反正,創業垂統)”며, 태조의 공덕을 기리는 무무(武舞)와 태종의 공덕을 기리는 문무(文舞)를 만들자고 했다.[10]

그보다 앞서 정도전(鄭道傳)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부전(賦典)〉에서 군량의 중요성을 말하며 “항우는 백전백승의 밑천을 믿었으나 하루아침에 군량이 떨어지자 싸움에 지고 몸이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項羽憑百戰百勝之資,而一朝糧餉不繼,戰敗身死,爲天下笑)”고 썼다.[11]

임진왜란 무렵에는 《손자》를 “知己知彼,百戰百勝”으로 바꿔 인용하는 예가 많았다. 유성룡(柳成龍)은 1594년에 쓴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의 척후(斥候) 조에서 “병법에 이르기를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고, 나를 모르고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라 했다(兵法曰,知己知彼,百戰百勝,不知己不知彼,百戰百敗)”고 썼다.[12] 원문과 다른 이 형태가 오늘날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으로 이어졌다.

잘못 알려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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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등에는 ‘백전백패(百戰百敗)’도 《손자》와 《사기》 〈회음후열전〉이 출전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두 책에는 ‘百戰百敗’가 나오지 않는다. 《손자》의 해당 구절은 “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이고,[4] ‘百戰百敗’ 네 글자는 《한서》 〈소하전〉의 “百戰百敗,不死何爲(백 번 싸워 백 번 지고도 죽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에 이미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백전백패 문서를 참고.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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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어: ‘百戦百勝(ひゃくせんひゃくしょう)’.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1591년 예수회가 간행한 로마자본 《산토스의 작업 발췌(サントスの御作業の内抜書)》의 “fiacuxen fiacuxô(百戦百勝)”를 초출로 든다.[13]
  • 베트남어: 한자어 ‘bách chiến bách thắng(百戰百勝)’으로 쓴다.
  • 중국어: ‘百战百胜’. 《성어전》은 《삼국지연의》 제35회의 “兵法云:知彼知己,百戰百勝”을 용례로 들어, 중국에서도 같은 변형이 쓰였음을 보여 준다.[2]
  • 모의 해킹에서 백전백승하던 레드팀도, 새로 도입한 이상 행위 탐지 시스템 앞에서는 번번이 막혔다.
  • 백전백승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낫다는 손자의 말처럼, 분쟁은 소송보다 협상으로 푸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
  • 그 기사는 한 판도 지지 않고 대회를 백전백승으로 마쳤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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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전불패(百戰不敗): 백 번 싸워도 지지 않음.[1]
  • 백전불태(百戰不殆):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음. 《손자》의 원문 표현.
  • 전무불승(戰無不勝):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일이 없음. 《성어전》은 《전국책》 〈제책 2〉의 용례를 든다.[14]
  • 공무불극(攻無不克), 소향무적(所向無敵): 《성어전》이 드는 근의어.[2]
  • 승승장구(乘勝長驅): 이긴 기세를 타고 계속 몰아침.
  • 반대 의미: 삼전삼배(三戰三北), 누전누패(屢戰屢敗).[2]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전백승”,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A0%84%EB%B0%B1%EC%8A%B9, 확인날짜=2026-09-28.
  2.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百戰百勝”,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48, 확인날짜=2026-09-28.
  3. ↑ 《관자(管子)》 〈칠법(七法)〉.
  4. ↑ 4.0 4.1 4.2 《손자(孫子)》 〈모공(謀攻)〉.
  5.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44 〈위세가(魏世家)〉.
  6.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7.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56 〈오서(吳書) 주치주연여범주환전(朱治朱然呂範朱桓傳)〉.
  8. ↑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71 〈황보숭주준열전(皇甫嵩朱儁列傳)〉.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百戰百勝”,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 5월 7일 갑자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405007_001, 확인날짜=2026-09-28.
  11. ↑ 정도전(鄭道傳),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부전(賦典)〉, 《삼봉집(三峯集)》 권7,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4A_0100_010_0070, 확인날짜=2026-09-28.
  12. ↑ 유성룡(柳成龍),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 《서애집(西厓集)》 권14,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24A_014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8.
  1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百戦百勝”,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E%E6%88%A6%E7%99%BE%E5%8B%9D, 확인날짜=2026-09-28.
  14.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수정본 참고 자료, “戰無不勝”,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176,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