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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상사(兵家常事)는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군사를 부리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는 뜻으로, 한 번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니 낙심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1][2]

흔히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 “승패는 병가상사”처럼 앞에 ‘승패(勝敗)’나 ‘승부(勝負)’를 붙여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 군사 전문가도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임을 이르는 말, 「2」 실패하는 일은 흔히 있으므로 낙심할 것이 없다는 말, 두 가지 뜻을 싣는다.[1] 운동 경기·시험·사업처럼 승부가 갈리는 일에서 진 사람을 위로하거나, 진 쪽이 스스로를 다잡을 때 많이 쓴다.

중국어에서는 ‘勝敗乃兵家常事(승패는 병가의 늘 있는 일이다)’라는 형태가 굳어 있고,[3] 일본어에서는 ‘勝敗は兵家の常(しょうはいはへいかのつね)’라고 한다.[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兵 병 군사, 병기, 전쟁 군사
家 가 집, 전문가 병가(兵家): 군사를 부리는 사람, 병법가
常 상 늘, 떳떳하다 늘 있는, 흔한
事 사 일 일

당 헌종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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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뿌리로 꼽히는 것은 당나라 헌종(憲宗)의 말이다. 816년(원화 11) 6월, 회서(淮西)의 반란군 오원제(吳元濟)를 치던 당등(唐鄧) 절도사 고하우(高霞寓)가 철성(鐵城)에서 크게 지자 조정 안팎이 술렁였고, 재상들은 군사를 거두자고 건의하려 했다. 그러자 헌종은 이렇게 말했다.

夫一勝一負,兵家常勢。若帝王之兵不合敗,則自古何難於用兵,累聖不應留此兇賊。今但論此兵合用與否,及朝廷制置當否,卿等唯須要害處置。……何可以一將不利,便沮成計?

[5]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병가의 늘 있는 형세이다. 제왕의 군대는 져서는 안 된다면 예로부터 군사를 쓰는 일이 무엇이 어려웠겠으며, 여러 선대 임금께서 이 흉적을 남겨 두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이 싸움이 필요한지, 조정의 조치가 마땅한지만 따져라. …… 어찌 장수 하나가 졌다고 세운 계책을 꺾겠는가?”

이 말 덕분에 재상들은 더 말하지 못했고, 끝까지 싸우자고 한 재상 배도(裴度)의 계책이 시행되었다.[5] 같은 일은 《구당서》 〈헌종본기〉에 “勝負兵家常勢,不可以一將失利,便沮成計”로,[6] 《신당서》 〈배도전〉에 “一勝一負,兵家常勢”로 실려 있다.[7] 회서는 이듬해 배도가 직접 독전한 끝에 평정되었다.

원문의 글자는 ‘상사(常事)’가 아니라 ‘상세(常勢)’이다. 나무위키 등에는 《신당서》 〈배도전〉에 ‘勝敗兵家之常事’가 나온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원문을 확인해 보면 《신당서》와 《구당서》 모두 ‘兵家常勢’라고 적었고 그 말을 한 사람도 배도가 아니라 헌종이다.

‘兵家常事’라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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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家常事’ 네 글자는 《요사(遼史)》 〈야율합리지전(耶律合里只傳)〉에 보인다. 거란의 야율합리지가 11세기 중엽 송나라에 생일 축하 사신으로 갔을 때, 연회에서 광대가 거란 장수 소혜(蕭惠)가 하서(河西)에서 진 일을 놀리자 이렇게 받아쳤다.

勝負兵家常事。我嗣聖皇帝俘石重貴,至今興中有石家寨。惠之一敗,何足較哉!

[8]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 늘 있는 일이다. 우리 사성황제(태종)께서는 (후진의 황제) 석중귀를 사로잡으셨으니 지금도 흥중(興中)에 석가채(石家寨)가 있다. 소혜가 한 번 진 것을 어찌 따질 것이 있겠는가!” 송나라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며 탄복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거란 황제는 “광대가 말을 잘못했다 해도 어찌 두 나라의 우호를 해칠 수 있는가”라며 야율합리지에게 매 2백 대를 치고 관직을 빼앗았다. 그는 청녕(淸寧) 초에 다시 기용되었다.

