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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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불식정(目不識丁)은 아주 간단한 글자인 ‘丁’ 자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인 줄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글자를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나 아주 무식한 사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성어전》은 이 말이 《구당서(舊唐書)》 권129 〈장연상전(張延賞傳)〉에 붙은 그 아들 장홍정(張弘靖)의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본다.[2] 당나라 목종 장경(長慶) 초에 장홍정이 유주(幽州)의 노룡(盧龍) 절도사로 부임했다. 하북의 장수들은 병사들과 똑같이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지냈는데, 오래 부귀하게 살아 그곳 풍토를 몰랐던 장홍정은 가마를 타고 군중을 지나갔고, 안녹산·사사명의 난이 유주에서 시작되었다며 안녹산의 무덤을 파헤쳐 민심을 잃었다. 그의 막료들도 문제였다.
從事有韋雍、張宗厚數輩,復輕肆嗜酒,常夜飲醉歸,燭火滿街,前後呵叱,薊人所不習之事。又雍等詬責吏卒,多以反虜名之,謂軍士曰:「今天下無事,汝輩挽得兩石力弓,不如識一丁字。」軍中以意氣自負,深恨之。
“종사(從事) 위옹(韋雍)·장종후(張宗厚) 등 몇 사람은 경박하고 술을 즐겨 늘 밤늦게 취해 돌아오며 거리를 횃불로 가득 채우고 앞뒤로 호통을 쳤으니, 계(薊) 땅 사람들이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또 위옹 등은 아전과 병졸을 꾸짖으며 걸핏하면 ‘반란한 오랑캐’라고 불렀고, 군사들에게 ‘지금 천하에 일이 없으니, 너희가 두 섬 힘의 활을 당길 수 있다 한들 丁 자 한 자 아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군중은 의기를 자부하던 터라 이를 깊이 원망했다.” 무력을 자랑으로 여기던 하북 군사들을 글 모르는 무리라고 깔본 말이었다. 이어 장홍정이 군사들에게 내려진 상금 100만 관 가운데 20만 관을 군부 경비로 떼어 두자 유주 사람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들고일어나 장홍정을 계문관(薊門館)에 가두고 위옹·장종후 등을 죽였다.[4] 《신당서(新唐書)》 권127에 붙은 장홍정 전기에도 “천하에 일이 없으니, 너희가 두 섬 활을 당긴들 丁 자 하나 아는 것만 못하다(天下無事,而輩挽兩石弓,不如識一丁字)”는 거의 같은 말이 실려 있다.[5]
곧 원문의 형태는 ‘識一丁字’, 뒤집으면 ‘不識一丁(丁 한 자도 모른다)’이다.[2] 네 글자 ‘目不識丁’은 뒤의 문헌에 보이며, 《성어전》은 명나라 양련(楊漣)이 환관 위충현(魏忠賢)을 탄핵한 〈핵위충현이십사대죄소(劾魏忠賢二十四大罪疏)〉의 “고명을 짓는 관청의 관원이 눈으로 丁 자도 알지 못한다(誥敕之館,目不識丁)”는 구절, 《경세통언》, 《성세인연전》 등을 용례로 든다.[2]
나무위키 등에는 장홍정이 무식하고 오만한 인물이어서 부하들에게 “丁 자 하나 아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는 식의 설명이 보이지만, 《구당서》 원문을 보면 이 말을 한 사람은 장홍정이 아니라 그의 종사 위옹 등이며, 글을 모른다고 조롱당한 쪽은 유주의 군사들이었다.[4]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어 속 ‘丁’을 ‘고무래’로 풀이한다.[1] 고무래는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밭의 흙을 고르는 丁 자 모양의 농기구이다. ‘丁’은 획이 적어 가장 쉬운 글자의 대표로 쓰였다.
