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백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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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가 그대로 나오는 이른 예는 《한서(漢書)》 〈소하전(蕭何傳)〉이다. 항우가 유방을 험한 파촉·한중의 왕으로 봉하자 유방이 화가 나 항우를 치려 했고, 주발·관영·번쾌가 모두 부추겼다. 이때 소하(蕭何)가 말렸다.
何諫之曰:「雖王漢中之惡,不猶愈於死乎?」漢王曰:「何爲乃死也?」何曰:「今眾弗如,百戰百敗,不死何爲?……夫能詘於一人之下,而信於萬乘之上者,湯武是也。臣願大王王漢中,養其民以致賢人,收用巴蜀,還定三秦,天下可圖也。」
“한중의 왕이 되는 것이 나쁘다 해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한왕이 “어째서 죽는다는 것인가?” 하고 묻자 소하가 말했다. “지금 우리 군사가 저들만 못하니 백 번 싸우면 백 번 질 것입니다. 죽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 한 사람 아래에서 몸을 굽혀 만승의 위에서 뜻을 펴는 것은 탕왕과 무왕이 그러했습니다. 대왕께서는 한중의 왕이 되어 백성을 기르고 어진 이를 모으며, 파촉을 거두어 쓰고 다시 삼진을 평정하시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한왕은 이 말을 따라 한중으로 가서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3] 지금 맞서면 반드시 지니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리라는 말로, 백전백패를 피하는 길을 말한 셈이다. 이 간언은 《사기》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는 없고 《한서》에 실려 있으며, 송나라 《태평어람》도 이를 인용했다.[4]
조선에서는 ‘백전백승’과 짝을 지어 쓴 예가 많다. 1528년(중종 23) 야대(夜對)에서 검토관 최홍제(崔弘濟)는 초한 쟁패 대목을 강하다가 “항적(항우)은 백전백승하고 유계(유방)는 백전백패했으나 끝의 성패가 달랐다(項籍則百戰百勝;劉季則百戰百敗,而其終成敗有異)”며, 그 까닭을 “굳세고 강하기만 한 자는 반드시 죽고 인의를 갖춘 자가 왕이 된다”는 옛말로 설명했다.[5]
임진왜란 때에는 거듭 져도 의병을 일으키자는 격문에 쓰였다. 1592년 김성일(金誠一)은 경상도 사민에게 보낸 초유문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古之忠臣烈士,不以成敗易志,强弱挫氣,義所當爲,則雖百戰百敗,猶張空拳冒白刃,萬死而不悔。
“옛 충신과 열사는 성패 때문에 뜻을 바꾸지 않고 강약 때문에 기가 꺾이지 않았다. 의리상 마땅히 할 일이면 백 번 싸워 백 번 지더라도 맨주먹을 휘두르며 흰 칼날을 무릅쓰고, 만 번 죽어도 뉘우치지 않았다.”
1597년(선조 30) 칠천량에서 수군이 무너진 뒤에는 비변사가 “예로부터 큰일을 이룬 사람은 백전백패해도 뜻과 기운이 꺾이지 않았다(古之能濟大業者,百戰百敗,而志氣不挫)”고 아뢰었다.[7] 이보다 앞서 1594년 겨울 유성룡(柳成龍)은 《손자》를 바꾸어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고, 나를 모르고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不知己不知彼,百戰百敗)”라고 인용했다.[8]
나무위키 등에는 백전백패의 출전이 《손자병법》과 《사기》 〈회음후열전〉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두 책에는 ‘百戰百敗’가 나오지 않는다. 《손자》 〈모공(謀攻)〉의 해당 구절은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이다.[9] 네 글자의 출전은 위에서 본 《한서》 〈소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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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전백패”,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A0%84%EB%B0%B1%ED%8C%A8, 확인날짜=2026-10-11.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백전백패하다”,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B%B0%B1%EC%A0%84%EB%B0%B1%ED%8C%A8, 확인날짜=2026-10-11.
- ↑ 3.0 3.1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39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 ↑ 이방(李昉) 등,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52 〈인사부(人事部)〉.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61권, 중종 23년 5월 11일 신사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2305011_003, 확인날짜=2026-10-11.
- ↑ 김성일(金誠一), 〈초유일도사민문(招諭一道士民文) 임진〉, 《학봉집(鶴峯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210A_0040_040_001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210A_0040_040_0010,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90권, 선조 30년 7월 22일 신해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007022_004, 확인날짜=2026-10-11.
- ↑ 유성룡(柳成龍),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 《서애집(西厓集)》 권14,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224A_0140_010_001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224A_0140_010_0010, 확인날짜=2026-10-11.
- ↑ 《손자(孫子)》 〈모공(謀攻)〉.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屢戰屢敗”,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5874, 확인날짜=2026-10-11.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百戰百勝”,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48,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