명나라 소설에서는 ‘勝敗乃兵家常事’가 관용구로 굳었다. 《성어전》은 《수호전》 제55회에서 오용(吳用)이 송강을 달래는 “형님은 걱정 마십시오. 승패는 병가의 늘 있는 일이니 마음에 둘 것이 무엇입니까(哥哥休憂,勝敗乃兵家常事,何必掛心)”를 용례로 든다.[3] 《삼국지연의》 제31회에서도 관우가 패한 유비를 위로하며 “한 고조도 항우에게 여러 번 졌다”고 한 뒤 ‘승부는 병가의 늘 있는 일(勝負兵家之常)’이라고 말한다.[9]

조선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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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兵家常事’가 15건 있다.[10] 가장 이른 1437년(세종 19)의 예는 뜻이 조금 다르다. 김종서(金宗瑞) 등이 야인 토벌 계획을 올리면서 “동쪽을 치면서 서쪽을 대비하고 서쪽을 치면서 동쪽을 대비하는 것은 병가의 늘 하는 일(擊東備西,擊西備東,兵家常事)”이라고 했는데,[11] 여기서는 ‘승패’가 아니라 ‘군사를 부리는 데 늘 쓰는 방법’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오늘날과 같은 위로와 독려의 말로 쓰였다. 1593년 1월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벽제관에서 진 뒤 군사를 물리려 하자, 유성룡(柳成龍)은 “승부는 병가의 늘 있는 일이니 형세를 보아 다시 나아가야 한다. 어찌 가벼이 움직이는가(勝負兵家常事,當觀勢更進,柰何輕動)”라며 말렸다.[12] 1597년(선조 30)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무너진 뒤에는 선조가 비망기를 내려 대신들을 꾸짖었다.

勝負,兵家常事,閑山之敗,不足憂也。漢高祖十戰九敗,終有天下。彭城之戰,覆沒五十萬衆,未聞漢廷大臣,以此而氣沮也。

[13]

“승부는 병가에 늘 있는 일이니 한산의 패전은 걱정할 것이 없다. 한 고조는 열 번 싸워 아홉 번 졌으나 끝내 천하를 얻었다. 팽성 싸움에서 50만 군사를 잃었어도 한나라 조정의 대신들이 그 때문에 기가 꺾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 침투 테스트에서 한 번 뚫렸다고 보안팀을 탓할 일은 아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이니 원인을 찾아 고치면 된다.
  • 첫 투자 유치에 실패했지만 병가상사로 여기고 사업 계획을 다시 다듬었다.
  • 결승에서 졌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라. 승패는 병가상사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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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패 병가상사(勝敗兵家常事):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전쟁하는 사람에게 늘 있는 일이니, 승패에 관계없이 노력해야 함.[2]
  •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같은 뜻의 말.
  • 일승일부(一勝一負): 한 번 이기고 한 번 짐. 헌종의 말에 나오는 표현.
  •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움.
  • 칠전팔기(七顚八起), 권토중래(捲土重來):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섬.
  • 백전백패(百戰百敗), 백전백승(百戰百勝): 싸울 때마다 짐, 싸울 때마다 이김.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병가상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3%91%EA%B0%80%EC%83%81%EC%82%AC, 확인날짜=2026-10-11.
  2. ↑ 2.0 2.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병가상사”·“승패 병가상사”,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B%B3%91%EA%B0%80%EC%83%81%EC%82%AC, 확인날짜=2026-10-11.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勝敗乃兵家常事”,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3443, 확인날짜=2026-10-11.
  4. ↑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勝敗は兵家の常”,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B%9D%E6%95%97%E3%81%AF%E5%85%B5%E5%AE%B6%E3%81%AE%E5%B8%B8, 확인날짜=2026-10-11.
  5. ↑ 5.0 5.1 유후(劉昫) 등, 《구당서(舊唐書)》 권170 〈배도전(裴度傳)〉.
  6. ↑ 유후(劉昫) 등, 《구당서(舊唐書)》 권15 〈헌종본기 하(憲宗本紀下)〉 원화 11년 6월.
  7. ↑ 구양수(歐陽脩)·송기(宋祁), 《신당서(新唐書)》 권173 〈배도전(裴度傳)〉.
  8. ↑ 탈탈(脫脫) 등, 《요사(遼史)》 권86 〈야율합리지전(耶律合里只傳)〉.
  9. ↑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31회.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兵家常事”,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1.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4월 11일 경오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904011_002, 확인날짜=2026-10-11.
  12. ↑ 유성룡(柳成龍), 《서애집(西厓集)》 연보(年譜),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224A_0270_000_001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224A_0270_000_0010, 확인날짜=2026-10-11.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90권, 선조 30년 7월 22일 신해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007022_004,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