한편 ‘丁’이 본래 ‘个(箇, 낱 개)’를 잘못 옮긴 글자라는 설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남송의 오증(吳曾)은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 권5에서, 두평(竇苹)이 《당서음훈(唐書音訓)》에서 “丁은 아마 个여야 할 것”이라 한 것을 소개하고, 공평중(孔平仲)의 《속세설(續世說)》이 장홍정의 말을 “너희가 두 섬 활을 당긴들 한 개의 글자를 아는 것만 못하다(不若識一箇字)”로 인용한 것을 근거로 ‘箇’가 ‘丁’으로 잘못 옮겨졌음이 틀림없다고 보았다.[6] 청나라 《강희자전》도 《정자통(正字通)》을 인용해 전서(篆書)의 ‘个’와 ‘丁’이 비슷해 잘못 옮겨졌다는 설을 싣는다.[7] 이 설대로라면 원래 말은 ‘글자 한 개도 모른다’는 뜻이 된다. 다만 성어로는 ‘丁’ 자 형태로 굳어 쓰인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20여 건이 나온다. 가장 이른 것은 숙종 6년(1680) 사간원이 호조 참의 남천한(南天漢)을 탄핵하며 “눈으로 丁 자도 알지 못해 걸핏하면 남의 손을 빌린다(目不識丁,動借人手)”고 한 기사이다.[8] 문집에서는 18세기 위백규(魏伯珪)가 문벌만으로 뽑힌 향교 유생들이 “모두 목불식정(擧皆目不識丁)”이라고 비판했다.[9]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나카에 조민(中江兆民)의 《국회론(国会論)》(1888)의 “눈에 한 丁字조차 없는 인물에게 대의사를 뽑게 하려 한다(目に一丁字さへ無き人物をして代議士を撰挙せしめんと欲する)”를 첫 용례로 든다.[3]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目 | 목 | 눈 | 눈(으로 보고도) |
| 不 | 불 | 아니다 | 못하다 |
| 識 | 식 | 알다 | 알아보다 |
| 丁 | 정 | 고무래, 넷째 천간 | 丁 자, 가장 쉬운 글자 |
- 암호학에는 목불식정인 사람이 보안 솔루션 도입을 결정하면 엉뚱한 제품을 고르기 쉽다.
- 할머니는 젊어서는 목불식정이었으나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쳤다.
- 일자무식(一字無識), 일자불식(一字不識), 일문부지(一文不知): 글자를 한 자도 모름.
- 불식일정(不識一丁), 일정불식(一丁不識), 목불식자(目不識字): 목불식정과 같은 뜻. 《성어전》이 참고 어휘로 든다.[2]
- 불식지무(不識之無), 흉무점묵(胸無點墨): 글자를 모르거나 학식이 없음. 《성어전》은 목불식정이 한 자도 모르는 데에, 흉무점묵은 학식이 낮은 데에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2]
- 어로불변(魚魯不辨): ‘어(魚)’ 자와 ‘노(魯)’ 자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무식함.
- 숙맥불변(菽麥不辨):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함. 세상 물정을 모름.
- 속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고유어로는 ‘까막눈’.
- 반대 의미: 학부오거(學富五車), 만복경륜(滿腹經綸): 학식이 매우 풍부함.[2]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목불식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A%A9%EB%B6%88%EC%8B%9D%EC%A0%95,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2.5 2.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目不識丁”,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8,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目に一丁字な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B%AE%E3%81%AB%E4%B8%80%E4%B8%81%E5%AD%97%E3%81%AA%E3%81%97,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4.2 《구당서(舊唐書)》 권129 〈장연상전(張延賞傳)〉 부 장홍정(張弘靖).
- ↑ 《신당서(新唐書)》 권127 〈장가정전(張嘉貞傳)〉 부 장홍정(張弘靖).
- ↑ 오증(吳曾),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 권5.
- ↑ 《강희자전(康熙字典)》 〈일부(一部)〉 ‘丁’.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9권, 숙종 6년 4월 28일 정해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604028_004, 확인날짜=2026-09-27.
- ↑ 위백규(魏伯珪), 〈봉사(封事)〉, 《존재집(存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