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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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일언(三思一言)은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한다는 뜻으로, 말을 할 때는 신중히 생각한 뒤에 해야 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세 번 생각한다(三思)’는 말의 뿌리는 《논어》 〈공야장〉이다.
季文子三思而後行。子聞之曰:「再,斯可矣!」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한 뒤에 행하였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두 번이면 된다.’” 계문자(季文子)는 춘추 시대 노나라의 대부 계손행보(季孫行父)이다. 《성어전》은 공자가 신중함도 지나치면 머뭇거림이 되어 일을 그르친다고 보아 “두 번이면 충분하다”고 한 것으로 설명한다.[4] 곧 이 대목은 원래 세 번 생각함을 칭찬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뒤에는 ‘삼사이행(三思而行)’이 “여러 번 생각한 뒤에 행동한다”는 신중함의 덕목으로 굳었다.[4] 《논어》 〈계씨〉에서 공자가 군자가 생각할 아홉 가지(九思)로 “말은 진실할 것을 생각한다(言思忠)”를 든 것도 함께 인용되곤 한다.[6]
‘세 번 생각하고 말한다’는 짝은 북주(北周)의 원로 우근(于謹)의 말에 보인다. 563년 북주 무제가 태학에서 우근을 삼로(三老)로 모시고 가르침을 청하자, 우근은 이렇게 아뢰었다.
言行者立身之基,言出行隨,誠宜相顧。願陛下三思而言,九慮而行。若不思不慮,必有過失。天子之過,事無大小,如日月之蝕,莫不知者。願陛下慎之。
“말과 행동은 몸을 세우는 바탕이니, 말이 나가면 행동이 따라야 하므로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세 번 생각한 뒤에 말하시고, 아홉 번 헤아린 뒤에 행하소서. 생각하고 헤아리지 않으면 반드시 허물이 생깁니다. 천자의 허물은 크든 작든 일식·월식과 같아서 모르는 이가 없으니, 폐하께서는 삼가소서.” 이 말은 《자치통감》 권169에도 실려 널리 읽혔고,[8] 조선에서도 1494년(성종 25) 사간원·사헌부의 상소가 “성스러운 제왕과 밝은 임금이 세 번 생각하고 말하며 아홉 번 헤아리고 행한(三思而言九慮而行)” 까닭을 들었고,[9] 이듬해 연산군이 즉위하자 신하들은 우근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전하께서는 세 번 생각하고 말하시고 아홉 번 헤아리고 행하시어 허물이 없게 하소서”라고 간언하였다.[10]
‘三思一言’ 네 글자는 중국 고전과 한국 고전 원문에서 찾을 수 없고, 일본 문헌에서 먼저 확인된다. 《일본국어대사전》은 남북조 시대 무렵의 《소가 이야기(曾我物語)》 권10의 “이것이야말로 삼사일언, 생각이 있어야 할 일이로다(これや、さんし一けん、思慮有るべきにや)”를 첫 용례로 든다.[2] 비슷한 꼴의 ‘구사일언(九思一言)’은 1277년 니치렌(日蓮)의 편지에 “공자라는 현인은 구사일언이라 하여, 아홉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였다”로 나온다.[3]
전국 시대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아우 다케다 노부시게(武田信繁)가 1558년 아들에게 남긴 99개 조 가훈에는 “아무리 가까운 벗이라도 남 앞에서 함부로 잡담하지 말 것”이라는 조목에 “옛말에 이르기를 삼사일언 구사일행(語云、三思一言九思一行)”이라는 근거가 붙어 있다.[11] ‘옛말’로 인용한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격언으로 굳어 있었다. 이 가훈은 메이지 시대에 《일본윤리사고(日本倫理史稿)》(1901), 《무사도가훈집(武士道家訓集)》(1906) 등에 다시 실려 널리 알려졌다.[12][13]
한국에서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에 ‘三思一言’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어에서 쓰는 삼사일언은 근대 이후에 퍼진 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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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 생각하라’는 말의 출전인 《논어》 〈공야장〉에서 공자는 오히려 “두 번이면 된다”고 하였다. 송나라 주희(朱熹)는 《논어집주》에서 “두 번이면 이미 살핀 것이고, 세 번이면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도리어 미혹되므로 공자가 꼬집은 것이다(至於再則已審,三則私意起而反惑矣,故夫子譏之)”라는 정자(程子)의 말을 실었다.[14]
- ↑ 1.0 1.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삼사일언”,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82%BC%EC%82%AC%EC%9D%BC%EC%96%B8, 확인날짜=2026-10-11.
- ↑ 2.0 2.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三思一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6%80%9D%E4%B8%80%E8%A8%80, 확인날짜=2026-10-11.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九思一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9%9D%E6%80%9D%E4%B8%80%E8%A8%80, 확인날짜=2026-10-11.
- ↑ 4.0 4.1 4.2 4.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三思而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47, 확인날짜=2026-10-11.
- ↑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 ↑ 《논어(論語)》 〈계씨(季氏)〉.
- ↑ 영호덕분(令狐德棻) 등, 《주서(周書)》 권15 〈우근전(于謹傳)〉.
- ↑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69.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88권, 성종 25년 3월 5일 갑오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2503005_002,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3권, 연산 1년 2월 4일 무오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0102004_001, 확인날짜=2026-10-11.
- ↑ 《갑양군감(甲陽軍鑑)》 품제2, 〈다케다 노부시게 가훈(武田信繁家訓)〉 제29조, 에이로쿠(永祿) 원년(1558) 4월.
- ↑ 유모토 다케히코(湯本武比古)·이시카와 이와키치(石川岩吉) 편, 《日本倫理史稿》, 1901,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758108, 확인날짜=2026-10-11.
- ↑ 아리마 스케마사(有馬祐政)·아키야마 고안(秋山梧庵) 편, 《武士道家訓集》, 1906,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758913, 확인날짜=2026-10-11.
- ↑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註)》 〈공야장(公冶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