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패도지
더 많은 작업
일패도지(一敗塗地)는 싸움에 한 번 져서 간과 뇌가 땅바닥에 으깨어진다는 뜻으로, 여지없이 패하여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 처지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한 말로 《사기》 〈고조본기〉에 나온다.[1]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무너져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쓴다. 전쟁뿐 아니라 선거, 사업, 경기에서 크게 져서 재기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할 때도 쓴다. 한국어에서는 일상 회화보다 글말, 특히 신문 논평이나 역사 서술에서 주로 보인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글자로 ‘一敗塗地(yī bài tú dì)’라고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름”으로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훈독한 ‘一敗地に塗(まみ)れる’ 꼴로 쓰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나루시마 류호쿠(成島柳北)의 《류쿄신시(柳橋新誌)》(1874)를 든다.[3]
진(秦) 이세황제 원년(기원전 209) 가을, 진승(陳勝)이 봉기하자 여러 군현이 수령을 죽이고 이에 호응했다. 패현(沛縣)의 현령도 호응하려 했으나 뒤에 마음을 바꿔 성문을 닫고, 자기를 부추긴 소하(蕭何)·조참(曹參)까지 죽이려 했다. 두 사람은 성을 넘어 달아나 유방에게 몸을 의탁했다. 유방은 비단에 글을 써서 성 위로 쏘아 올려, 현령을 죽이고 자제 가운데 쓸 만한 사람을 세워 제후들에게 호응하라고 부로(父老)들을 설득했다. 부로들은 자제를 이끌고 현령을 죽인 뒤 성문을 열고 유방을 맞아 현령으로 세우려 했다. 이때 유방은 이렇게 사양했다.[4]
劉季曰:「天下方擾,諸侯并起,今置將不善,壹敗塗地。吾非敢自愛,恐能薄,不能完父兄子弟。此大事,願更相推擇可者。」
“지금 천하가 한창 어지럽고 제후들이 함께 일어났으니, 장수를 잘못 세우면 한 번 패하여 땅바닥에 으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감히 제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 부형과 자제들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까 두려운 것입니다. 이는 큰일이니 다시 서로 의논하여 맡을 만한 사람을 고르기 바랍니다.”
소하와 조참은 문관이라 일이 잘못되면 진나라가 그 집안을 멸할까 두려워 모두 유방에게 양보했고, 부로들도 유방이 평소 기이한 일이 많았으니 귀하게 될 사람이라며 점을 쳐도 그가 가장 길하다고 했다. 유방이 여러 번 사양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결국 그를 패공(沛公)으로 세웠다.[4] 유방은 이때부터 군사를 일으켜 뒤에 한(漢)나라를 세운다.
《사기》 원문은 ‘一’이 아니라 같은 뜻의 ‘壹’을 써서 ‘壹敗塗地’로 되어 있다.[2] 같은 대목을 옮긴 《한서》 〈고제기 상〉에는 ‘一敗塗地’로 적혀 있어, 오늘날의 글자 형태는 이미 《한서》에서 보인다.[5] 《한서》의 이 구절은 “令置將不善”으로 되어 있어 《사기》의 ‘今’과 한 글자가 다르다.[5]
‘塗地’는 ‘땅에 칠해지다’, 곧 싸움에 져서 죽은 사람의 간과 뇌가 땅바닥에 흩어진다는 참혹한 모습을 가리킨다.[2] 《사기》 〈유경숙손통열전〉에서 유경(劉敬)이 고조에게 “천하의 백성이 간과 뇌를 땅에 칠하고(肝腦涂地) 아비와 자식이 들판에 뼈를 드러냈다”고 한 것도 같은 표현이다. 이곳은 ‘塗’ 대신 같은 뜻의 ‘涂’로 적혀 있다.[6]
유방의 말에서 ‘일패도지’는 “한 번 지면 모두 죽는다”는 경고였다. 곧 아직 일어나지 않은 패배를 두려워하며 신중하게 지도자를 고르자는 말이었다. 후대에는 이미 크게 패해 수습할 수 없게 된 결과를 가리키는 말로 굳었다. 《성어전》도 원래 뜻을 “한번 싸움에 지면 간과 뇌가 땅을 뒤덮게 된다”로, 후대 뜻을 “일에 실패하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2]
《성어전》이 드는 후대 용례는 다음과 같다.[2]
- 《신당서》 〈종실열전〉 영안장왕 이효기(李孝基) 조: “夏城堅,攻之引日,宋金剛在近,內拒外彊,一敗塗地。”
- 남송 진량(陳亮)의 〈작고론(酌古論)〉 부견(苻堅) 편: 비수(淝水)의 싸움을 논하며 “백만 대군이 일패도지했다(百萬之師一敗塗地)”고 썼다.
