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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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左衝右突)은 이리저리 마구 찌르고 부딪침, 또는 아무에게나 아무 일에나 함부로 맞닥뜨림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표준국어대사전은 첫째 뜻의 비슷한 말로 동충서돌(東衝西突)과 좌우충돌(左右衝突)을 든다.[1]
본래는 싸움터에서 장수가 적진 속을 왼쪽으로 찌르고 오른쪽으로 부딪치며 휘젓는 모습을 그린 말이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이 뜻보다, 준비나 방향 없이 이 일 저 일에 부딪치며 허둥대는 모습, 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가리지 않고 부딪치는 태도를 가리키는 둘째 뜻으로 더 많이 쓴다. “좌충우돌 신입 사원의 적응기”처럼 서툴지만 부딪쳐 가며 배우는 모습을 가볍게 그릴 때도 흔히 쓴다.
중국어에서도 ‘左衝右突(左冲右突)’을 성어로 쓰는데, 주로 적진을 이리저리 거침없이 돌파하는 용맹한 모습을 가리킨다.[2] 한국어의 ‘함부로 맞닥뜨린다’는 부정적인 뜻과는 느낌이 다르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며, 싸움터의 모습을 그린 묘사어이다.
글자 순서가 다른 ‘좌우충돌(左右衝突)’은 당나라 초에 편찬된 《양서(梁書)》 권46에 이미 보인다. 후경(侯景)의 난 때 후경이 정예병을 이끌고 몸소 이리저리 들이쳤다는 대목이다.
及戰,景親率精銳,左右衝突,崱從嶺後橫截之,景乃大敗,東奔晉陵。
“싸움이 벌어지자 후경은 몸소 정예병을 이끌고 좌우로 들이쳤는데, 두측이 고개 뒤에서 가로질러 끊자 후경이 크게 패해 동쪽 진릉으로 달아났다.”
‘左衝右突’의 네 글자는 명나라의 역사 소설에서 흔히 보인다. 가정본(嘉靖本) 《삼국지통속연의》에는 장비가 조조의 여덟 갈래 군사에 포위되자 “가운데서 왼쪽으로 들이치고 오른쪽으로 부딪치며 앞을 막고 뒤를 가렸다(飛在核心,左衝右突,前遮後擋)”는 대목이 있고,[4] 통행본 《삼국지연의》 제110회에서는 문앙(文鴦)이 사마사의 진영에 뛰어들어 “좌충우돌하니 이르는 곳마다 감히 당해 내는 자가 없었다(左衝右突,所到之處,人不敢當)”고 그린다.[5] 제117회에서도 강유가 위나라 진중에 곧바로 뛰어들어 “좌충우돌하여 제갈서를 크게 무찔렀다”고 한다.[6] 이처럼 소설 속의 좌충우돌은 용맹한 장수의 활약을 그리는 말이었다.
원나라 승려 원지(圓至)의 《목잠집(牧潛集)》에는 글의 기세를 논하면서 “진부한 말을 끝없이 늘어놓으며 좌충우돌하여 그치지 않는 것(陳言衮衮左衝右突而不休)”을 큰 강물 같은 문장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는 대목이 있어,[7] 글이 이리저리 부딪치기만 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비유로도 쓰였다.
조선 문헌에서도 처음에는 싸움의 모습을 그리는 말로 쓰였다.
- 《선조실록》 선조 26년(1593) 2월 19일 기사에서 이덕형(李德馨)은 벽제관 싸움을 보고하며 “조금 있다가 왜적이 좌충우돌하며 일시에 곧장 나아오니 명나라 군사가 대적하지 못했다(未幾,賊左衝右突,一時直前,天兵不得抵敵)”고 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左衝右突’이 보이는 유일한 기사이다.[8]
-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관 오극성(吳克成)의 일기에는 좁은 골짜기에서 적을 만났을 때 “큰 활과 긴 창으로 좌충우돌하며 급히 쳐서 놓치지 말라”는 병법 문답이 적혀 있다.[9]
19세기에 들어 정약용(丁若鏞)은 이 말을 조금 다르게 썼다. 《경세유표》에서는 늘 매어 두기만 한 병선을 갑자기 끌어내 “좌충우돌하며 나는 듯이 드나들게 하려 해도 어렵다”고 하여 여전히 전투의 뜻으로 썼지만,[10] 〈말갈고(靺鞨考)〉에서는 말갈이 해마다 달마다 백제를 쳤다는 기록을 의심하면서 “좌충우돌하는 것이 마치 세 집뿐인 마을에서 날마다 다투는 것 같다(左衝右突。有若三家之村。逐日勃豀然者)”고 하여, 앞뒤 없이 부딪치는 모습을 꼬집는 뜻으로 썼다.[11]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이런 흐름이 이어져 “아무에게나 또는 아무 일에나 함부로 맞닥뜨림”이라는 둘째 뜻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고, 사전은 “협회 이사진이 서로 몇 년 동안 좌충우돌이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를 용례로 든다.[1]
- 처음 맡은 프로젝트에서 좌충우돌하며 겪은 시행착오가 지금의 밑거름이 되었다.
- 장애 원인을 모른 채 설정을 이것저것 바꾸며 좌충우돌하면 로그만 어지러워진다. 먼저 증상을 기록하고 가설을 세운 뒤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 적진에 뛰어든 장수는 좌충우돌하며 포위를 뚫었다.
-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좌충우돌”,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2%8C%EC%B6%A9%EC%9A%B0%EB%8F%8C, 확인날짜=2026-09-30.
- ↑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110회·제117회.
- ↑ 《양서(梁書)》 권46 〈두측전(杜崱傳)〉.
- ↑ 나관중,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정본) 제48회.
- ↑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110회.
- ↑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117회.
- ↑ 원지(圓至), 《목잠집(牧潛集)》.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35권, 선조 26년 2월 19일 1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602019_012, 확인날짜=2026-09-30.
- ↑ 오극성(吳克成), 〈임진일기(壬辰日記) 하〉, 《문월당집(問月堂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739A_0040_010_001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정약용(丁若鏞), 〈전함사(典艦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597A_1070_030_013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정약용(丁若鏞), 〈말갈고(靺鞨考)〉,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597A_1460_010_005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