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응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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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응변(臨機應變)은 그때그때 처한 사태에 맞추어 즉각 그 자리에서 결정하거나 처리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줄여서 ‘응변(應變)’이라고 하며, ‘임시응변(臨時應變)’이라고도 한다.[1] ‘기회(機)에 임하여 변화(變)에 응한다’는 말이다.
미리 정해 둔 방식에 매이지 않고 눈앞의 상황에 맞게 재빨리 대처하는 능력이나 행동을 가리킨다. “임기응변에 능하다”처럼 순발력과 재치를 칭찬하는 말로도 쓰지만, “임기응변으로 넘기다”, “임기응변식 대처”처럼 근본 대책 없이 그때만 모면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말로도 쓴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수기응변(隨機應變)’을 더 많이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隨機應變’을 표제어로 삼아 《구당서(舊唐書)》 〈곽효각전(郭孝恪傳)〉을 출전으로 들고, ‘臨機應變’은 같은 말로 올려 《삼국지연의》·《수호전》의 용례를 든다.[2][3] 나무위키 등에는 중국어에서 ‘臨機應變’을 쓰지 않는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성어전》에도 항목으로 올라 있고 옛 문헌에도 용례가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수기응변(隨機應變)’이 따로 올라 있다.[4] 일본어에서는 ‘臨機応変(りんきおうへん)’이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650년 나카에 도주(中江藤樹)의 《오키나 문답(翁問答)》을 든다.[5]
임기응변은 특정한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기회에 임함(臨機)’과 ‘변화에 응함(應變)’이라는 병법·정무의 말이 합쳐져 굳은 것이다.
당나라 때에는 네 글자 형태가 보인다. 회창(會昌) 연간 재상 이덕유(李德裕)는 회골(回鶻)이 변경을 침범하자 장수 유면(劉沔)에게 조서를 내려 달라고 청하면서, 유면이 군사에 밝지만 결단이 더디다며 “스스로 형편을 헤아려 임기응변하고, 지나치게 의심하여 모든 일을 지휘를 기다리지 말게 하라(自度便宜,臨機應變,不得過懷疑慮,皆待指揮)”고 했다.[6] 같은 뜻의 ‘隨機應變’은 《구당서》 〈곽효각전〉에서 곽효각이 당 태종에게 “무뢰를 굳게 지키고 사수에 군사를 주둔시켜 기회에 따라 변화에 응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請固武牢,屯軍氾水,隨機應變,則易為克殄)”고 건의한 대목에 나온다.[2]
《삼국지연의》 제43회에서 제갈량은 강동의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며, 헛된 명성으로 사람을 속이는 무리는 “앉아서 의논하고 서서 말할 때에는 당할 사람이 없지만, 임기응변에는 백에 하나도 능한 것이 없다(坐議立談,無人可及;臨機應變,百無一能)”고 꼬집었다.[3]
나무위키 등에는 《진서(晉書)》 〈손초전(孫楚傳)〉이 손초를 두고 “廟算之勝, 應變無窮”이라 평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원문의 “廟勝之算,應變無窮”은 손초가 장군 석포(石苞)의 명으로 오나라 임금 손호(孫皓)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晉)나라 상국(相國) 사마소(司馬昭)의 지략을 추켜세운 구절로, 손초 자신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7]
같은 전기에 실린 손초의 ‘수석침류(漱石枕流)’ 이야기는 임기응변과 함께 흔히 소개되는 이야기이다. 손초가 젊어서 숨어 살겠다는 뜻을 왕제(王濟)에게 밝히며 “돌을 베고 흐르는 물로 양치하겠다(枕石漱流)”고 해야 할 것을 “돌로 양치하고 흐르는 물을 베겠다(漱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흐르는 물은 벨 수 없고 돌로는 양치할 수 없다”고 하자 손초는 “흐르는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으려는 것이고, 돌로 양치하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받아넘겼다.[7] 실수를 순간의 재치로 둘러댄 예로, 자세한 것은 수석침류 문서를 참고.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臨機應變’이 98건 나온다. 이른 예로 1417년 태종 때 의정부와 육조가 국경을 넘어오려는 명나라 환관 장씨(張內官)의 접대 방침을 의논하면서, 성을 소홀히 지키지 말고 “임기응변하라(城子不輕守護,臨機應變)”고 아뢴 기사가 있다.[8] 1418년 평안도에 야인이 침입했을 때에도 상왕(태종)이 “임기응변하여 방비를 엄히 하라(臨機應變,以嚴備禦)”고 명했다.[9] 1603년 《선조실록》의 사관은 일본의 외교 문서를 두고 “용병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있지 않고 오직 임기응변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을 뿐”이라는 선대부의 말이 참으로 명언이라고 적었다.[10] 이처럼 조선 문헌에서는 주로 변경 방어나 전투의 지휘를 말할 때 쓰였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臨 | 임 | 임하다, 다다르다 | (일이 닥친 때에) 임하다 |
| 機 | 기 | 틀, 기회 | 때, 기회 |
| 應 | 응 | 응하다 | 대응하다 |
| 變 | 변 | 변하다, 변고 | 변화, 뜻밖의 일 |
- 발표 도중 프로젝터가 꺼졌지만 그는 임기응변으로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을 이어 갔다.
- 장애 대응을 매번 담당자의 임기응변에만 맡기면 사람이 바뀔 때마다 품질이 달라진다. 자주 겪는 상황은 런북으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 임기응변으로 위기는 넘겼지만 근본 원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임기응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84%EA%B8%B0%EC%9D%91%EB%B3%80,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隨機應變”,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19,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臨機應變”,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604,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수기응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8%EA%B8%B0%EC%9D%91%EB%B3%80, 확인날짜=2026-09-27.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臨機応変”,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7%A8%E6%A9%9F%E5%BF%9C%E5%A4%89, 확인날짜=2026-09-27.
- ↑ 이덕유(李德裕), 〈청사유면조장(請賜劉沔詔狀)〉, 《회창일품집(會昌一品集)》 권14. 《전당문(全唐文)》 권701에도 실려 있다.
- ↑ 7.0 7.1 7.2 방현령(房玄齡) 등, 《진서(晉書)》 권56 〈손초전(孫楚傳)〉.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 8월 13일 병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708013_001,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권, 세종 즉위년 9월 7일 갑인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009007_004,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60권, 선조 36년 3월 24일 경진 8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603024_008,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