- 원 도종의(陶宗儀)의 《남촌철경록》, 명 심덕부(沈德符)의 《만력야획편》, 청 조설근의 《홍루몽》 제74회 등.
《조선왕조실록》에는 원문 기준으로 ‘一敗塗地’가 35건 보인다.[7] 이른 예로 성종 17년(1486) 수영(水營)에 성보를 쌓는 문제를 논의할 때, 한명회(韓明澮) 등이 “배 위에서 싸움에 져서 일패도지하느니 성에 의지해 스스로 지키며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與其船上失利而一敗塗地,不如據城自守以待援兵)”고 한 대목이 있다.[8] 문집에서도 사화로 선비들이 한꺼번에 화를 입은 일을 가리켜 널리 썼다. 유성룡(柳成龍)은 권오복(權五福)의 《수헌집》 발문에서 성종 때 길러진 인재들이 액운을 만나 “일패도지하였다”며, 봄기운에 피어나던 초목이 갑자기 얼음과 서리, 비바람을 만나 꺾인 것에 빗대었다.[9]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一 | 일 | 하나 | 한 번 |
| 敗 | 패 | 지다, 무너지다 | 싸움에 짐 |
| 塗 | 도 | 칠하다, 진흙 | (간과 뇌가 땅에) 칠해지다, 으깨어지다 |
| 地 | 지 | 땅 | 땅바닥 |
- 무리하게 확장하던 그 회사는 주력 제품의 결함 한 건으로 신뢰를 잃고 일패도지하고 말았다.
- 백업과 복구 연습 없이 운영하던 서비스가 랜섬웨어 한 번에 일패도지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 앞선 선거에서 일패도지한 그 정당은 지도부를 모두 바꾸었다.
- 일궐부진(一蹶不振): 한 번 넘어지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함. 《성어전》이 드는 근의 성어.[2]
- 대패도지(大敗塗地): 크게 져서 땅에 으깨어짐. 남송 육유(陸游)의 〈서가충전후(書賈充傳後)〉에 보인다.[2]
- 간뇌도지(肝腦塗地): 간과 뇌가 땅에 칠해짐. 참혹하게 죽음, 또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함.
- 백전백승(百戰百勝), 파죽지세(破竹之勢): 반대로 싸울 때마다 이기거나 거침없이 나아감. 《성어전》이 드는 반의 성어.[2]
- 건곤일척(乾坤一擲): 운명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 한 번의 승부에 모든 것이 걸린다는 점에서 함께 떠올리는 말.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패도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D%8C%A8%EB%8F%84%EC%A7%80,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2.5 2.6 2.7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一敗塗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9, 확인날짜=2026-09-27.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一敗地に塗れる”,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6%95%97%E5%9C%B0%E3%81%AB%E5%A1%97%E3%82%8C%E3%82%8B,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사마천, 《사기》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
- ↑ 5.0 5.1 반고, 《한서》 권1 상 〈고제기 상(高帝紀上)〉.
- ↑ 사마천, 《사기》 권99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一敗塗地”,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96권, 성종 17년 10월 19일 경인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710019_005, 확인날짜=2026-09-27.
- ↑ 유성룡, 〈수헌선생집발(睡軒先生集跋)〉, 권오복, 《수헌집(睡軒集)》.