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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가옥(屋上架屋)은 지붕 위에 또 지붕을 만든다는 뜻으로, 물건이나 일을 부질없이 거듭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줄여서 옥상옥(屋上屋)이라고도 한다.

이미 있는 것 위에 쓸모없이 같은 것을 하나 더 얹는 일을 꼬집는 말이다. 특히 옥상옥은 “윗부분에 불필요하게 만든 조직이나 구조”를 비유하는 말로 굳어져,[2] 기존 기관 위에 새 위원회나 감독 기구를 덧씌우거나, 이미 있는 규제와 같은 내용의 규제를 또 만드는 일을 비판할 때 자주 쓴다.

원래 형태는 ‘집 아래에 집을 얹는다’는 옥하가옥(屋下架屋)이다. 남조 송의 《세설신어》에 이 말이 나오고, 당나라 무렵부터 ‘위(上)’로 바꾼 형태가 함께 쓰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옥하가옥을 “선인들이 이루어 놓은 일을 후세 사람들이 무익하게 거듭하여 발전한 바가 조금도 없음”으로 풀이해, 남의 것을 흉내 내기만 하는 일을 꼬집는 원래 뜻을 살렸다.[3]

일본어에서도 “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다(屋上屋を架す)”는 관용구를 널리 쓴다.[4] 오늘날 중국어에서는 침상 위에 침상을 겹치고 집 아래 집을 얹는다는 疊床架屋(dié chuáng jià wū)을 주로 쓴다.[5]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屋 옥 집, 지붕 지붕(집)
上 상 위 위에
架 가 시렁, 가로지르다 얹어 짓다
屋 옥 집, 지붕 지붕(집)

《세설신어》: 사안의 평

편집 원본 편집

남조 송의 유의경(劉義慶)이 엮은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에 다음 이야기가 있다. 동진의 유천(庾闡, 자는 중초(仲初))이 도읍 건강(建康)을 노래한 〈양도부(揚都賦)〉를 지어 일가인 유량(庾亮)에게 보였다.[6]

庾仲初作《揚都賦》成,以呈庾亮;亮以親族之懷,大爲其名價云:「可三二京,四三都。」於此人人競寫,都下紙爲之貴。謝太傅云:「不得爾。此是屋下架屋耳!事事擬學,而不免儉狹。」

“유중초가 〈양도부〉를 짓고 유량에게 보였다. 유량은 친족의 정으로 그 값을 크게 올려 주며 ‘〈이경부〉와 나란히 셋째가 되고, 〈삼도부〉와 나란히 넷째가 될 만하다’고 했다. 이에 사람들이 다투어 베껴 도읍의 종이값이 올랐다. 태부 사안(謝安)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집 아래에 집을 얹은 것일 뿐이다. 일마다 본떠 배웠으니 좁고 옹색함을 면하지 못했다.’”[6]

〈양도부〉가 장형(張衡)의 〈이경부〉, 좌사(左思)의 〈삼도부〉 같은 앞 시대 명작을 흉내 냈을 뿐 새로운 것이 없다는 평이다. 이 이야기의 앞부분은 종이값이 올랐다는 낙양지가의 고사와도 이어진다. 양나라 유효표(劉孝標)의 주석은 동진의 사학자 왕은(王隱)이 양웅(揚雄)의 《태현경》을 두고 “옛사람이 이를 ‘집 아래 집을 얹은 것’이라 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해,[6] ‘屋下架屋’이 사안 이전부터 쓰이던 비유였음을 보여 준다. 《성어전》도 이 말이 남북조·수당 시대에 흔히 쓰이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7]

북제의 안지추(顏之推)는 《안씨가훈(顏氏家訓)》 〈서치(序致)〉에서 위진 이래의 제자서들이 서로 흉내만 낸다며 “집 아래 집을 얹고 침상 위에 침상을 놓은 격(猶屋下架屋,床上施床耳)”이라고 했다.[7][8]

