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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불변(菽麥不辨)은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흔히 쓰는 ‘숙맥’이라는 말이 이 성어에서 나왔다.[2]

콩과 보리는 생김새가 전혀 달라 누구나 가려낼 수 있는 곡식이다. 그것조차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로, 아주 어리석거나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른다. 한국어에서는 네 글자를 다 쓰기보다 줄인 말 ‘숙맥(菽麥)’을 훨씬 많이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숙맥의 둘째 뜻을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풀고, “‘숙맥불변’에서 나온 말”이라고 밝힌다.[2] “숙맥이 상팔자(콩인지 보리인지 모르는 사람이 팔자가 좋다)”라는 속담도 있는데, 모르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는 뜻이다.[2]

같은 고사에서 나온 말을 중국어에서는 어순을 바꾸어 ‘불변숙맥(不辨菽麥)’으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不辨菽麥을 표제어로 올리고, 菽麥不辨이 아니라 ‘菽麥不分’, ‘未辨菽麥’, ‘不辯菽麥’ 등을 같은 계열의 말로 든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菽 숙 콩 콩
麥 맥 보리 보리
不 불 아니다 못하다
辨 변 분별하다, 가리다 구별하다

‘菽(숙)’은 콩 종류를 두루 이르는 글자이다. 《성어전》은 이 글자를 ‘叔’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3]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8년(기원전 573) 조에 나온다. 진(晉)나라의 대부 난서(欒書)와 중항언(中行偃)이 여공(厲公)을 죽인 뒤, 주(周)나라 서울에 가 있던 공족 주자(周子)를 맞아 임금으로 세웠다. 이 사람이 진 도공(悼公)이다. 《좌전》은 이 대목 끝에 주자의 형을 세우지 않은 까닭을 한 문장으로 덧붙였다.[4]

十八年春,王正月庚申,晉欒書、中行偃使程滑弒厲公,葬之于翼東門之外,以車一乘。使荀罃、士魴逆周子于京師而立之,生十四年矣。……庚午,盟而入,館于伯子同氏。辛巳,朝于武宮,逐不臣者七人。周子有兄而無慧,不能辨菽麥,故不可立。

“18년 봄 정월 경신일에 진나라의 난서와 중항언이 정활(程滑)을 시켜 여공을 시해하고, 익(翼)의 동문 밖에 수레 한 대만 딸려 장사 지냈다. 순앵(荀罃)과 사방(士魴)을 시켜 주자를 서울에서 맞아 임금으로 세우니, 나이 열네 살이었다. …… 경오일에 맹약하고 들어와 백자동씨(伯子同氏)의 집에 머물렀다. 신사일에 무궁(武宮)에 조회하고,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은 자 일곱 명을 쫓아냈다.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나 지혜가 없어 콩과 보리를 분간하지 못했으므로 세울 수 없었다.”

원문은 ‘不能辨菽麥(콩과 보리를 분간하지 못했다)’이고, 네 글자 성어는 이 구절을 줄인 것이다. 《성어전》은 이 대목을 두고, 정권을 쥐려던 난서 등이 나이 어린 주자를 세우면서 그 형을 깎아내린 말로 풀이하기도 한다.[3] 주석서의 해석과 상관없이, 이 구절은 뒤에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다.

네 글자로 굳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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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한 말의 문인 진림(陳琳)은 〈격오장교부곡문(檄吳將校部曲文)〉에서 손권을 두고 “손권 같은 어린것은 콩과 보리도 가리지 못한다(孫權小子,未辨菽麥)”고 했다. 《문선(文選)》 권44에 실린 이 글에는 이선(李善)이 《좌전》의 이 구절을 주석으로 달아 출전을 밝혔다.[5]
  •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 외편 〈교제(交際)〉에서 부귀한 사람에게만 아첨하는 세태를 꼬집으며, 돈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면 “글자도 제대로 못 쓰고 콩과 보리도 가리지 못해도(雖筆不集札,菽麥不辨)” 신을 거꾸로 신고 맞으러 나간다고 했다. 사부총간본은 ‘菽麥不辨’으로, 다른 판본은 ‘菽麥不分辯’으로 적는다.[6] 같은 책 〈궁달(窮達)〉에는 ‘不辯菽麥’도 보인다.[3]
  • 수(隋)나라 소길(蕭吉)의 《오행대의(五行大義)》에도 “어리석은 사람은 어둡고 아는 것이 없어 콩과 보리를 가리지 못하니, 이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한다(愚人者,嚚闇無知,菽麥不辨,謂之愚人)”는 풀이가 있다.[7]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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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중국과 같은 ‘不辨菽麥’ 쪽이 더 많이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不辨菽麥은 30건, 菽麥不辨은 7건 검색된다.[8] 이른 예로 《성종실록》 1년(1470) 6월 3일 기사의 사관 논평이 있다. 사관은 영의정 윤자운(尹子雲)의 아들 윤한(尹瀚)을 “어리석어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愚癡,不辨菽麥)”고 평하고, 그가 종묘령으로 부임한 날 아전이 내민 공좌부(公座簿)에 서명하라고 하자 “아버지께 여쭈어 가르침을 들은 뒤에 서명하겠다”며 손을 저었다는 일화를 적었다.[9] 지금과 같은 순서의 ‘菽麥不辨’은 《선조실록》 38년(1605) 1월 25일 기사에서 어린 종을 두고 “콩과 보리도 가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이 종(菽麥不辨,迷劣童奴)”이라고 한 데서 보인다.[10]

