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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는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전쟁에서 오십 보 달아난 병사가 백 보 달아난 병사를 비웃었다는 《맹자》의 비유에서 나왔다.[1] ‘오십소백(五十笑百)’이라고도 한다.[2]

오십보백보는 둘 사이에 겉보기 차이가 조금 있더라도 잘못이나 한계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말할 때 쓴다. 대개 “오십보백보다”, “오십보백보의 차이”처럼 쓰며, 둘 다 그다지 좋지 않다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 그래서 두 대상을 모두 칭찬하는 말로는 쓰지 않는다.

중국어에서는 비웃는다는 동작을 살린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를 주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자기도 남과 같은 결점이나 잘못이 있으면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남을 비웃음”으로 풀이해,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을 탓하는 태도에 무게를 둔다.[3] 일본어에서는 한국어와 같이 ‘五十歩百歩(ごじっぽひゃっぽ)’라고 한다.[4]

《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나온다.[5] 양(梁)나라, 곧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과인은 나라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에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을 하동(河東)으로 옮기고 하동의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아도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 이웃 나라 백성이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孟子對曰:「王好戰,請以戰喻。填然鼓之,兵刃既接,棄甲曳兵而走,或百步而後止,或五十步而後止。以五十步笑百步,則何如?」曰:「不可,直不百步耳,是亦走也。」曰:「王如知此,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둥둥 북을 울려 칼날이 맞부딪치자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끌며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백 보를 가서 멈추고 어떤 자는 오십 보를 가서 멈추었습니다. 오십 보 달아난 자가 백 보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안 될 말입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 그 역시 달아난 것입니다.” “왕께서 이것을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맹자는 이어서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고, 촘촘한 그물을 연못에 넣지 않게 하고, 나무를 때맞추어 베게 하여 백성이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이라고 말했다.[5] 흉년에 백성과 곡식을 옮기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웃 나라 임금들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다.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맹자가 혜왕의 정치를 ‘오십 보 달아난 병사’에 빗댄 것이니 실은 매우 신랄한 비판이라고 평한다.[4]

《성어전》은 남조 송나라 하승천(何承天)의 편지(《홍명집》 권3), 《주자어류》, 《명사》 〈고반룡전〉 등을 용례로 든다. 참고어로 ‘오십소백(五十笑百)’, 주희의 편지에 나오는 ‘백보오십보지간(百步五十步之間)’도 싣는다.[3] 명나라 왕수인(王守仁)도 한 편지에서, 치양지(致良知)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참으로 힘써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어 예전의 지리멸렬한 학설보다 조금 나을 뿐 “오십보백보의 사이(五十步百步之間)”라고 꾸짖었다.[6]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 《조선왕조실록》 세종 6년(1424) 5월 12일 기사에서 세종은, 왜구에게 잡혀갔다가 조선에 온 명나라 사람들은 모두 중국으로 돌려보내면서 장청(張淸) 등만 조선과 일본의 사정을 안다는 이유로 전주에 머물게 한 것을 두고 “다른 이들 가운데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왕래를 아는 자가 어찌 없겠는가. 유독 장청 등만 본토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오십 보로 백 보를 비웃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何異於五十步笑百步哉)”라며 이들을 불러올리게 했다.[7]
  • 네 글자 ‘五十步百步’는 실록 원문에 9건 나온다. 현종 8년(1667)에는 병자호란 때 포로로 끌려갔던 여인의 자손에게 음직(蔭職)을 허락할지를 논의하며, 영의정 홍명하(洪命夏)가 포로로 잡혀간 것과 개가한 것이 조금 다른 듯해도 “오십보백보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不過五十步百步之間)”고 했다.[8] 영조는 1730년 신하들이 역적의 처벌 방식을 두고 의견이 갈리자 “정형(正刑)과 설국(設鞫)은 오십보백보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9]
  • 이처럼 조선 문헌에서는 ‘五十步百步之間’이라는 형태가 자주 쓰였다. 김안로, 송시열, 최규서 등의 문집에도 이 형태가 보인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五十 오십 쉰 오십
步 보 걸음 걸음, 달아난 거리
百 백 일백 백
  • 오십보백보는 ‘둘 다 대단하다’는 뜻으로 쓰지 않는다. 실력이 비슷하게 뛰어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이라면 ‘난형난제(難兄難弟)’, ‘막상막하(莫上莫下)’, ‘백중지세(伯仲之勢)’가 알맞다. 차이가 거의 없다는 중립적인 뜻이라면 ‘대동소이(大同小異)’를 쓸 수 있다.
  •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겁쟁이에 빗댄 말이므로 ‘비슷비슷하게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어, 무심코 쓰면 상대를 깎아내리게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4]
  • 비밀번호를 여섯 자리에서 여덟 자리 숫자로 늘려 봐야 무차별 대입 공격 앞에서는 오십보백보이다.
  • 두 후보의 공약은 표현만 다를 뿐 재원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였다.
  • 남을 비웃는 쪽을 꼬집는 중국어의 ‘오십보소백보’는 영어의 ‘The pot calling the kettle black(냄비가 주전자더러 검다고 한다)’과 뜻이 통한다. 일본의 《속담을 아는 사전》은 영어 속담 ‘A miss is as good as a mile(조금 빗나간 것도 1마일 빗나간 것과 같다)’을 대응 표현으로 든다.[4]
  • 일본에서는 쓰보우치 쇼요의 《당세서생기질(当世書生気質)》(1885~86)에 쓰인 예가 사전 용례로 실려 있다.[4]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오십소백(五十笑百): 오십보백보와 같은 말.
  • 대동소이(大同小異): 큰 차이 없이 거의 같음.
  • 피장파장: 서로 낫고 못함이 없음. 상대편과 같은 행동을 하여 서로 같은 처지가 됨.[11]
  • 피차일반(彼此一般): 두 편이 서로 같음.
  • “도토리 키 재기”, “그 나물에 그 밥”,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도 비슷한 뜻으로 쓴다. 특히 마지막 속담은 남을 비웃는 쪽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중국어의 ‘오십보소백보’와 가깝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십보백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4%EC%8B%AD%EB%B3%B4%EB%B0%B1%EB%B3%B4,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십소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4%EC%8B%AD%EC%86%8C%EB%B0%B1,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五十步笑百步”,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383,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4.2 4.3 4.4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五十歩百歩”,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A%94%E5%8D%81%E6%AD%A9%E7%99%BE%E6%AD%A9, 확인날짜=2026-09-26.
  5. ↑ 5.0 5.1 《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
  6. ↑ 왕수인,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 권6.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24권, 세종 6년 5월 12일 병술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605012_004, 확인날짜=2026-09-26.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현종개수실록》 18권, 현종 8년 8월 7일 기묘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rb_10808007_004, 확인날짜=2026-09-26.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25권, 영조 6년 4월 2일 기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0604002_002, 확인날짜=2026-09-26.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송시열, 《송자대전》 권140 〈서반수당재기(西泮水堂齋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67A_1420_010_0190, 확인날짜=2026-09-26.
  1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피장파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4%BC%EC%9E%A5%ED%8C%8C%EC%9E%A5,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