‘아래’에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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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屋上架屋’이라는 형태는 당나라 화엄종 승려 징관(澄觀)의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에 보인다. 징관은 “옛 주석이 이미 있는데 새로 지을 까닭이 무엇이냐, 어찌 지붕 위에 지붕을 얹고 침상 위에 침상을 놓느냐(何以屋上架屋、床上安床)”는 반론을 상정하고 이에 답했다.[9] 이후 송나라 불교 주석서, 명청의 문인 글에도 ‘屋上架屋, 床上安床’이 짝을 이루어 나온다.[10]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屋上架屋’이 2건 나온다. 1419년(세종 1) 기사는 중국 풍수서 《지리변망(地理辨妄)》의 비판을 인용한 것이고,[11] 1490년(성종 21) 윤필상(尹弼商)은 재산 매매를 막는 금령을 새로 만들자는 논의에 반대하며 “다시 함부로 차지하는 것을 막는 조항을 만든다면 이는 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것(是屋上架屋)”이라고 했다.[12]
  • 1624년(인조 2) 경연에서 정엽(鄭曄)은 일마다 도감을 새로 설치해 관청이 겹치는 것을 “집 아래 집을 얹는 폐단(屋下架屋之患)”이라 했다.[13] 오늘날 ‘옥상옥 기구’라는 비판과 같은 쓰임이다.
  • 허균(許筠)은 명나라 시인들이 저마다 성당(盛唐)과 이백·두보를 자처하지만 “남의 말을 훔치거나 뜻을 베껴 모두 집 아래 집을 얹은 꼴을 면치 못했다(俱不免屋下架屋)”고 비평했다.[14] 원래의 ‘흉내만 내는 글’이라는 뜻에 충실한 용례이다.
  • 기존 보안 감사 조직이 있는데 같은 권한을 가진 점검단을 또 만드는 것은 옥상옥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 이미 프레임워크가 처리하는 입력 검증을 서비스마다 다시 구현하는 것은 옥상가옥이다.
  • 앞 연구를 그대로 되풀이한 논문은 옥하가옥이라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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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하가옥(屋下架屋): 옥상가옥의 원래 형태. 독창성 없이 앞사람의 것을 되풀이함.
  • 옥상옥(屋上屋): 옥상가옥의 준말. 불필요하게 덧붙인 조직이나 구조.
  • 疊床架屋(첩상가옥):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형태.
  • 사족(蛇足): 뱀을 그리고 발까지 그림. 쓸데없는 군더더기.
  • 화사첨족(畫蛇添足): 사족과 같은 말.
  • 중언부언(重言復言):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옥상가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5%EC%83%81%EA%B0%80%EC%98%A5, 확인날짜=2026-10-10.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옥상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5%EC%83%81%EC%98%A5, 확인날짜=2026-10-10.
  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옥하가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5%ED%95%98%EA%B0%80%EC%98%A5, 확인날짜=2026-10-10.
  4.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屋上屋を架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B1%8B%E4%B8%8A%E5%B1%8B%E3%82%92%E6%9E%B6%E3%81%99, 확인날짜=2026-10-10.
  5.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疊床架屋”,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42, 확인날짜=2026-10-10.
  6. ↑ 6.0 6.1 6.2 유의경(劉義慶),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
  7. ↑ 7.0 7.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屋下架屋”,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84, 확인날짜=2026-10-10.
  8. ↑ 안지추(顏之推), 《안씨가훈(顏氏家訓)》 〈서치(序致)〉.
  9. ↑ 징관(澄觀),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권2; 《화엄경소초현담(華嚴經疏鈔玄談)》 권2. 대정신수대장경본은 ‘屋上枷屋’으로 적었다. 중화전자불전협회(CBETA), https://cbdata.dila.edu.tw/, 확인날짜=2026-10-10.
  10. ↑ 관복(觀復), 《유교경론기(遺教經論記)》 권3; 풍반(馮班), 《둔음잡록(鈍吟雜錄)》.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3권, 세종 1년 3월 9일 계축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103009_004, 확인날짜=2026-10-10.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41권, 성종 21년 6월 9일 경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2106009_002, 확인날짜=2026-10-10.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7권, 인조 2년 9월 30일 신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209030_001, 확인날짜=2026-10-10.
  14. ↑ 허균(許筠), 〈명사가시선서(明四家詩選序)〉,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원문 검색 “屋下架屋”,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