정약용(丁若鏞)도 살인 사건을 심리한 판결문에서, 관련된 아이를 두고 “열다섯 살의 어리숙한 아이로 콩과 보리도 가리지 못한다(以十五歲之憨童,菽麥不辨)”고 적었다.[11]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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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표현 비고
한국어 숙맥불변(菽麥不辨), 숙맥(菽麥) 줄인 말 ‘숙맥’이 더 흔함
중국어 不辨菽麥(bù biàn shū mài) 《성어전》 표제어. 菽麥不分, 五穀不分도 비슷한 뜻
일본어 菽麦を弁ぜず(しゅくばくをべんぜず) 사전에서 ‘菽麦(しゅくばく)’의 고사로 설명

일본의 《일본국어대사전》은 ‘菽麦(しゅくばく)’의 둘째 뜻을 “‘菽麦を弁ぜず’의 고사에서, 사물을 보는 눈, 식견”으로 풀고, 첫 용례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의 《간케분소(菅家文草)》(900년경)를 든다.[12]

  • 신입 시절 나는 서버와 클라이언트도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불변이었다.
  • 숙맥불변이라더니, 그렇게 일러 줘도 아직 모르겠느냐?
  • 《논어》 〈미자(微子)〉에서 노인이 자로에게 “사지를 부지런히 놀리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한다(四體不勤,五穀不分)”고 한 말이 비슷한 뜻으로 함께 거론된다. 주희(朱熹)는 《논어집주》에서 ‘五穀不分’을 “숙맥을 가리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猶言不辨菽麥爾)”고 풀었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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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맥(菽麥): 숙맥불변에서 나온 말.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 오곡불분(五穀不分): 오곡을 분간하지 못함. 《논어》 〈미자〉.
  • 목불식정(目不識丁): 고무래를 보고도 정(丁) 자를 모름. 아주 무식함.
  • 일자무식(一字無識): 글자를 한 자도 모를 정도로 무식함.
  • 어로불변(魚魯不辨): 魚 자와 魯 자를 구별하지 못함. 아주 무식함.
  • 반대 의미: 사리분별(事理分別), 총명예지(聰明叡智)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숙맥불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9%EB%A7%A5%EB%B6%88%EB%B3%80, 확인날짜=2026-10-01.
  2. ↑ 2.0 2.1 2.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숙맥2”,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9%EB%A7%A5, 확인날짜=2026-10-01.
  3. ↑ 3.0 3.1 3.2 3.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不辨菽麥”,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468, 확인날짜=2026-10-01.
  4.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8년.
  5. ↑ 진림(陳琳), 〈격오장교부곡문(檄吳將校部曲文)〉, 《문선(文選)》 권44, 이선(李善) 주.
  6. ↑ 갈홍(葛洪), 《포박자(抱朴子)》 외편 〈교제(交際)〉. 사부총간본 외편 권16.
  7. ↑ 소길(蕭吉), 《오행대의(五行大義)》 권5.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不辨菽麥”, “菽麥不辨”,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6권, 성종 1년 6월 3일 경술 9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0106003_009, 확인날짜=2026-10-01.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83권, 선조 38년 1월 25일 경자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801025_005, 확인날짜=2026-10-01.
  11. ↑ 정약용(丁若鏞), 〈예장우규살비판(倪長玗糾殺批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1.
  12.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菽麦”,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F%BD%E9%BA%A6, 확인날짜=2026-10-01.
  13. ↑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注)》 〈미자(微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